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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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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Jul 25. 2016

이상한 동물병원 직원


   동물병원 유리문은 양쪽 모두 활짝 열려 있었다. 여자는 하얀 말티즈 코티를 안고 동물병원으로 들어섰다. 이곳 동물병원은 웬만한 종합병원만큼 깔끔하고 단정한 인테리어를 자랑하고 있었다. 카운터에는 대기자 용 번호표 배부 기계가 있었다. 보호자 대기실은 두 종류로 구분되어 있었다.

   여자는 이곳 방문이 처음이었다. 코티가 원래 다니던 동물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권해 이곳을 찾아 온 것이었다. 여자는 코티를 한쪽 팔로 당겨 안은 채 조그맣고 하얀 번호표를 뽑아 들었다. 12번.

   “12번 보호자님!”

   은행 창구처럼 생긴 카운터 맨 왼쪽에 앉아 있던 직원이 여자의 번호를 불렀다. 직원의 머리 위 전광판으로 12라는 번호와 창구 쪽을 향하는 화살표가 붉게 번쩍거리고 있었다. 거기 앉은 직원들은 모두 자주색 간호사복을 입고 있었다. 이들도 모두 수의사인 걸까. 여자는 번호표를 보여 준 뒤 코티를 고쳐 안았다. 코티는 꼬리를 뒷다리 사이로 말아 넣고 있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직원이 키보드에 손을 얹으며 여자에게 물었다.

   “CT 좀 찍어 보려고…….”

   “예약하고 오셨어요?”

   “네.”

   “성함이?” 


   진료 수속을 다 밟은 여자는 직원이 안내해 준 보호자 대기실로 들어섰다. 그 대기실 문은 파란색이었다. 대기실 TV 위에 놓인 모니터에 여자 이름과 코티 이름이 맨 아래 칸에 떴다. 맨 위 칸에 적힌 보호자 이름과 강아지 혹은 고양이 이름 옆엔 ‘(진료 중)’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각각 진료 시간은 꽤 길었다. 여자는 잠든 코티를 허벅지 위에 올려놓은 채 핸드폰을 만졌다.

   “코티 보호자님!”

   진료실에서 자주색 간호사복 입은 직원이 나와 여자를 불렀다. 여자가 움찔하자 코티가 벌떡 깨 코를 킁킁거렸다. 여자는 방금 읽은 뉴스 기사 내용을 곱씹으며 진료실로 들어섰다. 여자는 주로 생활 정보와 관련된 뉴스를 읽었다.

   “안녕하세요.”

   여자가 수의사에게 인사했다. 수의사는 안경 알 너머로 여자를 바라보며 반갑게 웃었다. 

   “지난 병원에서 보내 준 소견서 읽었습니다. CT 바로 찍으면 될 것 같고……. 일단 CT 찍어 보고 나머지 검사 여부 결정하는 게 좋겠습니다.”

   수의사는 말끝에 힘을 실으며 간호사복 입은 직원을 돌아보았다. 직원이 “아, 네.” 하고 말하며 여자를 영상촬영실 앞으로 안내했다. 코티가 직원 품에 안겨 영상촬영실로 들어갔다. 여자는 복도 한편에 놓인 가죽의자에 앉았다. 배터리가 거의 다 닳아 핸드폰을 만지고 있을 수 없었다. 여자는 영상촬영실이라고 적힌 문을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CT 찍는 데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아요.”

   간호사복이긴 간호사복인데 여느 직원들과 좀 다른 디자인의 간호사복 입은 직원이 여자 옆에 앉으며 말했다. 여자는 직원을 돌아보며 의례적으로 웃어 보였다. 

   “코티? 아까 그 하얀 말티즈 맞죠?”

   직원은 영상촬영실 옆 모니터에 적힌 코티 이름을 보며 아는 체를 해 왔다.

   “네…….”

   “예쁘더라구요. 순종인가? 순종이죠? 요즘 사람들은 혈통 하나하나 따져 가며 강아지 사잖아요. 코티는 아무래도 순종 같아. 투자 좀 하셨겠네요.”

   직원이 푼수 같은 어조로 빠르게 말했다. 바닥에 쏠려 있던 여자의 시선이 직원에게 향했다. 강아지를 상품처럼 대하는 듯한 직원의 말투가 여자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산 거 아니구요.”

   여자가 직원으로부터 눈길을 돌리며 말했다.

   “그럼요?”

   “분양 받은 거예요.”

   “아……. 지인한테 분양 받으셨구나.”

   “유기견 센터에서요.”

   여자가 작은 목소리로 또박또박 짚어 가며 말했다. 더는 말하고 싶지 않은 표정이었다. 직원은 그런 여자의 표정이 담은 의미를 읽지 못하고 여자에게 조금 더 다가앉았다. 

   “어머, 어머……. 유기견 센터에서 분양 받으셨다구요? 너무 멋지다. 그게 다 돈이 얼마예요! 분양 받아서 병원 검사 새로 싹 다 하고 미용도 새로 시키고 이것저것 다 하다 보면……. 어휴……. 좋은 일 하셨네요. 좋은 일 하셨어.”

   직원이 눈앞으로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여자는 오른손으로 두 눈을 감쌌다.

   “피곤해서 그런데 저 혼자 좀…….”

   여자가 말했다.

   “어머, 죄송해요. 어떡해……. 코티 많이 아픈 거예요? 아무래도 버림받은 개다 보니…….”

   “저기요.”

   “네?”

   “가시라구요.”

   여자가 직원 쪽으로 고갤 돌려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 직원은 상체를 뒤로 조금 물리더니 “어…….” 하고 우물거렸다. 그러더니 별 이상한 사람 다 보겠다는 듯 혀를 끌끌 차며 복도 너머로 사라졌다. 여자는 영상촬영실 옆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모니터 왼쪽 구석에는 ‘저희는 모든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생각합니다.’라는 슬로건이 적혀 있었다. 헛웃음이 툭 터져 나왔다.     


   “코티 보호자님!”

   아까 코티를 안고 간 직원이 다시 코티를 안고 영상촬영실 밖으로 나왔다. 여자는 코티를 안아 든 뒤 “감사합니다.” 하고 말했다.

   “대기실에 가 계세요. 진료실에서 다시 이름 부를 겁니다.” 

   직원이 여자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며 말했다. 여자는 다시 파란 문의 보호자 대기실로 돌아왔다. 불편하던 마음이 가슴에 여전히 울퉁불퉁한 느낌을 줬다. 핸드폰이 울렸다. 여자는 핸드폰 액정에 적힌 ‘집’을 확인한 뒤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응, 엄마야?”

   집에 엄마만 있는 걸 확인한 뒤였으므로 여자는 전화를 편히 받았다.

   “그래, 병원이냐?”

   “응. 이제 CT 찍었어.”

   “결과는?”

   “아직. 근데 오늘 진짜 이상한 간호사, 아니, 이상한 직원 봤어.”

   여자는 엄마에게 아까 만난 직원과의 자초지종을 털어 놓았다. 수화기 너머에서 엄마의 웃음소리가 흘러들었다.

   “왜 웃어, 이게 웃을 일이야? 누구 편이야, 도대체.”

   여자가 서운한 듯 쏘아붙였다.

   “편이 어디 있냐. 사람들 다 내 맘 같길 바라면 상처 받는 인생밖에 안 된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얘, 그 사람도 지금 너 이상하다고 자기 엄마랑 얘기하고 있을 수 있어.”

   “뭐?”

   “농담이다. 웃어넘기라고.”

   “아, 엄마!”

   “니가 이상하다던 그 사람이 강아지들 대할 땐 매몰차고 무정할지 몰라도 다른 데선 참 정직한 사람일 수 있단 생각을 왜 못하냐? 너도 나도 니 아빠도 코티 대하기는 지극정성이지만 다른 데서는 무신경할 수 있다. 그 모습 보고 누가 당신 왜 그러냐고 하면 너 뭐라고 하겠어. 그게 뭐 대수냐고 하겠지. 엄마도 마찬가지다. 그냥 사람마다 귀한 부분이 있는 거야. 그 작은 부분만 보고 그 사람 이렇다 저렇다 판단하면 못 써. 물론 엄마도 그 사람이 잘했다고 맞다고는 못하겠다. 생명보다 귀중한 게 어디 있어? 그렇다고 그 사람 인생을 우리가 어떻게 판단하겠어. 안 그래? 그냥 내버려 둬. 휘말릴 거 없다.”

   엄마는 짐짓 엄한 어조로 여자에게 말했다. 딸이 섭섭해 할 걸 알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딸을 감싸고돌면 딸이 올바른 가치관을 갖지 못할 것이기에 조금 딱딱하게 군 것이다. 여자는 아랫입술을 내밀며 “아, 알았어, 알았어. 끊어.” 하고 말했다. 

   코티는 여자의 허벅지에 앉아 TV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TV엔 시골 장터 풍경이 나오고 있었다. 코티는 가방에 핸드폰 넣는 여자를 올려다보곤 다시 TV로 고갤 돌렸다. 여자의 허벅지와 가슴 그리고 손바닥으로 코티의 따뜻한 체온이 전해져 왔다. 펄펄 살아 있는 생명체의 온기가 전해져 왔다. 이 아이들을 물건처럼 아무렇게나 대하는 사람 같지도 않은 사람을 어떻게 신경 쓰지 않고 가만 둘 수 있는 건지……. 여자는 코티를 가슴에 끌어안으며 긴 숨을 내쉬었다. 대부분의 옳은 말은 저 스스로 소화될 때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특히 사랑하는 대상과 관련된 옳은 말은 소화 기간이 더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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