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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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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Jul 21. 2016

주방 보조

   잘게 썰린 양파가 퐁당거리는 작은 소릴 내며 냄비 속으로 우르르 빠져들었다. 양파가 떨어지며 튄 육수가 냄비 안쪽 면에 닿으며 “치익.” 소릴 냈다. 주방장은 냄비 뚜껑을 닫자마자 냄비 옆에 있던 프라이팬을 쥐고 흔들었다. 손목 스냅에 따라 해산물 재료들이 프라이팬 위로 통통 튀어 올랐다. 새우 색깔이 금세 빨개져 있었다.

   “주방장님!”

   흰 두건 쓴 주방 보조가 주방장 옆으로 뛰어들며 다급히 말했다. 불을 다루는 곳이기 때문에 소란 떨지 말라고 누누이 말했건만……. 주방장은 한쪽 눈썹을 찌푸리며 “방정 좀 떨지 말라고.” 하고 말했다. 주방 보조는 한 걸음 물러나며 아차 싶어 하는 표정을 지었다. 요리 중이던 몇 사람이 주방 보조를 한심스럽게 또는 딱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이틀 전에는 주방 보조가 한 달 내로 일 그만 둘 거라는 추측을 놓고 요리사 두 사람이 내기를 걸었다. 이 주방에서 주방 보조란 일회용 제품과 비슷한 처지였다. 날이면 날마다 뒤바뀌는 자리에 가까웠다. 주방장이 주방 보조에게 유난히 엄격했기 때문이다. 원래 성격이 살가운 사람은 아니었지만 불같이 매서운 사람도 아닌데 주방장은 유독 주방 보조에게 날카로웠다.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도 하나하나 꼬집으며 사람을 벼랑 끝까지 내몰았다. 몸이 힘든 게 아니라 수치심 때문에 못 견디도록 만들었다. 

   그 덕분이라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주방 보조가 매일 들볶이다 보니 식자재가 빠지거나 잘못 준비되는 일은 없었다. 음식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는 새벽시장이나 아침 택배 또는 퀵 서비스로 공급되었고 주방 보조는 그것들을 최소 3번 이상 확인했다.     


   “왜.”

   옆에 서 있던 요리사에게 프라이팬 넘겨주며 주방장이 물었다. 주방장이 자신 쪽으로 돌아서자 주방 보조는 반 걸음 더 물러섰다.

   “홀에서 손님 한 분이 주방장님 찾으신다고…….”

   주방 보조가 바닥 타일 사이 홈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누가.”

   “그건 저도 잘…….”

   주방 보조가 고개를 들었을 때 주방장은 이미 주방 입구에 다다라 있었다. 두꺼운 스테인리스로 짜 넣은 주방 문이 펄럭거리며 닫혔다. 주방 보조는 두건을 헐렁하게 풀며 재료 창고에 들어갔다. 재료 창고는 냉장고 채소 칸처럼 냉방 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주방 보조는 두건을 벗어 머리카락 사이사이에 밴 땀을 말렸다.

   주방에서 “야!” 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이 주방에서 “야!”는 주방 보조 자신뿐이었다. 요리사들은 주방장이 주방 보조 대하는 모습을 그대로 본받았다. 가끔 다독여 주는 사람이 있긴 했지만 막상 부려 먹긴 매한가지였다. 주방장이 그렇게 하니까 본인들도 그렇게 할 권한이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주방 보조의 입속에 욕지거리가 왈칵 고였다. 나도 사람인데……. 이 짓 그만두고 손님으로 찾아와 한 바탕 해 버리고 싶은 생각이 정수리를 뚫고 나와 바닥으로 줄줄 새는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이 든 건 관련 소문을 익히 들었기 때문이다. 이 주방에서 주방 보조로 일하게 됐단 이야기 나누다 친구에게 들은 소문이다. 1년쯤 전에 이 주방을 나간 주방 보조가 방송국 PD와 함께 찾아왔단다. 인권 유린하는 주방장을 전 국민 앞에 고발하겠다고 난리 법석을 떨었단다.

   그 날 주방장은 주방에서 나와 옛 주방 보조를 뚫어지도록 바라봤다고 했다. 옛 주방 보조가 온갖 비난을 하고 비웃고 저주를 퍼부었지만 꿈쩍도 안 하고 그를 시커먼 눈동자로 바라보기만 했다. 그 눈빛은 증오와 분노보다 서늘한 무엇을 담고 있었다. 주방장의 눈길은 단 1초도 흩어지지 않고 옛 주방 보조의 눈동자에 틀어박혔다. 

   먼저 눈을 피한 건 옛 주방 보조였다. 그러든지 말든지 주방장은 계속 그를 응시했다. 옛 주방 보조는 뭐라고 욕을 몇 마디 더 하더니 같이 온 PD를 남겨두고 돌아갔다. PD는 그 자리에 서서 쭈뼛거리다가 외투 안주머니 속 녹음기를 끄고 돌아갔다. 주방장은 그들이 사라지자마자 주방으로 들어가 식은 음식을 버리고 새로 요리를 시작했다.    


   “주방장님.”

   카운터에 있던 직원이 주방장을 불러 세웠다. 주방장이 직원을 돌아보았다.

   “주방장님 아버지라고 하시는 분이 오셨는데…….”

   직원이 공손하게 펼친 손바닥 끝으로 구석 자리를 가리켰다. 천장까지 닿는 높이의 인테리어 용 수납장 때문에 구석 자리에 앉은 사람은 형체만 보였다. 주방장은 수납장에 얹힌 커피 잔에서 시선을 떼며 직원에게 “그래, 일 봐.” 하고 말했다.

   주방장이 구석 자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숨 쉬는 게 아까보다 조금 불편했다. 주방장이 구석 자리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파란 트레이닝복 차림의 주방장 아버지는 주방장을 쳐다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왜 오셨어요.”

   주방장이 카운터 쪽을 내다보며 말했다. 직원은 막 들어오는 손님 세 명을 맞아들이고 있었다. 

   “너는 아버지 얼굴도 안 보고 매번 툭툭 그렇게…….”

   “하루 이틀도 아닌데 새삼스럽게 왜 그러세요. 다 누구한테 배운 건데.”

   “가게 내놨다.”

   아버지가 묵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고갤 떨어뜨리고 있던 주방장이 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뭐하게요.”

   “가게 내놓는 데 뭐하게가 어디 있냐. 뭐 안 하려고 내놓지.”

   “죽자고 사랑하시던 걸 왜요. 자식보다 마누라보다 귀한 걸.”

   “그만 좀 하자.”

   “뭘 그만해요?”

   주방장의 낮은 목소리가 커졌다. 아버지는 자식이 직장에서 밉보이기라도 할까 봐 얼른 주위를 살폈다. 비록 이 레스토랑이 주방장 소유이긴 했지만 직장이라는 건 그렇게 간단한 이치로 굴러가는 게 아니었다. 다행히 오후 3시의 홀은 한산했다.

   “아버지가 미안하다.”

   어렵게 입을 뗀 아버지는 입술을 조금 떨며 주방장의 소매 끝을 바라보았다. 주방장은 고갤 저었다.

   “돌아가세요.”

   주방장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하지만 주방장은 그 자리에 굳어진 듯 서 있었다. 아버지는 덥수룩한 머리카락을 손바닥으로 이리저리 쓸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또 오마.”

   아버지가 트레이닝복 허리 부분을 아래로 잡아당기며 일어섰다. 아버지가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끝까지 바라보지 못하고 주방장은 다시 그 자리에 앉았다. 힘없이 털썩 앉는 바람에 의자가 뒤로 밀려나며 “삐익.” 하는 소리가 났다. 카운터 직원이 주방장을 쳐다봤지만 주방장은 그 시선을 의식하지 못했다. 


   주방장이 다시 주방으로 돌아왔다. 주방 보조는 재료 창고 앞에 쪼그리고 앉아 홍합을 손질하고 있었다. 주방장이 눈을 지그시 감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요리사 몇몇은 주방장 안색을 살피며 또 뭔 일 하나 나겠단 눈짓을 주고받았다.

   주방장이 재료 창고 쪽으로 걸었다. 주방 보조는 숨을 아껴 쉬며 가슴에 총 맞을 준비를 했다. 주방장이 홍합 담긴 대야 앞에 쪼그려 앉았다. 말없이 홍합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주방 보조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주방장님, 틀린 거 말씀해 주시면 제가 다시 다 하겠습니다.”

   “어이.”

   “네?”

   “미안하다는 말뜻이 뭐겠냐?”

   “네?”

   “미안하다니……. 미안하다고 하면 있던 일이 없던 게 되나……. 되는가…….”

   주방장이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주방 보조는 난처한 기색으로 쩔쩔 매고 있었다. 주방장이 쥐고 있던 홍합을 놓고 일어섰다.

   “수고해라.”

   주방장이 말했다.

   “네? 아니, 그, 네…….”

   주방장이 가스레인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주방장은 이 주방에서 가장 오래 근무한 요리사에게 “오늘 휴가 좀 쓰자.”고 말한 뒤 앞치마를 벗었다.

   “예, 쉬고 오십시오.”

   “그래.”

   주방 문이 펄럭거리며 닫혔다. 


   주방장은 차에 시동을 걸고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찍어 넣기 시작했다. 너무 잘 아는 주소지만 오래도록 굳이 가 본 적 없고 가 보려 한 적도 없는 주소를 찍어 넣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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