brunch

매거진 단편 소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이로운 Jun 13. 2016

측백나무 미로

  정원사는 자부심에 겨운 얼굴이었다. 얇은 윗입술이 입속으로 말려 들어가 있었다. 가족들은 거실 소파에 둘러앉아 정원사의 열띤 설명을 들었다. 나는 남편과 잡고 있던 손을 풀고 창가로 나갔다. 정원사는 계속 자신의 걸작에 대해 이야기했다. 1층으로 정원이 내다보였다. 과연 정원사가 으쓱할 만했다. 엄마의 생전 바람대로 정원은 정말 미로가 되었다. 측백나무 미로.


  왜 엄만 유서에 그런 소원을 썼을까. 그것도 1번에다가. 남편이 귓속말처럼 내 이름을 불렀다. 단독 행동 하지 말고 돌아와 앉으라는 듯 들렸다. 마지막으로 정원을 한 번 더 둘러본 뒤 자리로 돌아왔다. 남편의 미지근한 손이 다시 내 손을 쥐었다.


  상석에 앉은 아버진 조용히 수염을 만지고 있었다. 손등에 핀 검버섯이 눈에 띄었다. 언니는 아버지에게 엄마 유산 이야길 꺼냈다. 형부는 태연한 기색이었다. 미리 말을 맞추고 온지도 몰랐다.


  남편은 내 손을 꼭 쥐었다. 어젯밤 잠들기 전 남편이 해 준 말을 떠올렸다. "여보, 내일 혹시나 유산 얘기 나오면 우린 가만 있자. 응? 장모님 모으신 돈 그거 장인어른 몫이야. 100% 장인어른 몫이야. 그렇잖아." 나도 남편 손을 꼭 잡았다. 남편은 나를 힐끔대며 엷게 웃었다.


  아버지는 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언니는 자동 인형처럼 "아빠, 우리 힘든 거 아시잖아요." 하고 말했다. 아버지는 언니에게서 거둔 시선을 내게 보냈다. 나는 그 시선의 뜻도 모르면서 고갤 끄덕였다. 아버지는 형부의 본사 발령 소식에 대해 물었다. 형부는 머뭇거리다 어물어물 대답했다. "예, 그, 지난 달 말에 옮겼습니다." 라고. 아버지는 잠시 침묵한 후 남편을 잠깐 훑어보았다. 찰나였지만 남편 몸이 경직되는 걸 느꼈다.


  아버지는 더는 말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미로 정원을 지나 대문 앞에 섰다. 언니가 지하철역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했지만 남편과 나는 동시에 사양했다. 


  담장 높은 동네를 벗어나며 남편이 내게 "잘했어." 했다. 나는 손을 높이 뻗어 남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우리 상견례 하던 날 엄마가 시어머니께 남편이 참 곱다고 했었는데.


  남편은 버릇처럼 "읏차!" 하곤 나를 이끌었다. 나도 남편 따라 "읏차!" 하며 걸음에 속력을 붙였다. 




www.parkdabin.modoo.at

매거진의 이전글 같이 갈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