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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Jun 22. 2016

그보다 더 큰 존재

  "진짜 그렇게 생각했어? 진짜로?"


  여자가 쥐고 있던 캔 커피를 파란색 플라스틱 테이블에 놓으며 말했다. 여자의 목소리에 미묘한 감정 몇 가지가 실려 있었다. 처음에 그 감정은 서운함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곧 진실을 알리겠단 열의로 바뀌었다. 여자의 침착한 눈길이 앉은 자리 맞은편으로 쏟아졌다. 그곳에 남자가 기대 눕듯 앉아 있었다. 남자는 여자가 마시던 것과 똑같은 종류의 캔 커피를 입에 가져다 대고 있다. 남자의 머릿속엔 아무런 단어도 떠오르지 않았다.


  "어떻게 그렇게 생각하지?"
  여자의 차분한 목소리가 건조한 공기를 갈랐다. 추궁하는 기색은 없었다. 오후 3시 햇살이 테이블 언저리에 떨어졌다. 그들 뒤에 있는 편의점 문이 딸랑거리며 열렸다. 남자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여자는 조금 웃으며 앞에 놓인 캔 커피를 조금 들었다 놓았다. "쿵."하는 소리가 나면서 테이블이 여자 쪽으로 기울었다. 남자는 테이블 모서리를 황급히 움켜쥐며 여자를 바라보았다. 여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한테 뭐라고 하는 건 아니야. 왜냐면 나도 그런 생각 자주 해. 내가 가진 무언가 또는 내가 가지지 못한 무언가로 내가 판단되는 건 아닐까. 그런 조건들 때문에 사랑 받을 자격이 주어지거나 박탈되는 건 아닐까."


  남자는 테이블을 쥔 채로 여자의 말에 귀 기울였다. 다시 편의점 문이 딸랑거리며 열렸다. 여자가 왼손 검지로 이마 위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입술을 달싹거렸다.


  "근데 어찌 보면 그건 당연한 거잖아. 우리가 어떻게 상대방 모든 걸 알겠어? 그냥 볼 수 있는 것들로 평가하는 게 자연스런 일이야. 속은 상하지만 내가 그렇게 평가되는 상황을 잘못이라 하기도 어렵고."
  "그렇지."
  남자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서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응? 내가 다른 사람들을 절대 그렇게 안 본다는 게 아니야. 나도 사람들 대부분을 그렇게 판단해. 근데 넌 아니라는 거야. 너한텐 안 그래. 못 그래. 그렇기 때문에 방금 니가 한 말에 좀 놀랐고."
  남자는 테이블을 놓고 여자를 다시 쳐다보았다. 입은 다시 굳게 다물려 있다. 여자가 숨을 고른 뒤 다시 말을 이었다. 그들 사이로 선들선들한 바람이 불어 갔다.


  "내가 널 다 안다고 할 순 없지만 말이야. 적어도 니가 가진 거 또는 못 가진 거, 그런 소유 개념보다 니가 더 큰 존재라는 거 정도는 알아. 너를 설명하고 너를 이해할 수 있는 더 많은 부분들을 내가 알고 있다고."


  여자는 중간에 말을 끊고 남자를 가만히 응시했다. 남자는 오른손으로 자신의 양쪽 관자놀이를 쥐었다. 그는 한동안 고개를 들지 않았다. 여자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그 침묵의 무게를 함께 감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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