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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Aug 08. 2016

버스를 좋아해

   당신 집으로 통하는 길을 걸으며 벌써 포클레인만 세 대 보았다. 공사장 팻말은 너무 많은 곳에 있어 이제 편의점 간판처럼 익숙해졌다. 공사 중, 관계자 외 출입을 금합니다. 안전 제일.

   당신 사는 동네 입구에 새로운 도로가 깔리고 있었다. 당신은 새로운 도로가 옛날 도로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고 두어 번 반복해서 말했다. 내가 보기에도 사라진 도로 흔적과 새로 만들어지는 도로 흔적이 별로 달라 보이지 않았다.

   언젠가 당신이 조선시대 사진을 보여 준 적 있다. 당신 회사 근처에 있는 시립 도서관에서였다. 당신은 여름휴가 마지막 날을 도서관에서 보내고 싶어 했다. 당신은 도로 없이 흙길뿐인 조선시대 풍경 사진을 신기해하며 뜯어보았다. 나는 당신 얼굴 옆에 내 얼굴을 가져다대며 그 사진을 골똘히 쳐다보았다. 그땐 그 흙길 사진 보는 것보다 당신 곁에 아주 가까이 있을 수 있다는 게 더 신기했는데…….

   하여간 당신은 ‘길’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다. 길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하나의 길이 돼 주고 싶다고 말했었다. 그 날 붉어지던 당신 얼굴 색깔이 아직 눈앞에 선연하다.    

   노란 공사장 팻말을 하나 더 지나자 완전한 흙길이 나왔다. 그 길로 들어서던 당신이 나를 돌아보며 “뭔가 음산한 데로 데려가는 거 같네.” 하고 웃었다. 나는 당신에게 장난스런 표정 지어 보이며 귀신 흉내를 냈다. 내가 장난치고 있다는 걸 알았어도 당신은 몸을 움츠린 뒤 “하지 마. 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 말라고 했어.”라며 내게 엄포를 놓았다. 나는 귀신을 무서워하는 당신의 허점을 좋아하기 때문에 장난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정확하게는 당신이 자기 허점을 내게 스스럼없이 보여 주는 걸 좋아한다.

   당신이 무서운 걸 무섭다고 하고 어려운 걸 어렵다고 할 때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다. 가슴이 가득 찬 사람이 된다. 당신이 내게 자기 모든 면을 선선히 꺼내 보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생각하기에 예쁜 면이든 그렇지 않은 면이든 내게 흔쾌히 열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더 큰 선물은 없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잘 모르기도 하고 내 어느 부분을 알더라도 그걸 표현하는 방법에 너무 서투른 내가 당신 앞에 좋은 모습만 보여 주려 할 때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당신은 자신의 온갖 부분을 내게 다 보여 주었다. 그런 당신이 내 옆에 있었기에 나도 숨겨진 내 안의 약점과 못난 부분을 하나씩, 하나씩 당신에게 구경 시켜 줄 수 있었다.    

   “근데 왜 버스 타고 오자고 한 거야? 공사 때문에?”

   내가 당신에게 물었다. 당신이 고갤 저었다.

   “버스 좋잖아. 버스 싫어해?”

   당신이 턱 끝을 조금 들어 올리며 말했다.

   “아니, 좋아. 아니……. 사실 별로 안 좋아해. 복잡하고 시끄러워서. 근데 너랑 버스 타고 오는데 오늘은 좋더라. 버스 타고 오면서 니가 들려 준 음악도 좋았고. 처음에는 자리 없어서 둘 다 서 있었잖아. 버스 흔들릴 때마다 서로 안 넘어지고 잘 서 있나 확인하는 것도 좀 좋았다. 우리 버스 덜컹거릴 때마다 한 번도 안 빠지고 눈 마주쳤어. 몰랐지.”

   내가 버스 손잡이 잡는 시늉을 하자 당신도 그 몸짓을 따라했다.

   “넌 버스 왜 좋은데?”

   내가 물었다. 당신의 신발 앞축에 붉은 모래가 묻어 있다.

   “너무 많은데……. 버스 좋아하는 이유…….”

   당신이 걸음 속도를 늦추며 우물거렸다.

   “그 너무 많은 거 한번 들어 보자.”

   “첫 번째,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다. 나 가끔 운전하기 귀찮을 때 버스 타고 출근하잖아.”

   “알아. 그리고 가끔 아니잖아. 나한테 시도 때도 없이 버스 정류장으로 너 데리러 나오라고 하잖아.”

   “그런 김에 얼굴도 보고 얼마나 좋아? 됐어, 조용히 해 봐. 둘째, 버스 타고 있으면 잘난 척하지 않는 기분이 든다.”

   “그게 뭔데?”

   “그냥……. 버스 타고 있으면 가장 보통의 사람이 된 거 같아. 버스 안에 같이 타고 있는 사람들도 나도 전부 동등하게 느껴져. 그 느낌 되게 좋아. 누구한테 꿀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누구 깔보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평등하게 느껴지는 거. 뭔지 알겠어? 음……. 자신감을 갖는 건 좋은 거라고 생각해. 근데 자신감이 너무 과해서 ‘나만 최고다.’ 그러면 곤란하잖아? 그런 과한 자신감을 반성하게 돼. 버스 타면.”

   “거창하네.”

   “아니, 실제로 이 느낌이 거창한 건 아닌데 말로 옮기니까, 그러게, 거창해 보인다.”

   “셋째는 없어?”

   “있어. 이게 제일 중요해.”

   “뭔데?”

   “내가 버스 타고 난 뒤에 사람들 내리는 거 보잖아.”

   “응.”

   “내려야 정상이잖아.”

   “뭐, 그렇지. 근데?”

   “사람들 다 자기랑 똑같은 정류장에서 버스 타고 똑같은 정류장에서 내려야 한다고 고집 피우는 사람 없잖아.”

   “응.”

   “너 나 고집 되게 센 거 알지.”

   “응.”

   “‘응’ 이라고 했냐, 방금?”

   “어……. 잘못 대답한 건가…….”

   “농담. 나 고집 세. 늘 그런 건 아니지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생각해 주길 원해. 그래서 고집 부려. 나처럼 생각하라고.”

   “그런데 버스 타고 있으면서 사람들 자기 길 가는 거 보면 ‘다 나처럼 돼야 된다! 다 나처럼 생각해야 된다!’ 하는 마음이 반성된다, 그런 건가? 사람들이 자기 내릴 정류장에서 내리는 거처럼 다 자기 식대로 생각하는 게 정상이니까.”

   “응. 똑똑하네. 학습 능력 좋아, 하여튼.”

   “버스 하나 타면서 이 많은 것들을 낱낱이 생각하는 거야?” 

   내가 굵게 뜬 눈으로 물었다. 흙길 모퉁이를 돌자 당신 살고 있는 집이 보였다.

   “그럴 리가……. 솔직히 대부분 아무 생각 없이 버스 타. 운전하기 귀찮으니까. 그래도 반성할 것들이 문득문득 떠오를 때가 있어. 특히 퇴근하고 집에 오는 버스 안에서.”

   당신이 하품을 참으며 말을 마저 했다. 

   “가끔 이렇게 버스 타고 오자. 좋네. 좋은 게 많네.”

   검지로 당신 볼을 찌르며 내가 말했다. 

   “근데 너랑 버스 타고 오면…….”

   당신이 끝말을 얼버무렸다.

   “나랑 버스 타고 오면 뭐?”

   “생각할 시간이 별로 없잖아.”

   “왜 없는데?”

   방금 당신이 한 말의 뜻을 알고 있으면서 나는 당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당신 목소릴 타고 전해지는 당신 마음을 직접 듣고 싶기 때문이다. 당신은 여느 때처럼 한동안 말없이 있다가 속에 있는 진심을 풀어내 줄 것이다. 그러면 나는 꿈꾸는 듯한 얼굴로 당신을 물끄러미 바라볼 것이다. 당신 진심에 온통 감동된 눈을 깜박거리며 벙글벙글 웃을 것이다. 그렇게 웃다가 나도 이런저런 말을 해댈 것이다. 당신 것보다 투박하지만 당신만큼 진솔한 내 마음을 내 진짜 마음을 한 가닥씩 떼어다 당신 앞에 놓아 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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