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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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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Aug 01. 2016

우리가 됐어요

   남자가 이 낯선 나라 낯선 도시에 온 지 꼬박 일곱 달이 지났다. 살을 검게 익혀 버릴 것 같던 더위가 가시고 거리마다 선선한 바람이 분다. 계절 구분이 분명하진 않지만 지금을 가을이라 불러도 될 것 같다. 사람들은 민소매 옷에 조금 구겨진 셔츠를 걸쳐 입거나 소재가 다양한 카디건을 입고 다녔다. 더러는 재킷이나 얇은 코트를 입고 돌아다니는 이들도 드문드문 보였다. 

   남자는 낡은 나무로 된 여닫이 문 양쪽 손잡이를 안으로 당겼다. 쨍한 아침 햇살이 온몸으로 쏟아졌다. 이 나라에선 대부분의 창문이 유리가 아니라 나무로 돼 있다. 대개의 건물이 돌과 나무를 이용해 간소하게 지어졌다. 새하얀 벽과 나무 창문, 나무 현관, 원목 테이블과 자갈 화단……. 

   남자가 미간을 좁히며 숨을 크게 들이켰다. 아래층에서 빵 굽는 냄새가 옅게 맡아졌다. 남자가 묵고 있는 곳은 숙소가 아니라 가정집이다. 이 나라 언어를 한 줄도 모르는 남자가 공항에서 이틀 밤을 지새우고 난 다음 날 이 집 주인이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물론 남자가 이해할 수 없는 그들 나라의 언어로. 집 주인은 배낭을 끌어안고 있던 남자에게 “여기서 이틀 내내 뭐하시오?” 하고 물었다.

   집 주인은 이틀 연달아 공항에 들른 참이었다. 아내가 피아노 콩쿠르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일정이 뒤틀린 까닭이었다. 집 주인이 고작 두 번째 마주치는 남자를 기억할 수 있었던 건 남자의 표정 때문이었다. 얼굴에서 모든 감정이 삭제된 것처럼 느껴지는 그 표정이 집 주인의 가슴을 덜컹거리게 했었다. 어떤 엄청난 위력이 사람의 모든 기대를 망가뜨리고 난 뒤에나 나타날 법한 표정이었다. 더는 아무 가능성도 믿을 수 없는 사람만이 뿜어낼 수 있는 눈빛이었다. 

   집 주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남자는 마른 침을 삼키며 배낭에 턱을 묻었다. 거의 손도 대지 않은 기내식이 메뉴 별로 눈앞에 아른거렸다. 고국을 떠날 때 가져 온 절망감보다 배고픔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사실이 허탈하기도 했다. 

   “식사는 한 겁니까?”

   집 주인이 다시 남자에게 물었다. 남자는 이제 집 주인을 바라보지 않았다. 집 주인은 손목시계를 확인한 뒤 입국장 쪽으로 사라졌다. 남자는 멀어져 가는 집 주인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남자에게도 누군가에게 거리낌 없이 호의를 베풀 만큼 마음이 여유롭던 시절이 있었다. 

   다시 집 주인이 나타났을 때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집 주인은 풍성한 머리숱을 가진 금발의 아내와 함께였다. 집 주인과 그의 아내가 남자 근처에 서서 저들끼리 뭐라고 이야기했다. 집 주인이 들고 있는 비닐봉지 속에는 호밀 빵으로 만든 샌드위치와 생과일주스가 나란히 담겨 있었다. 그들이 먹으려고 산 건 아니었다.

   남자는 그들의 인기척과 속닥거리는 목소릴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까 배낭에 턱을 묻었던 그 자세 그대로 잠들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열흘 정도는 살 수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게 남자 자신에겐 적용되지 않는 뜬소문인가 보았다. 남자는 잠결을 헤매며 ‘이대로 두어 번만 더 잠든다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특별히 두렵지는 않았다. 남자는 어디로든 떠나는 중이었는데 그 도착지가 이 세상 밖이어도 별 상관이 없었다.

   “저기, 이보시오.”

   집 주인이 남자를 흔들어 깨웠다. 남자가 그 자세 그대로 눈만 반쯤 뜨고 집 주인을 올려다보았다. 정확하게는 집 주인의 주름 잡힌 목젖 부근을 올려다보았다. 집 주인은 허리를 굽혀 남자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곤 아무것도 들지 않은 오른손으로 밥 먹는 시늉을 해 보였다. 남자는 아까보다 눈을 조금 더 크게 뜨고 집 주인을 가만히 응시했다. 집 주인은 허공에서 밥 떠먹는 시늉을 한 번 더 내더니 왼손에 들고 있던 비닐봉지를 남자에게 내밀었다. 남자가 비닐봉지를 내려다보았다. 집 주인은 야단맞기 직전의 아이 같은 얼굴로 남자의 반응을 기다렸다. 집 주인 뒤에 서 있던 그의 아내도 비슷한 얼굴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들이 지금 남자에게 주려 하는 도움이 상처가 되지 않길 그들은 바랐다.

   다행히 남자에겐 자존심이 남아 있지 않았다. 자존심을 비롯한 모든 마음이 사라져 버린 게 문제이긴 하지만……. 남자는 집 주인이 내민 비닐봉지를 천천히 받아들고 그것을 벌렸다. 호밀 빵 사이에 든 참치와 마요네즈 냄새 그리고 빨간 테이크아웃 잔에 든 딸기주스 냄새가 뱃속을 들쑤셨다. 남자는 집 주인을 한 번 올려다본 뒤 배낭을 치우고 샌드위치를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두어 번 씹기도 전에, 맛이 제대로 느껴지기도 전에, 음식물이 자꾸 삼켜졌다. 남자의 뺨과 등이 뜨거웠다. 

   집 주인이 아내를 돌아보았다. 자신의 상체를 감싸듯 팔짱 끼고 있던 아내가 무게중심을 오른발로 옮기며 남편을 맞바라보았다. 

   “나쁜 사람 같아 보이진 않는데…….”

   집 주인이 고갤 꼬며 아내에게 말했다.

   “왜? 같이 가고 싶어요?”

   아내가 오른쪽 눈썹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냥 두고 가기가 좀 그래. 찜찜하고……. 이상하네.”

   “그러게요. 이상해. 당신 이러는 거 처음 봐서 적응이 안 돼. 이 남자가 당신한테 무슨 짓 했어요? 나 없을 때 둘이 뭘 한 거야?”

   아내가 어깰 으쓱하며 물었다. 아내가 어깰 으쓱하는 건 방금 한 말이 농담이라는 자신만의 신호다.

   남편이 가족 아닌 누군가를 걱정하고 실제로 돕고자 한 적이 있었던가. 심지어 행색이 초라하고 전혀 예측되지 않아 보이는 종류의 누군가를……. 남편의 새로운 태도가 아내는 생소하면서도 반가웠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저 남자의 어떤 모습이 남편의 마음 어느 부분을 건드렸나 보았다. 인간적이고 이타적이고 다정한 어느 부분을.

   아내는 남편이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남편은 ‘내 사람’ 또는 ‘내 가족’으로 들인 이들에게 터무니없을 만큼 지극정성이니까. 하지만 남편은 ‘내 사람’과 ‘내 가족’이 아닌 외부 인물에겐 항상 인색했다. 매정했고 신경질적이고 가차 없었으며 때로는 공격적이었다. 그런데 지금 남편이 단 두 번 마주친 남자에게 샌드위치를 사다 주었다. 얼른 집에 가지 않고 그 옆을 서성거리며 난처한 기색으로 아내를 바라본다.

   외부 인물에 대한 남편 마음의 문이 조금씩 열리고 있는 걸까. 그렇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그 문을 자신이 열어 주지 못했다는 것에 조금 안타깝거나 섭섭한 심정이 되기도 했지만 아내는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사랑한다고 해서 자신이 남편에게 모든 걸 해 줄 순 없는 것이었다. 자신이 해 주지 못하는 몫은 다른 이들이 채워 줄 것이었다. 아내는 필연을 믿는 사람이었다. 모든 인연이 저마다 제 나름의 확고한 이유와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저 남자가 남편 인생에 나타난 것에도 그만한 이유와 가치가 있을 것이었다. 벌써 그 이유와 가치를 목격한 것 같기도 하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남자가 서투른 외국어로 주인 집 내외에게 인사했다. 주인 집 주방은 양 옆에 창이 있어 아침이면 빛 속에 잠겨 있는 것 같았다. 주방 왼편 오븐이 반쯤 열려 있었고 그 위로 훈김이 폴폴 올라오고 있었다. 집 주인은 신문을 접으며 웃는 얼굴로 남자를 맞았다. 그의 아내는 오븐 쪽으로 걸어가며 남자에게 “안녕.” 하고 말했다. 남자에게 배운 남자의 모국어였다. 

   남자는 늘 앉던 자리에 앉아 앞에 놓인 하늘색 접시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팔 안쪽 흉터들을 힐끔거렸다. 이 집에 사는 동안 별의 별 일들이 다 있었다. 남자는 이들 부부에게 못 보일 꼴들을 골고루 다 보였다.

   이들 부부 손에 이끌려 이 집으로 올 때만 해도 나쁜 일 같은 게 다 끝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건 오산이었다. 남자가 가지고 있던 절망감은 이 먼 타국까지 쫓아와 남자를 수시로 괴롭혔다. 절망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남자는 주로 자신의 몸을 못 살게 굴었다. 학대했다. 결국 남자는 30년 넘게 살아 온 고국에서보다 이곳에서 병원을 더 자주 찾았다. 남자 스스로 찾은 게 아니라 대부분 의식을 잃은 채로 구급차 신세를 졌다. 눈 감고 축 늘어진 채로 실려 가는 남자 옆엔 언제나 집 주인과 그의 아내가 있었다. 가끔은 집 주인만 있거나 그의 아내만 있었다.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누가 그러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부부는 남자를 필사적으로 지켜내려 했다.   

 

   뭔가를 깜빡했단 표정으로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싱크대 옆으로 향한 남자는 집 주인 아내가 쥐고 있던 빵 칼을 받아 쥐었다. 남자는 빵을 썰었다. 집 주인 아내는 익숙한 동작으로 냉장고를 뒤적거린 끝에 오렌지를 찾아냈다. 집 주인은 반으로 접은 신문지를 뒤집어 새로운 소식을 읽었다. 이들의 시간은 오랜 약속처럼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흘러갔다.    


   언젠가 집 주인에게 아내가 물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요. 우리……. 우리가 됐어요. 우리 셋.” 아내는 집 주인과 자신과 남자 세 명이 찍은 사진 모퉁이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레스토랑 오픈 이벤트라며 주방장이 직접 찍어 준 폴라로이드 사진이었다. 

   “공항에서 말이야.”

   남편이 아내의 시선을 따라가며 말했다.

   “그 날이요?”

   “응, 저 녀석 처음 만났던 그 날 공항에서.”

   “네.”

   “그때 저 녀석 표정 보는데 그게 꼭 나중 내 표정 같더라고. 엄살떠는 게 아니라 진짜로 모든 걸 다 잃어버린 표정 말이야. 그 표정이 꼭 내 미래를 잠깐 보여 주는 것 같았어. 정신 나간 사람이 하는 소리 같겠지만 정말이야. 신이 내게 마지막 경고장을 던지는 것 같았어. 계속 그렇게 살 거냐고. 계속 살다간 이런 얼굴 되고 말 거라고……. 당신만 알고 있는 게 아니라 나도 알아. 내 인생 반쪽뿐인 거. 사람들한테 터놓고 너그럽지 못해서 만나는 사람들만 만나고 만나는 사람들한테만 친절한 거. 그런 내 인생 끝에 남는 게 그 표정 하나뿐인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 저 녀석이랑 처음 눈 마주치자마자……. 그래서 도저히 저 녀석 그대로 두고 갈 수가 없었어. 뭐라도 해 줘야겠더라고. 신기하지? 그 잠깐 사이 그 많은 생각을 했다는 게.”

   아내는 남편 말이 정신 나간 소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말뜻을 완전히 이해할 수도 없었다. 반드시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누군가를 만나 인생이 변화되는 과정은 언어로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누군가로 인해 차츰 달라지고 나아지는 인생을 그저 바라보고 음미하며 또 다른 날들을 살아갈 따름이다. 

   모든 인연은 그럴 만한 근거가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다가오고 어떤 인연이 우리에게 등장한 근거를 완전히 이해하려면 아주 긴 세월이 걸린다. 때로는 그 근거를 평생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다.

   어떤 인연이 우리에게 닥쳐 온 진짜 사연을 우리가 알든 알지 못하든 모든 인연은 우리에게 각자 몫을 해내고 있다. 동기부여를 해 주고 사랑을 실감하게 해 주고 행복을 만지게 해 주고 살아온 순간들을 되돌아보게 해 주고 진흙탕에서 몸을 빼내게 해 준다.

   아내는 폴라로이드 사진을 액자 앞에 기대어 놓으며 “우리…….” 하고 작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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