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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Jul 15. 2016

똑소리

   속마음을 있는 대로 다 드러내 버리고 난 다음 날 아침이면 언제나 근육통이 느껴졌다. 그것도 온몸에. 진심을 모두 짜내는 데는 마음의 근육뿐만 아니라 몸의 근육도 함께 쓰이는가 보았다. 남자는 침실에서 나와 거실 소파에 다시 누웠다. 차가운 갈색 가죽 소파를 끌어안고 눈을 감았다. 새벽에 있었던 일들을 차근차근 되새겨 보았다.

   태어나 처음 보는 사람한테 그렇게 온갖 얘길 다 쏟아내 본 적은 없었는데……. 남자는 남색 잠옷 주머닐 뒤적거리다 소파 앞 유리 테이블을 넘겨다보았다. 거기도 핸드폰은 없었다. 남자는 누운 자세를 편히 고치고 다시 눈을 감았다. 혹시나 그 사람 전화번호를 받아 온 건 아닐까 싶어 핸드폰을 보려 한 거였는데 아닐 확률이 높았다. 이름도 모르는데 번호를 받았을 리가.    

   어제 남자는 친구 사무실에 있었다. 친구는 작은 인테리어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야근하던 직원 셋을 퇴근 시키고 남자와 친구는 회의실에서 술판을 벌였다. 빔 프로젝터도 있고 널따란 테이블도 있어 영화 보고 술 마시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두 사람 모두 술을 많이 마시는 편은 아니었다. 그들에게 술을 마신다는 행위는 맥주 두 캔과 함께하는 대화와 친목도모 시간에 해당됐다. 과음과 폭음이 미덕처럼 된 이 사회에서 그들은 숫기 없고 재미없는 축에 속했다. 술자리에 흔쾌히 불릴 대상도 아니었다. 물론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서로라는 최적의 술친구가 있기 때문이었다. 둘 다 자기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어 술 안 마신다고 닦달할 상사도 없었다.

   그들은 음주 습관 말고도 여러 가지 수준이 비슷했다. 친구이다 보니 수준이 비슷해진 건지 수준이 비슷하다 보니 친구가 된 건지는 몰랐다. 아마 두 가지 모두 해당되리라.

   “야, 내 친구 불러도 되냐?”

   친구가 과자 봉지를 뜯으며 남자에게 물었다.

   “친구 누구?”

   “사실 친구라 하긴 그렇고……. 나도 알게 된 지 얼마 안 됐는데.”

   “인테리어 하는 사람?”

   “어, 인테리어 해. 전에 풍수지리 세미나 갔다가 만났거든. 조별 발표하는데 나랑 같은 조였다. 사람 똘똘하고 괜찮더라. 나랑 같은 동네 살더라고. 고향은 지방인데 혼자 악착같이 해서 자수성가했어.”

   친구는 입술을 쭉 내밀며 고갤 끄덕였다. 인정할 만한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나오는 친구 습관이었다.

   “부르려면 처음부터 부르지, 이렇게 판 벌여 놓고 불러도 되나…….”

   남자가 미안한 기색으로 말했다. 친구는 남자의 말을 찬성 표시로 듣고 남자에게 액정 켜진 핸드폰을 흔들어 보였다. 남자는 어깨를 으쓱하며 고갤 끄덕였다.

   친구가 수화기에 대고 “어이, 똑소리!”라 소리쳤다. 똑소리는 친구의 초대에 선선히 응했다. 30분쯤 지나서 똑소리가 도착했다. 똑소리는 양손에 먹을거릴 잔뜩 챙겨 들고 나타났다. 6캔 들이 맥주 한 팩도 봉지 속에 들어 있었다. 똑소리와 남자가 악수를 나눴다. 친구는 똑소리를 자기 옆자리에 앉히곤 맥주를 권했다.

   “이거, 실례가 많습니다…….”

   똑소리가 캔을 따며 남자에게 말했다.

   “실례는요. 술은 좀 하십니까?”

   “아니요, 술 잘 못합니다.”

   똑소리가 대답하자 친구가 남자를 향해 웃었다.

   “얘 우리 과야.”

   친구가 똑소리의 팔뚝을 치며 말했다. 똑소리는 크림색 티셔츠 소매를 조금 걷어 올리며 사람 좋게 웃었다.     

   똑소리는 여기서 30분 거리에 있는 G시에서 인테리어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었다. 똑소리는 주로 작은 집 인테리어를 도맡았다. 공간을 현명하게 쓰기만 하면 집 평수가 별 상관없다고 똑소리는 말했다. 친구는 빔 프로젝터를 통해 똑소리가 설계한 인테리어 현장 사진을 보여 주었다. 왜 친구가 그를 똑소리라 부르는지 알 것 같았다. 똑소리는 사람들이 그냥 방치해 놓는 공간들을 알뜰하게 활용하도록 집집마다 새로운 설계 방식을 도입했다.

   “그 집에 사는 사람을 생각하면요. 뭘 만들어 넣으면 좋을지가 보입니다.”

   똑소리가 큐브 치즈 봉지를 뜯으며 말했다. 봉지가 뜯겨 나가며 치즈 세 개가 테이블 가운데로 튀었다. 남자와 친구가 똑소리를 바라보았다. 똑소리가 말을 이었다.

   “저한테 인테리어는 단순히 공간을 창조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냥 어떤 쓸모를 가진 가구를 대강 보기 좋게 짜 넣는 게 아니에요. 그 가구가 그 가족에게 어떻게 쓰일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걸 알고 나면 가구들이 그냥 물건으로 안 보입니다. 사람 몸의 연장선으로 보이죠. 인테리어는 저한테 그런 의미입니다. 인테리어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살아 있는 삶이죠.”

   남자는 입을 반쯤 벌리고 똑소리의 이야길 들었다. 친구는 남자 표정을 보고 웃음 터뜨리며 “괜히 똑소리라 한 줄 아냐?”고 말했다. 똑소리는 턱 밑을 긁으며 “이 놈의 자긍심이 아주 고질병입니다.” 하고 말했다.

   “어떻게 물체에서 사람을 봅니까? 아니, 어떻게 그렇게 느낍니까?”

   남자가 큐브 치즈를 하나 주워 들며 똑소리에게 물었다.

   “사람 없는 집에서 자랐다 보니 그렇습니다.”

   똑소리가 가슴을 의식적으로 펴며 대답했다. 

   “네?”

   “비유한 거예요. 사람 없는 집에서 자랐다는 건 도무지 사람 냄새라곤 없는 집에서 자랐단 뜻입니다. 가구들은 최소한의 쓸모만 다하고 가족들은 기계적이었습니다. 뭔 지 알겠죠? 대충 감이 오지 않습니까? 살아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어요. 그 집에 있으면 저도 죽어 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결심을 한 거 아니겠습니까. 진짜 사람 사는 것 같은 집을 만들자. 사람을 느낄 수 있는 집을 만들자. 그래서 제가 만드는 집은 사람을 닮았습니다. 사람이 가구에, 집 구조에 맞춰지는 게 아니라 가구와 집 구조가 사람에게 맞춰집니다. 사람이 우선이니까요. 그 집에 살고 그 집에 태어난 어른과 아이들이 사람이 최우선인 집에서 사람을 느끼며 살고 자라길 바라니까요. 제 사업을 이끈 원동력은 제 결핍입니다. 너무 없이 살아 봤더니 뭐가 있으면 좋을지 너무 잘 보이더라구요.”

   똑소리가 콧방울을 찡그리며 말을 마쳤다. 똑소리가 방금 한 말은 친구도 처음 듣는 모양이었다. 친구 표정이 얼떨떨했다. 결핍, 결핍……. 결핍이라면 남자도 일가견 있는 분야였다. 아니, 인간에겐 저마다 자신만의 결핍 분야가 있다.

   자신에겐 흉기였던 결핍을 지혜로운 무기로 사용하며 살아온 똑소리가 남자는 신기했다. 남자는 자신의 그 흉기를 꺼내 보이며 그걸 무기로 바꿀 방법이 없는지 똑소리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남자가 맥주 캔을 가슴 앞으로 당기며 입을 열었다. 오후 10시 21분이 10시 22분으로 바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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