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단편 소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이로운 Jul 03. 2016

과자 공장

   “야, 잠시만. 밀지 마.”

   여자가 친구를 향해 소곤댔다. 뒤따라오던 친구가 걸음을 멈추며 “미안. 그, 잘 안 보여서…….” 하고 속닥댔다. 두 사람을 인솔하던 직원이 그들을 보며 싱긋 웃었다.

   “왜들 귓속말 하고 그래요. 여기 아무도 없고 기계뿐인데. 막 소리 지르셔도 됩니다.”

   직원이 살짝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여자가 어깨에 힘을 풀고 친구를 돌아보았다. 친구는 “우리 너무 촌스럽나?” 라며 왼쪽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빗었다.

   그들은 제과 공장에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곳은 초콜릿 제품을 주로 생산하는 구역 쪽에 있었다. 여자와 친구가 그곳을 방문하게 된 건 친구가 그 과자 회사에 메일을 보낸 덕이었다. 3주 전이었다.

   당시 여자와 친구는 동네 카페 2층에 앉아 있었다. 창가 자리에 노트북 펼치고 앉아 여행 계획을 짜고 있었다. 20대 마지막 여름을 장식해 줄 여행 계획은 쉽사리 채택되지 않았다. 그들은 국내여행, 해외여행 할 것 없이 온갖 종류의 여행 계획을 세웠다 허물길 반복했다.

   “야, 너 어릴 때 제일 해 보고 싶었던 거 뭐 없냐? 너무 큰 꿈이라 입 밖에 내본 적도 없는 거. 아니면 되게 희한한 거나.”

   친구가 휘핑크림 잔뜩 올라간 유리잔을 자신 쪽으로 당기며 물었다. 여자는 씹고 있던 까만 빨대를 계속 씹으며 카페 조명을 올려다보았다. 여자의 머릿속으로 어려서 살던 아파트 내부 구조가 스쳐 지나갔다. 그 집 냄새가 얼핏 맡아지는 것도 같았다.

   “넌 없어?”

   여자가 친구에게 되물었다. 친구는 웃으려다 말고 입술을 깨물며 “하나 있어.”라고 대답했다. 카페 1층에서 “어서 오세요.” 하는 점원 목소리가 희미하게 울렸다.

   “뭔데?”

   “콘 아이스크림 있잖아. 월드콘 같은 거.”

   “응.”

   “그거 먹다 보면 맨 밑에 초콜릿만 있는 부분 알지.”

   “당연하지.”

   “야, 난 어릴 때 그거 한 번 실컷 먹어 보는 게 소원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냥 초콜릿 사다 먹으면 되는 건데 그냥 초콜릿이랑 아이스크림 밑에 있는 초콜릿이랑 느낌이 같아야 말이지.”

   “뭐 어떻게 다르다는 건데?”

   여자가 웃음을 터뜨리며 물었다. 친구는 잔뜩 진지한 표정이었다.

   “다르지! 어떻게 같냐? 음……. 설명은 못하겠는데……. 어쨌든 다르다고…….”

   친구가 얼버무리자 여자는 눈을 질끈 감아 가며 크게 웃었다. 친구는 “아, 진짜 그 다른 느낌이 있다니까…….” 라며 스푼 빨대로 휘핑 크림을 떠먹었다.

   “그래서 어려서 하고 싶었던 게 정확히 뭔데?”

   여자가 이야기 흐름을 되찾으며 물었다.

   “아, 맞다. 그 얘기 중이었지. 아니, 아까 말했잖아! 난 그 콘 아이스크림 과자 부분에 초콜릿 푹 적신 거 그거 원 없이 먹어 보는 게 소원이었다고.”

   “아……. 그걸 하고 싶었다고? 그냥 먹고 싶었다고? 그게 끝?”

   친구가 무심히 고갤 끄덕였다. 여자는 팔을 들고 손바닥으로 턱밑을 꾹 누르더니 입을 열었다.

   “좀 황당하긴 한데 재밌네. 그럼 우리 그거 할래?”

   “응?”

   “그거 먹으러 가자고.”

   “지금? 어디서?”

   “아이스크림 공장에서?”

   여자가 조금 작아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장 사 먹어도 그만이지만 왠지 공장 가서 먹어야 제대로 된 충족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냥 한 번 해 본 말에 여자가 좋은 반응을 보이자 친구 눈빛에 생기가 돌았다.

   “내가 메일이라도 한번 보내 볼까?”

   친구가 노트북 화면에 떠 있던 드라마 캡처 사진들을 우르르 끄며 말했다.

   “뭐라도 해 봐. 근데 뭐라고 보낼 건데? 어디다가?”

   “우리나라에 콘 아이스크림 파는 공장이 한두 개야? 뭐, 있는 그대로 말해야지. 제과 회사 본사에.”

   친구는 키보드를 부스러뜨릴 듯 때리며 국내 제과 회사 사이트들을 죽 띄웠다. 친구는 본사 이메일 주소들을 복사해 메모장에 붙여 넣으며 “이따 집에 가서 보낼 거야. 아유, 되든 안 되든 속이 다 시원하네…….”라고 말했다.    


   여자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온 친구는 노트북을 꺼냈다. 친구는 머리 위에 보라색 수건을 걸치고 자신의 이메일 계정에 로그인했다. ‘받는 사람’ 칸에 제과 회사 메일 주소들을 붙여 넣다 말고 친구는 잠시 망설였다. 다 큰 여자 둘의 그 유치한 소원에 관심 가져 줄 만한 회사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친구는 탁상 달력에 표시된 휴가 날짜를 응시하며 “그냥 푸켓이나 갈까…….” 하다가 “아이! 지금 안 해 보면 언제 해 봐!” 라며 다시 노트북을 당겨 안았다. 혼잣말을 무슨 대화처럼 하느냐던 엄마 목소리가 귓전을 맴돌았다. 친구는 활력 되찾은 얼굴로 메일 작성을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콘 아이스크림을 즐겨 먹으며 자란 스물아홉 여자입니다. 저는 25년 지기 친구와 20대 마지막 여름 여행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 제 꿈은 콘 아이스크림 맨 밑에 있는 초콜릿 부분을 배 터지게 먹어 보는 것이었습니다. 어린 날 품었던 그 꿈을 이제 제 스스로 직접 이뤄 주고 싶습니다. 고맙게도 친구가 함께해 주겠다네요. 혹시 저희가 그 꿈을 실현해 볼 기회가 있을까요?

   비용은 저희 쪽에서 대겠습니다. 사실 푸켓 여행을 취소했거든요. 여행 경비가 남아 돌아요. 아, 절대 부담 갖진 마세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친구는 무슨 말을 더 덧붙이려다 그냥 메일을 발송 시켰다. 콘 아이스크림을 판매하는 국내 제과 회사 여덟 곳에 메일이 들어갔다. 

   주말이 지나고 새 한 주가 시작됐지만 어디에서도 답장이 오지 않았다. 화요일 오전, 친구는 업무 보다 말고 항공사 홈페이지에서 푸켓 행 비행기 표를 다시 알아보고 있었다. 친구의 핸드폰이 울렸다. 메일이 도착했다는 푸시 알람이 떴다. 친구는 새 인터넷 창을 띄우고 받은 메일함을 클릭했다. 사이트 관리가 전혀 안 돼 있던 중소기업에서 답장이 와 있었다.    


   안녕하세요, T제과입니다. 보내 주신 메일 잘 받았습니다. 저는 T제과 생산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김문석입니다. 대표이기도 하지요. 저희 기업이 설립된 지는 10년이 채 안 되어서 고객님이 즐겨 드시던 콘 아이스크림 맛과 100% 일치하는 맛을 선보여 드리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희 기업은 두 분의 꿈을 함께 꾸고 함께 이루고 싶습니다. T제과라도 괜찮으시다면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이쪽입니다.”

   직원이 스테인리스로 된 두꺼운 문을 밀며 두 사람을 안으로 안내했다. 직원의 점퍼 왼쪽에 금색 이름표가 달려 있었다. 그곳엔 ‘생산 팀 김문석’이라고 적혀 있었다. 대표라든지 사장이라든지 그런 호칭을 쓰지 않는 문석이 친구는 신기했다.

   두 사람이 들어간 그곳은 신제품 연구실이었다. 말하자면 끊임없이 시식하는 공간이었다. 철제 테이블 위에 커다란 트레이가 세 개 놓여 있었다. 하나는 콘 아이스크림에 들어가는 원뿔 모양 과자, 하나는 걸쭉한 초콜릿 소스, 하나는 그 두 가지가 버무려진 채 건조된 것이었다.

   “과자 끝에만 묻히면 인정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통째로 초콜릿을 발라 버렸습니다. 입맛에 맞춰 드시라고 과자랑 초콜릿 따로 준비를 했는데…….”

   문석의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두 사람은 펄쩍펄쩍 뛰며 함성을 질렀다. 문석의 뒤에서 마스크 낀 직원이 새로운 트레이를 들고 나타났다. 그 트레이 위엔 T제과에서 생산하는 과자들과 음료수가 수북이 담겨 있었다.

   “편히 드십시오.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문석이 양 손바닥을 앞으로 쭉 뻗으며 여자와 친구 맞은편에 앉았다. 

   “대표님도 드세요.”

   친구가 초콜릿 발린 과자를 입 안 가득 우물대며 말했다. 문석은 지그시 웃으며 음료수 병을 열어 두 사람 앞에 놓아 주었다. 마스크 낀 직원은 신제품 연구실 문을 조용히 닫고 나왔다. 그는 문석의 외아들이었다. 그는 사무실로 들어가 문석의 책상을 지나치다 말고 그 위에 놓인 10년 전 가족사진을 내려다보았다. 사진 속엔 네 사람이 있었다. 그가 처음부터 외아들이었던 건 아니었다. 그는 오늘 낯선 손님을 맞이하는 아버지 모습에서 뭔지 모를 슬픔과 따뜻함을 느꼈다. 슬픔과 따뜻함을 동시에 느껴 본 건 처음이었다.




www.parkdabin.modoo.at

매거진의 이전글 스페인 가는 비행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