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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Jun 14. 2016

조선시대 패키지

  "장터! 장터다!"


  앞서 걷던 남자가 숨 고를 틈 없이 감탄부터 내뱉었다. 외부인 티날까 봐 그를 타박하는 심정이었지만 나로서도 입이 쩍 벌어지는 풍경이었다. 나무로 된 좌판 사이에 두고 상투 튼 상인 둘이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몇몇 여자들은 보퉁이를 머리에 이고 다녔다. 쪽 진 머리가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장터. 장터다. 2042년 3월에서 몇 백 년을 거슬러 온 걸까. 계약서 제대로 안 읽고 '조선시대' 란에 체크하기만 한 게 조금 후회스러웠다.


  "이리로."

  인솔자가 앞장서며 우리에게 손짓했다. 인솔자 차가운 눈빛이 아까 그 남자 얼굴을 스쳤다. 누구 것인지 모를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왠지 민망해 하는 듯 들리는 헛기침이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마당 넓은 초가집이었다. 어디선가 코 찌르는 냄새가 났다. 마당엔 정사각형 평상 세 개가 놓여 있었다. 맨 뒤쪽 평상 위엔 소반이라 부르는 작은 밥상이 있었다.


  "주막. 주막이오."

  아까 그 남자가 입 가리며 속닥댔다. 사극 톤을 흉내 내고 있었다. 나를 포함한 일행은 못 들은 척했다. 

  "여기선 크게 말해도 됩니다. 여긴 우리 회사에서 마련한 곳이에요. 아르바이트생은 조선사람들이지만."

  인솔자가 갓끈을 끄르며 말했다. 아까 그 남자는 초가집 부엌으로 달려갔다.  부엌 안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와 뭔가를 뜯어말리는 소리가 뒤엉켜 나왔다.


  나는 평상 끝에 걸터앉아 주막 담장 너머를 바라보았다. TV에서 보던 조선시대보다 어쩐지 칙칙한 느낌이었다. 사람들 피부는 햇빛에 그을어 거의 갈색 같았다. 생활에 찌든 표정들은 내가 사는 동네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거리 곳곳에선 좋지 않은 냄새가 났다.


  "생각하고 다르죠?"
  인솔자가 내 옆에 앉으며 물었다. 나는 저고리 자락을 내려다보며 "네." 하고 대답했다.

  "그래서 우리 회사 패키지 재구매 비율이 낮은 겁니다. 다들 시간 여행에 환상 품고 오거든요? 근데 막상 와 보면 별거 없어요. 별거 없기만 한가. 불편하기도 하잖아요. 이따 잘 때 돼 봐요. 전에 어떤 여잔 욕조를 찾더라니까요? 내, 참."  
  "욕조는 좀 심했네."
  "그쵸? 어쨌든 말이에요. 환상은 환상일 때가 제일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근데 우스운 건 깨진 환상에도 정이 든다는 겁니다. 이 회사 4년 다니면서 저 여기저기 많이 다녔거든요. 처음엔 죽을 맛이었습니다. 근데 차차 적응이 되더라구요. 요즘은 집보다 여기가 더 편합니다. 자, 이제 밥이나 먹죠."


  인솔자는 맞은편 평상으로 자릴 옮겼다. 아까 그 남자는 벌써 막걸리 세 잔을 비웠다. 깨진 환상에도 정이 든다던 인솔자 목소리가 가만히 곱씹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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