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단편 소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이로운 Jun 20. 2016

우주 정거장 J-3756

우주 정거장 J-3756 카페테리아로 막 들어서는 남자는 파란색 점프 슈트를 입고 있다. 통통한 체격이지만 키가 제법 크다. 남자는 카페테리아 2층으로 난 계단을 오른다. 남자의 주머니엔 <2000년도>라는 제목의 소설책이 돌돌 말린 채 꽂혀 있다. 아내가 골동품 가게에 주문까지 해 사다 준 것이다.


남자는 카페테리아 2층 사무실 문을 열었다. 꿉꿉한 공기를 빼내기 위해 '전등' 버튼 아래의 '산소 환기' 버튼을 눌렀다. 남자의 사무실 책상 위엔 홀로그램 화면이 여럿 떠 있었다. 각종 결제 파일 화면들이었다. 남자는 그 파일들에 지문을 찍어 전송한 뒤 의자에 털썩 앉았다.


남자가 소설책을 꺼내 들었다. <1700년도>, <1800년도>, <1900년도>까지는 구하기 쉬웠는데 이 <2000년도>는 구하기가 정말 어려웠다. <1900년도>를 다 읽고도 반 년이 지나서야 겨우 찾을 수 있었다.


남자는 빳빳한 책 표지를 넘겼다. 첫 장에는 다른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그 시대에 사용된 물건 사진들이 실려 있다. 남자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각양각색의 핸드폰 사진들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더니 "어!" 하는 소릴 내며 책상 서랍을 열었다. 남자는 4쪽 맨 밑 칸에 실린 사진 속 그것과 똑같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건 남자가 경매 사이트에서 거금 들여 구입한 것이었다.


아내는 남자의 구닥다리 취미 생활을 조금 못마땅해 했다. 아이들은 아예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취미 생활은 남자의 등줄기를 쩌릿하게 만드는 최고의 보람이자 행복이었다.


지구인들이 우주로 이주해 오면서 대부분의 인종이 결합되었다. 따라서 인종 구분은 무의미한 것이 되었다. 남자도 이 우주 정거장 J-3756에서 나고 자랐다. 모두가 닮은꼴인 이곳에서. 하지만 남자는 자신의 조상이 동양의 작은 나라에 있다는 걸 알았다. 어머니가 역사 교사였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인류의 역사만큼 자신의 역사에 관심이 컸고, 그래서 자신의 뿌리를 찾아 평생을 애썼다. 그리고 그것을 남자에게 전해 주었다. 남자는 어머니에게 그 이야길 전해 들은 뒤부터 옛 시절 골동품을 모으기 시작했다.


얼굴에서도, 사는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자신의 뿌리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그것뿐이었기 때문이다.
남자의 손목 안쪽에 푸른 불이 들어왔다. 남자는 그 부분을 눌렀다. 손목 밖으로 홀로그램 화면이 떠올랐다. 문자 메시지였다. 이따 오후에 택배가 온다는 메시지다. 남자가 주문한 상품은 지구의 흙이었다.




www.parkdabin.modoo.at

매거진의 이전글 집, 국밥 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