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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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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Aug 05. 2016

어미 마음

   “어머니, 다 왔어요.”

   남자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조수석 등받이를 뒤로 젖혀 자고 있던 어머니가 부스스 눈을 떴다. 남자는 운전석과 조수석 차창을 내린 뒤 몸의 긴장을 풀었다. 산속에서 불어온 바람이 차 안을 환기 시켰다. 어머니는 눈을 힘껏 깜박거리며 졸음을 흩뜨렸다. 

   “검룡소.”

   어머니가 탁한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네, 검룡소예요, 어머니. 다 왔어요. 생각보다 빨리 오죠?”

   두 사람이 위치한 곳은 강원도 태백에 있는 검룡소儉龍沼였다. 검룡소는 한강 물이 시작되는 곳이다. 남자가 알아본 바로 여기서 뿜어져 나온 물이 한강과 인천을 통과해 서해로 빠져 나간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 검룡소에서 하루 쏟아져 나오는 물은 2000톤에서 3000톤 정도 된다고 했다. 어디서 그렇게 엄청난 양의 물이 생겨나는 건지……. 검룡소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 현재로서는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닷새 전, 어머니가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는 남자에게 대뜸 검룡소에 가자고 했다. “검룡소에 가자.”고 하는 어머니 목소리는 평소와 달랐다. 조급하거나 절박한 말투는 아니었지만 알 수 없는 힘이 실려 있는 말투였다. 남자는 그 힘에 이끌려 “네, 가요. 주말에 갈까요?” 하고 대답했다. 검룡소가 뭔 줄도 모르면서 가겠다고 한 것이다.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온 무렵 남자는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전화 끊은 남자는 팔에 건 외투를 의자에 걸치고 책상 앞에 도로 앉았다. 남자가 재빠른 손길로 컴퓨터 전원을 켰다. 인터넷에 검룡소를 검색해 보기 위해서였다. 사실 남자는 검룡소가 왠지 절 이름 같다고 생각했다. ‘소沼(물이 깊게 고여 있는 곳)’라는 단어를 몰랐기 때문이다.

   퇴근하고 나서도 남자는 노트북 끌어안고 검룡소를 검색했다. 거실 바닥에 앉아 검룡소 사진을 보던 남자가 베란다 너머를 문득 바라보았다. 베란다 너머 불빛이 반짝거리는 그곳에 한강이 흐르고 있었다. 검룡소에서 흘러나온 물이 저기 흐르고 있었다. 어머니는 왜 검룡소에 가자고 하신 걸까. 남자는 방바닥에 놓인 핸드폰을 집어 들고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요일 오전 10시까지 어머니를 데리러가겠다고 했다.    


   “잠 좀 깨셨어요? 이제 갈까요?”

   남자가 운전석 문을 열며 어머니에게 물었다. 차갑다고 해도 좋을 바람이 불어왔다. 무더운 7월 말에 그런 바람을 느낀다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다. 어머니는 품에 안은 배낭에서 물병을 꺼낸 뒤 남자에게 내밀었다. 남자가 물병에서 입을 떼자 어머니는 차창 밖 주차장 풍경을 휘 둘러보더니 조수석 문을 열고 나갔다. 

   남자의 검룡소 예습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남자는 우왕좌왕하지 않고 어머니를 여유롭게 이끌었다. 관광 안내센터를 지나자 그들은 ‘한강의 발원지 검룡소’라고 새겨진 커다란 바위를 볼 수 있었다. 남자는 자신과 어머니가 신은 등산화 끈을 일일이 확인했다.     


   그들은 별 말 없이 한 시간 동안 나란히 걸었다. 여러 종류의 나무와 그늘 가득한 길 그리고 계곡물 소리는 인간의 대화보다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그들에게 안겨 주었다. 머릿속 생각이 많아져서 나온 이야깃거리가 아니었다. 가슴으로 느껴지는 게 많아서 나온 이야깃거리였다. 자연은 지구상 모든 언어로 가르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인간에게 귀띔한다. 이를테면 조화롭게 어울려 살아가는 아름다움이나 나답게 살아가는 떳떳함 같은 것들을. 자연이 사용하는 의사소통 도구는 딱 하나다. 그냥 거기 있는 것……. 그냥 거기서 모든 걸 보여 주는 것……. 있는 그대로 다 열어 주는 것…….

   연갈색 나무다리와 우거진 잣나무 숲, 작은 폭포를 지나고 나자 검룡소가 나왔다. 남자가 사진으로 본 그대로였다. 검룡소는 작은 샘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너무 맑아서 눈이 시린 그 샘물 속에는 까만 구멍이 있었다. 거기서 물이 올라오나 보았다. 

   “이게 검룡소구나.”

   허릴 약간 굽히고 검룡소를 내려다보던 어머니가 말했다.

   “어머니도 처음이세요?”

   “처음이다마다.”

   “보시니까 어떠세요?”

   남자가 유쾌한 어조로 물었다. 누군가의 첫 순간을 함께한다는 건 언제나 짜릿한 일이었다.

   “여기서 물이 처음으로 올라오는 거지. 영원히 새로운 물을 만드는 거고…….”

   어머니는 남자의 방금 질문과 상관없는 말을 했다. 남자는 그런 어머니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어머니가 검룡소 쪽으로 한 발짝 더 다가가며 숨을 들이켰다. 어머니의 눈길은 여전히 깊은 샘물 안에 담겨 있었다.

   “훈아.”

   어머니가 남자를 불렀다.

   “네.”

   “강은 세월 따라 모양이 차츰 바뀐다. 근데 여길 봐라. 물이 시작되는 여긴 변함없이 그대로다. 아까 니가 차에서 얘기했지. 검룡소는 2000톤, 3000톤 되는 물을 매일 쏟아낸다고. 어미 마음도 그렇다. 지 뱃속으로 낳은 자식이 자라고 멀어지고 달라져도 어미 마음은 하염없이 그 자리 그대로다. 자식이 어찌 산다고 더 아끼고 어찌 산다고 덜 아끼고 그렇지가 않다. 그럴 수가 없다.”

   어머니가 말을 맺으며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남자가 상체를 틀어 어머니를 마주 보았다. 어머니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목 안쪽이 콱 틀어 막혀 있었다. 몸 곳곳이 뜨거웠다.

   “엄마 생각하면 이제 이 검룡소도 같이 생각해라.”

   “네.”

   “엄마 암 진단 받았다.”

   남자의 대답이 다 끝나기도 전에 어머니가 말했다. 방금 전까지 뜨거웠던 남자 몸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이번에도 남자는 어머니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이번에는 목 안쪽이 아니라 신체에 달린 모든 구멍이 다 막혀 버리는 것 같았다. 눈앞이 캄캄했고 숨 쉬기가 어려웠고 귓속이 먹먹했다.

   “남편보다 자식한테 이 말하는 게 백 배는 더 어렵네…….”

   어머니가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이며 말했다. 이제 어머니는 남자를 바라보지 않았다. 남자의 시선은 집요하게 어머니를 향했다. 

   “어머니.”

   남자가 어머니를 불렀다.

   “왜.”

   “왜요?”

   남자가 왜냐고 물은 곳은 어머니가 아니라 하늘이었다. 왜 어머니냐고 묻고 있었다. 왜 내 어머니가 그런 몹쓸 병에 걸린 거냐고 묻고 있었다. 속에서 갑작스럽게 터져 나온 질문이었다. 원래는 암이 어느 정도 진행된 거냐고 물을 참이었다.

   남자가 고갤 조금 숙이며 안경을 밀어 올렸다. 어지럼증이 몰려와 속이 뒤집어지는 것 같았다. 어머니가 남자 쪽으로 조금 다가섰다. 여전히 남자를 쳐다보지 않았다.

   “수술하면 괜찮다고는 하는데……. 그냥 엄마가 혹시나 해서……. 혹시나 해서……. 니 아빠한테는 진단 받은 그 날 얘기했다. 아빠 많이 울더라. 고생만 시켜서 미안하다고. 훈아, 근데 엄마 잘 살았어. 힘들지 않았다. 다들 이 정도 고생들은 하고 살잖아. 엄마 사는 게 힘들어서 지금 아픈 거 아니다. 그냥 몸 관리를 소홀히 해서 그런 거야. 수술하면 괜찮아질 수 있대. 근데 엄마가 훈이 너한테 이 얘긴 꼭 해 주고 싶었다……. 검룡소 얘기……. 암 진단 받은 날 병원 로비에 앉아 있는데 TV에서 검룡소 보여 주더라고. 니 생각밖에 안 나더라. 검룡소가 꼭 엄마 같고……. 그래서 엄마가 여기 오자고 했다. 엄마 차에서 자는 줄 알았지? 안 잤다.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계속 생각했어. 근데 차 안에서 계획한 거 다 실패야. 너무 횡설수설하게 말해 버렸네.”

   어머니가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말했다. 눈빛도 계속 떨리고 있었다.

   “진짜 수술하면 괜찮대요?”

   남자가 발끝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어머니 눈을 바라보면 확인하기 싫은 걸 확인하게 될까 봐 두려웠다. 어머니 눈에서 죽음의 기미 같은 걸 확인해 내고 싶지 않았다.

   “그럼. 엄마 잘 견딜 거다.”

   어머니가 양쪽 허리에 손을 척 올리며 말했다. 남자는 그제야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검룡소 같이 오기 전의 어머니와 지금의 어머니가 완전히 똑같아 보이진 않는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앞으로도 어머니일 것이었다. 어머니가 어머니라는 아주 단순한 그 사실이 남자에게 문득 위안이 되었다. 어머니에게 당장 너무 많은 것들을 묻고 싶었지만 남자는 다시 검룡소 샘물을 내려다보았다.

   검룡소에서 부는 9℃의 서늘한 바람이 둘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마주 선 그들 사이로는 그 어떤 바람이 불어 닥쳐도 끊어지지 않는 끈 하나가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끈은 두 사람이 이 생과 저 생까지 멀어져도 끊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무엇도 그 끈을 훼손 시킬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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