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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Aug 03. 2016

사막의 밤

   누런 사막의 밤은 너무도 고요했다. 마치 진공 상태의 우주 어느 곳을 떠다니는 것 같다. 보름달은 밝고 바람은 잔잔하고 천막들은 움직임 없이 그 자리에 붙박여 있으며 약간 관광지처럼 돼 버린 오아시스 맞은편엔 전깃불이 켜져 있다. 전깃불 밑엔 내용물을 알 수 없는 단단한 박스가 두어 개 쌓여 있다. 오늘 밤 이 오아시스 둘레에 묵어 가는 여행 팀이 총 세 그룹이라고 했다.

   남자가 오른손으로 천막 입구를 걷으며 밖으로 나왔다. 천막 모퉁이에 여행사 이름이 큼지막하게 프린트돼 있다. 남자의 슬리퍼 안쪽으로 고운 모래가 왈칵 밀려들었다. 낮엔 운동화나 등산화를 신고 다니기 때문에 발로 모래 질감을 직접 느낄 일이 없다.

   죽기 전에 다시 사막 올 일이 있으려나. 남자는 다리를 훌훌 털듯 하며 슬리퍼를 천막 안쪽으로 벗어 놓았다. 맨발로 사막을 마음대로 걸어 다니며 하룻밤 치 운치를 모두 만끽해야겠다. 발바닥을 감싸 안듯 하는 모래 감촉을 곱씹듯 느끼며 남자는 천막 뒤로 느리게 걸었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밭에 스며든 전깃불은 옅어지고 달빛은 진해지고 있었다. 약간 오르막길이다.


   유리 조각이나 날카로운 플라스틱 쓰레기 같은 게 밟히면 어쩌나 남자는 조금 염려했다. 하지만 이곳은 도시 옆에 딸린 해수욕장이 아니니까……. 괜한 걱정 말고 일단 실컷 걷기로 했다. 어쩌다 유리 조각에 발을 다친다 한들 코앞에 의료 시설이 있다. 생각보다 모험적이지 않은 여행 일정이다. 남자가 사막에 홀로 갇히거나 상처 치료 못해 살점이 썩어 들어가거나 할 일은 없을 것이다. 남자가 입고 있는 셔츠 주머니엔 클립처럼 생긴 위치 추적 장치가 달려 있다. 베이스캠프에서 남자가 일정 거리 이상 멀어지면 여행 인솔자가 가진 무전기로 경보음이 울리게 돼 있다.     


   남자는 베이스캠프에서 모래언덕 두 개를 지나 왔다. 베이스캠프 쪽이 잠잠한 걸 보니 이 정도 거리는 이탈해도 괜찮은 모양이다. 남자가 언덕 꼭대기에 다리를 쭉 뻗고 편히 앉았다. 발은 발목까지 모래 속에 푹 묻은 참이다. 오아시스에서 퍼져 온 물비린내가 희미하게 맡아졌다.

   남자는 셔츠 주머니에 손을 넣다가 다시 바지 왼쪽 주머니로 손을 넣었다. 핸드폰은 그곳에 있었다. 남자는 와이파이 탐색기에서 여행사 이름을 눌렀다. 저기 베이스캠프에 와이파이 송수신기가 있다. 인공위성과 연결되는 송수신기라고 들었던 기억이 있다. 남자의 핸드폰에 와이파이가 연결됐다. 남자는 메신저를 확인한 후 간단한 답장을 보내거나 필요한 일을 처리했다. 

   남자의 양쪽 엄지손가락이 잠시 핸드폰 액정 위에 멈춰져 있다.

   “또, 또…….”

   남자가 스스로를 조금 야단치듯 낮게 말했다. 남자는 자신의 핸드폰 만지는 습관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핸드폰으로 할 일 대강 마무리 한 뒤 남자는 늘 몇몇 사람의 메신저 프로필을 살펴보거나 그들의 SNS 내지는 블로그 따위를 들어가 보곤 했다. 그들이 찍은 사진을 보고 그들이 짧거나 길게 써 놓은 글을 읽었다. 그러고 있는 시간이 할 일 하는 시간보다 늘 길었다.

   타인의 일상생활을 관찰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 남자는 스스로를 수없이 꾸짖어 봤다. 게다가 남자가 들여다보는 일상생활 주인들 대부분은 현재 남자와 왕래하지 않는 이들이었다. 그들이 뭐하고 지내는지 알아 봐야 어디 써먹을 데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남자의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뿌리 내린 이 습관은 남자의 하루를 야금야금 갉아 먹었다.     


   핸드폰 액정을 억지로 끄며 남자는 베이스캠프 쪽을 건너다보았다. 예전에는 이런 식으로 헤어진 사람들을 대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하기야 예전엔 누군가와 헤어지면 그 사람 뭐하고 사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었다. 옛날 핸드폰은 전화하는 용도밖에 없으니 그걸로 상대의 일상생활을 알 수 없다. 개인 홈페이지나 컴퓨터 같은 것도 거의 발달되지 않은 때였다. 그 시절의 남자는 그리움을 능동적으로 해결했다. 피해 주지 않는 선에서 전화 걸어 목소릴 들었고 어지간하면 만나려고 애썼다. 그 당시엔 자신이 보고 싶은 사람과 직접 연결해야만 그들의 삶을 마주할 수 있었다.

   지금은 핸드폰 하나만 있으면 이 사막에서도 누군가의 생활을 쉽게 엿볼 수 있게 됐다. 그들의 오늘 얼굴과 오늘 생각은 물론이고 하루 동안 어딜 가서 누굴 만나고 뭘 먹고 다녔는지까지 볼 수 있다. 커다란 용기 내지 않아도 그리운 사람의 일상을 간단히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움의 무게를 그만큼 덜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정말 만족스럽고 행복했을까. 보고 싶은 마음을 핸드폰과 컴퓨터를 통해 간편히 처리하는 동안 마음이 진짜 정리되었을까. 남자는 모래 묻은 손으로 입술 아래를 만졌다. 무의식적인 손길이었다.

   남자는 오른쪽 허벅지 위에 놓여 있던 핸드폰을 다시 집어 들었다. 액정을 켜고 인터넷 브라우저 어플을 실행시켰다. 익숙한 주소를 입력하고 나니 한 블로그가 나왔다. 남자가 아까 점심시간에도 본 화면이다. 남자가 거의 몇 년 간 가장 많은 시선과 시간을 투자하는 타인의 일상이 중계되는 곳이다. 블로그엔 그새 새로운 게시물이 두 개 올라와 있었다. 하나는 사진만 있는 게시물이었고 하나는 사진과 글이 함께 있는 게시물이었다. 

   블로그 주인은 오늘 오후 2시쯤 B시에 위치한 갤러리에 들렀다. 친구 두 명과 함께였다. 블로그 주인은 그곳에서 까만색 유리로 된 조각 작품을 아주 인상 깊게 봤다. 그리곤 갤러리 지하 1층에 위치한 파스타 집에서 시금치 파스타를 먹었다. 갤러리 관람을 마친 블로그 주인은 자신이 사는 동네로 돌아와 영화를 봤다. 1980년대가 배경인 미국 영화였다. 그 영화가 마음에 들었는지 블로그 주인은 영화 줄거리부터 느낀 점까지 상세히 적힌 글을 꼼꼼히 작성해 놓았다.     


   남자는 액정을 켜 놓은 채 핸드폰을 다시 허벅지 위에 올려놓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핸드폰 액정이 저절로 꺼졌다. 남자가 암흑뿐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 나는 만족스러운가. 행복한가. 이 게시물들을 본 만큼 마음도 정리된 건가. 

   남자의 코와 입 사이로 헛웃음이 엷게 스쳐 갔다. 이 블로그를 하루에 수십 번씩 들락거리는 자신의 습관을 이토록 심각하게 바라보긴 처음이었다. 몇 년이나 기다린 사막 여행까지 와서 고작 하는 일이 이 블로그 들어오는 일이라는 게 어지간히 허탈한가 보았다. 맨발로 사막을 마음껏 걸어 다니겠다던 처음 마음은 핑계였다. 사람 눈 피해 이 블로그 게시물들을 샅샅이 뜯어볼 공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집착……. 집착.”

   남자가 긴 숨을 내쉬며 또박또박 발음했다.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대충 방치한 그리움이 결국 남겨 주는 건 집착이었다. 그리운 상대를 못 살게 구는 것만 집착이 아니었다. 그리움으로 자신을 못 살게 구는 것도 집착이었다.

   집착이라는 단어를 스스로에게 적용해 보긴 처음이었다. 사실 남자는 자신이 그동안 처신을 잘해 왔다고 생각했다. 이 블로그 주인과 헤어지고 이 사람에게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 가끔 블로그 들어가 전 연인의 생활을 구경하며 구질구질하게 붙잡을 마음 잘 달랬다고 생각했다. 그렇게만 하면 되는 건 줄 알았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겉보기에 두 사람 관계는 깨끗이 마감됐을지 몰라도 남자의 마음은 전혀 깨끗하지 못했다. 블로그 몇 번 방문하면 그리움도 처분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가슴에 미적지근하게 남은 감정들이 좀처럼 씻겨 내려가질 않았다.    


   세상엔 세월이 저절로 해결해 줄 수 있는 것들이 있고 자기 자신만이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어떤 그리움은 세월 따라 흐려지지만 어떤 그리움은 아무리 긴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명치에 걸려 있다. 뭔가를 직접 해야만 차츰 가벼워지거나 제거될 수 있다. 남자가 전 연인에게 가지는 그리움은 후자의 그리움인가 보았다. 남자는 이 사실을 방금 깨달았다.

   남자의 코와 입 사이로 아까 그 헛웃음이 다시 지나쳐 갔다. 아무리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는 마음은 시간이 덜 흘러서 그런 게 아니라 인연이 덜 끝나서 그렇다는 걸 알아차리려면 사막 정도는 와야 되는 건가. 아니면 내가 사람 사귀는 데 너무 낙제생이어서 사막 정도는 와야 이런 걸 깨우칠 수 있는 건가. 

   남자의 발목 위로 차가운 바람이 한 줌 불어 갔다. 남자는 핸드폰 액정을 켜고 다시 그 블로그에 접속했다. 로그인 버튼 찾는 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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