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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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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Jun 16. 2016

집, 국밥 집

  "계세요?"
  검은 정장 차림 중년 남자가 삐걱대는 나무 대문을 열었다. 사립문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았다. 남자 눈에 처음 들어온 건 마당 양쪽에 심긴 소나무였다. 가정집 같아 보이는 그곳은 국밥 집이었다. 비릿한 냄새가 나고 주방으로 보이는 창에선 훈김이 쏟아져 나왔다. 남자는 안심했다. 이 변두리 동네에서 밥집만 30분 넘게 찾고 있던 까닭이다.
  "누구세요?"
  백발의 할머니가 거실처럼 생긴 곳 문을 열며 나타났다. 한복은 아닌데 한복처럼 보이는 신기한 옷차림이었다. 문틈 너머로 TV가 보였다. 꺼져 있었다. 문틈과 TV 사이 테이블은 비어 있었다.
  "저, 식사 됩니까?"
  남자가 물었다. 할머니는 대답 대신 나타났던 곳으로 훌쩍 사라졌다. 집 안에서 수런대는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40대쯤 돼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이 문을 활짝 열어 주며 나타났다. 자고 일어난 얼굴이었다.


  "들어오세요."  
  남자는 구두를 벗고 집으로 올라섰다. 거실처럼 생긴 이곳을 접대 공간으로 쓰나 보았다. 남자는 아까 본 테이블에 앉았다. 사실 테이블이 두 개뿐이었다. 까만 테이블은 말끔히 닦여 있었다. 빨간 수저 통에 든 수저에서는 윤이 났다.
  단발머리 아주머니가 둥근 스테인리스 차판을 들고 나왔다. 등으로 문을 미는 아주머니 모습에 남자는 엉덩이를 들썩거렸지만 아주머니는 이미 테이블에 차판을 내려놓은 후였다.
  "맛있게 드세요."

  아주머니가 주방 맞은편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까 두 사람이 저곳에서 나온 것 같았다. 근데 장사가 되긴 하는 건가. 남자는 뭔지 모를 부담감을 느꼈다. 그 감정과는 별개로 밥맛은 좋았다. 특히 같이 나온 섞박지가 일품이었다. 잘 익은 무는 쫄깃하기까지 했다.


  "저, 계산. 계산이요."
  남자가 기침을 두어 번 한 뒤 조금 크게 말했다. 아주머니는 평온한 얼굴로 문을 열고 나와 TV 쪽으로 뚜벅뚜벅 걸었다. TV 밑 장식장에서 박하사탕 통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 아주머니는 그걸 남자에게 내밀며 "5000원이요." 하고 말했다. 남자는 사탕을 먼저 집을지 지갑을 꺼낼지 고민하며 잠깐 허둥댔다. 여러 가지로 참 낯선 집, 아니, 낯선 식당이었다.


  "장사는 잘 되는지요."
  밥값 치른 남자가 구두주걱을 쥐며 넌지시 물었다. 입에 물고 있는 길쭉한 박하사탕 때문에 발음이 온전치 못했다. 배웅 겸 뒤에 서 있던 아주머니가 웃음을 푹 터뜨렸다.
  "장사요? 안 보이세요?"
  "아, 죄송합니다."
  남자가 얼른 사과하자 아주머니는 조금 더 크게 웃었다. 구두주걱이 뒤꿈치에서 빠지지 않아 남자는 어정쩡한 자세로 아주머닐 올려다보았다.
  "인생을 다 바친 일이라는 게 금방 처분되긴 어렵죠."
  아주머니는 말끝에 "음." 하는 추임새를 넣었다. 그리곤 다시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남자는 구두주걱을 겨우 빼고 몸을 일으켰다. 구두주걱을 다시 걸기 위해 집 쪽으로 몸을 틀었다. 남자는 방문 너머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를 들었다.
  "엄마, 우리 오늘은 국수 삶아 먹어."
  아주머니 목소리였다. 곧 가느다랗게 "응." 하는 대답이 들려 왔다. 남자는 구두코를 바닥에 쿵쿵 찧으며 마당으로 나왔다. 소나무 두 그루는 여전한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솔잎 향기가 나진 않았다.


  나는 죽을 때까지 놓기 어려운 그런 일을 가지고 있나. 남자는 무의식중에 넥타이를 만지작대며 생각했다. 넥타이를 조금 끄르고 싶었다. 평상복 입고 이곳에 다시 한 번 와 보고도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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