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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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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Jun 25. 2016

산장 모임

  "요즘 같은 시절에도 산장이란 단어를 쓰나?"
  캡 모자를 벗으며 남자가 말했다. 캡 모자 안에서 후끈한 열기가 피어 올랐다. 주차장에서 산장까지 언덕길이 꽤 가팔랐다. 이번 모임 총무를 맡은 여자가 그런 남자의 허릴 쿡 찔렀다. 새로 참석한 두 사람은 낑낑대며 아이스 박스를 갖다 날랐다. 저물녘 산 속은 쌀쌀하다 못해 조금 추울 지경이었다. 손목에 붕대 감은 여자가 노란색 윈드브레이커를 걸쳤다.
  산장 내부는 텅 비어 있었다. 산장 주인은 다른 지역에 살고 산장을 통째로 빌려 주는 식이란다. 지인들 소개로 건너건너 운영되기에 믿을 만한 숙박업소였다. 아는 사람 소개 받고 대여해 쓰는 건물이라 모두 뒤처리도 말끔히 했다.


  "행사는 언제 시작하나요?"
  빨간 후드 집업 입은 대학생이 라면 봉지 든 채로 총무에게 물었다. 총무는 핸드폰을 잠시 주무르더니 "8시 반이요." 하고 작게 말했다. 8시 반까진 1시간 정도 남은 상태였다. 산 밑에서 식사하고 온 터라 그들은 군것질 거리를 거실에 펼쳐 놓기 시작했다.


  8시 20분이 되자마자 산장 1층이 부산해졌다. 참석자 저마다 자신이 들고 온 온갖 종류의 가방을 뒤적였다. 누군가는 악기를 꺼내고 누군가는 종이 뭉치를 꺼내고 누군가는 옷감 같은 천 조각을 꺼냈다. 느닷없이 펼쳐진 기이한 진풍경이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8시 24분. 열두 명의 사람들이 2층에 모였다. 2층은 방 없이 뻥 뚫린 공간이었다. 총무가 하고 많은 펜션들을 제치고 이 산장을 대여한 이유였다. 이 근처 펜션엔 이만한 공간이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짐을 풀어 놓고 넉넉한 간격으로 둘러 앉았다. 총무가 휴대용 마이크 전원을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처음 오신 분들이 있어서 좀 새롭네요. 모두 반갑습니다. 자기 소개는 아까 했으니까 생략할게요. 바로 시작하죠. 다들 알고 오셨겠지만 여긴 남들한테 말 못하는 꿈을 서로 소개하고 지지하는 모임입니다. 모임의 회칙은 단 두 가지뿐입니다. 자신에게 솔직해질 것, 서로의 꿈을 존중해 줄 것. 아까 정한 순서대로 진행할게요."
  총무가 옆사람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중년쯤 돼 보이는 여자가 마이크를 건네 받았다. 여자의 양반다리 앞엔 악보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모두 연필로 가득 필기돼 있는 악보였다. 여자는 마이크 선을 정리한 뒤 숨을 들이켰다. 자신을 제외한 열한 사람 앞에 놓인 꿈의 재료들에 일일이 눈길을 주었다.


  "안녕하세요."
  여자가 앉은 자세로 허리 구부리며 인사했다. 나머지 열한 명 사람들이 "반갑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식당에서 배운 행사 의례였다. 여자는 어색한 얼굴로 살짝 웃으며 마이크를 고쳐 쥐었다. 벌써 세 번째 참석인데도 여전히 가슴이 뛰고 얼굴이 달아올랐다. 살아가는 동안 혼자 가슴 뛰고 얼굴 달아오르던 목표를 누군가와 나눈다는 사실이, 아무 판단 없이 나눈다는 사실이 여전히 벅차기만 했다. 여자는 맞은편에 앉은 단발머리 여학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여자의 딸이었다. 여자가 딸에게 처음 같이 가자고 할 때 딸은 싫다고 딱 잡아 뗐었다. 그런데 딸은 아까 막국수 집에서 메밀 전병을 두 그릇이나 해치웠다.
  딸이 여자에게 계속 말하라는 손짓 신호를 보냈다. 여자는 고갤 조금 끄덕거리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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