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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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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Aug 24. 2016

진짜로 어떤 사람인지


   “눈망울…….”

   당신이 중얼대듯 말했다. 당신은 아까 자세 그대로 여전히 핸드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중이다. 나는 손목에 찬 까만 시계와 영화 티켓을 번갈아 확인했다. 영화 상영 시간까지 아직 40분이나 남았다. 당신과 나는 상영관 옆 카페에 마주 앉아 있다. 영화관에서만 맡을 수 있는 달콤한 (하지만 당신은 가끔 이 냄새가 너무 진해 머리가 아파 온다고 했었다) 팝콘 냄새와 밀폐된 공간의 묵직한 공기가 우리 둘레에 고여 있다. 이젠 제법 편안해진 당신과 나 사이의 침묵도 방금 전까지 그곳에 고여 있었다.

   “눈망울?”

   하얀 머그잔 옆에 티켓을 내려놓으며 내가 당신에게 물었다. 

   “응, 나 봐봐.”

   “보고 있잖아.”

   “내 눈 봐봐.”

   핸드폰 내려놓은 당신이 의자를 내 쪽으로 당겨 앉으며 말했다. 나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 얼굴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연한 갈색 빛 도는 당신 눈동자와 잘 뻗은 눈매와 반달눈썹을 신중히 살펴보았다. 관찰 당하는 입장이 아니라 관찰하는 입장인데도 약간 부끄러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뺨 언저리가 따끈했다. 카페 조명이 주홍빛이라 내 얼굴색 변화가 티 나진 않을 것이다. 글쎄, 이런 건 티가 안 나는 게 좋은 건지 나는 게 좋은 건지…….

   “내 눈 어때?”

   당신이 내 쪽으로 얼굴을 좀 더 내밀며 물었다. 

   “왜, 누가 니 눈 보고 뭐라 그래?”

   “내 눈 뭐 닮은 거 같아?”

   내 질문이 귀에 안 들어오는지 당신은 “내 눈 어때?”와 “내 눈 뭐 닮은 거 같아?”에 대한 대답만 구하는 표정이다. 그래, 급한 사람에겐 당장 급해 하는 것부터 해결해 주는 게 좋다. 나는 당신이 원하는 대답부터 내 주기로 했다. 왜 그런 질문했느냐고 당신에게 물어 보는 건 그 다음 순서다. 

   “음……. 강아지 닮았어. 온순한 강아지? 근데 가끔 성질부릴 줄도 알고 자기가 지켜야 될 건 지킬 줄 아는 강아지.”

   내가 대답하자 당신은 의자 등받이로 몸을 훌쩍 물렸다. 마음에 드는 대답이 아닌가 보다.

   “다른 건 없어? 다른 건 안 닮았어?”

   아까보단 덜 적극적인 말투로 당신이 내게 물었다. 이제 내가 되물을 차례가 왔다.

   “누가 뭐라고 했어? 니 눈 보고?”

   “사슴 눈망울 같다잖아.”

   당신이 뭔가 억울하단 투로 대답했다.

   “사슴 눈망울 싫어? 예쁘다는 뜻 아닌가? 칭찬 같은데.”

   “아니야. 사슴 눈망울……. 외로운 눈 같단 소리잖아…….”

   “그런가?”

   뒷덜미에 손을 갖다 대며 내가 말했다. 사슴 눈망울이 외로운 눈망울인가? 사슴 눈망울이 정확히 어떤 모양새길래? 나는 사슴 눈망울을 자세히 본 적 없다. 본능을 품은 게 아니라 감정을 품은 동물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그러니 어떤 동물을 쳐다보며 ‘배고파하는 눈이구나.’ 싶어 한 적은 있어도 ‘외로워하는 눈이구나.’ 싶어 한 적은 없다. 물론 내가 ‘인간만이 감정을 가진다.’는 오만한 가치관을 갖고 사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인간인 내가 동물의 감정을 무슨 수로 헤아린단 말인가. 감히 내가 무슨 자격으로 어떤 동물을 바라보며 저 동물이 고독하다거나 행복하다거나 슬퍼한다 할 수 있겠는가. 그건 이해가 아니라 오해일 수밖에 없다. 할 말 다 하고 온갖 표현 다 하는데도 사람 감정 제대로 헤아리지 못할 때가 태반인데 하물며 말없는 동물 감정은 오죽하겠는가. 심지어 나는 내 속에 있는 감정조차 똑바로 알지 못한 채 살아가지 않는가. 실은 아주 슬픈데 괜찮은 거라 착각하고 그러면서……. 하여간 감정이라는 건 거의 알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아니지. 어쩌면 감정 헤아리기에 서툰 게 나뿐인 건 아닐까. 당신은 실제로 사람이나 동물 감정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말 사슴은 다른 동물들에 비해 외로움을 많이 타는 것일 수도 있다. 

   내가 이런저런 생각 속에 잠겨 있자 당신은 내 무릎을 콕콕 찔렀다.

   “응?”

   잡다한 생각에서 벗어나며 내가 당신 눈을 바라보았다.

   “뭐야, 무슨 생각해. 나한테 집중해.”

   “아니……. 사슴 눈이 외로운 눈이라길래……. 신기해서. 동물 눈 들여다보면서 저 동물 참 외롭겠다고 느끼는 게 신기해서.”

   내가 우물우물 대답하자 당신이 웃음을 푹 터뜨렸다.

   “왜 웃어?”

   “내가 그렇게 감성적이고 섬세한 사람처럼 보였어? 되게 기분 좋네.”

   “에? 아니야?”

   “아니지! 내가 보기에 사슴 눈이 외로운 눈처럼 생겨서 아까 그 말한 게 아니라…….”

   “그럼?”

   “사슴들은 새끼를 거의 하나만 낳아. 둘을 낳는 건 드문 일이고. 사슴들은 거의 외동이라구. 그 얘기 듣고 나니까 사슴들 보는데 하나같이 외로워 보이잖아. 그래서 그런 거야. 내가 유난히 감수성이 뛰어나서 잘 알지도 못하는 걔네 눈만 보고 ‘외로운 존재다.’ 느끼는 게 아니라……. 걔네가 그런 환경에서 살아가니까 대강 유추한 거라구. 눈만 봐서 내가 어떻게 알아. 걔네가 진짜 외로운지 아닌지.”

   당신이 웃음기 도는 얼굴로 말했다. 나는 한 방 얻어맞은 얼굴이 되었다. 내가 민망한 표정으로 조금 웃자 당신은 다시 크게 웃기 시작했다. 내 웃음소리도 점점 커졌다.

   “무안하다.”

   시계를 내려다보며 내가 말했다. 영화 시작까지 34분 남았다. 

   “재밌네. 나는 내 얘기만 하고 너는 니 얘기만 하고. 그러면서 우리 생각에 빠져 있고……. 사람들 하는 대화 대부분이 그런 건가? 같은 곳에서 같은 주제로 대화하는 거 같지만 속마음은 영 딴판인 거. 그런 거 관련된 사자성어 있지 않았나? 동…….”

   당신이 내 손목을 당긴 뒤 시간을 확인하며 말했다. 

   “동상이몽?”

   “아, 맞아. 그거.”

   “질문하면 되잖아.”

   내가 머그잔을 들어 올리다 말고 문득 말했다.

   “질문?”

   “내가 방금 니 말을 이렇게 이해한 거 같다. 이게 맞느냐. 이런 식으로 질문하면 되잖아. 질문해서 확인하면 되잖아. 그럼 한 자리에서 다른 생각 다른 마음 품지 않을 거 아니야. 다른 생각 다른 마음 품더라도 이제 그걸 알아서 서로 맞춰 나가거나.”

   “근데 실제로 그렇게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똑바로 이해하는 것보다 대충 오해하고 지내는 게 편하니까. 그래, 이런 질문 잘 안 하지. 니 말 맞아. 그렇게 하는 사람 거의 없을 거다. 서로가 진짜 뭘 원하는지 제대로 확인하는 거보다 그냥 잘 모르는 채로 내버려두는 게 간편하잖아……. 적당히 만나고 적당히 헤어질 사람들하고는 그런 게 좋지. 별로 안 내켜도 적당히 눈감는 거. 안 물어보고 확인 안 하고 지나치는 거. 굳이 내 속에 있는 거 다 보여줄 거 뭐 있냐. 상대방 속에 있는 거 다 볼 것도 뭐 있어. 어차피 오래 볼 사이도 아닌데. 근데 배우자나 가족한테는……. 좀 불편하고 힘들어도 자꾸 질문해서 정확한 마음 알아내는 좋지 않겠냐. 내 쪽에서도 정확한 마음 주고.”

   내 물음과 동시에 당신은 고민에 잠긴 표정이 되었다. 방금 한 말이 어려운가? 내가 너무 횡설수설 말했나?

   “그게 왜 좋은데? 싸우잖아. 그러면 싸워. 솔직히 얘기해 달라 하거나 내가 솔직히 얘기하기 시작하면 자꾸 부딪쳐. 그렇잖아. 좀 맘에 안 들어도 ‘괜찮아. 그냥 하자.’ 그러고 넘기면 될 일을 ‘니 맘은 어떠냐구? 넌 진짜 하고 싶냐구?’ 묻거나 ‘나는 이렇게 하는 게 좋은데?’ 걸고넘어지면 그때부터 골치 아파지는 거야.”

   여전히 석연찮은 표정으로 당신이 말했다.

   “그건 그런데……. 나는 싸울 때 싸우더라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마음 품고 사는지 어떤 생각 갖고 사는지……. 제일 가까운 사람한텐 그냥 다 보여 주고 싶어. 우길 때 우기고 양보할 때 양보하더라도 말이야. 나는 밥보다 빵이 더 좋고 산보다 바다가 더 좋고 사실은 말귀 되게 못 알아듣는 사람이라는 거……. 뭐 그런 거……. 다 보여 주고 싶어. 그리고 보고 싶다. 내가 만나는 사람이 진짜로 어떤 사람인지. 내가 밥보다 빵 좋다고 할 때 같이 빵 먹어 주는 사람 물론 편해. 근데 그런 사람을 오래 두고 보거나 사랑할 수는 없다. 진짜가 아니잖아. 관계는 사람이랑 하는 거지 배려랑 하는 거 아니잖아.”

   나는 다시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영화 시작까지 26분 남았다.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내가 너랑 싸우자는 건 아니고……. 일일이 의견 충돌하자는 것도 아니다. 다른 의견은 맞추면 돼. 그 과정 힘든 거 맞아. 처음엔 싸우겠지. 근데 처음에 의견 잘 못 모아서 싸울 거 무섭다고 자꾸 포기하고 그러면…….”

   “나중엔 다 포기하겠지.”

   당신이 불쑥 말했다. 내가 고갤 끄덕거렸다. 당신 입술이 다시 열렸다.

   “일단 나 화장실 다녀올게. 자리 피하는 게 아니라 진짜 지금 가고 싶어. 그리고 고마워. 이런 얘기 쉽지 않은 거 알아. 그러니까 결론은 나한테도 그 진짜 모습 보여 준다는 거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니 얘기 듣다 보니 그 모습 보고 싶네. 보여줘.”

   당신이 나를 어르듯 말했다. 나는 아까보다 고갤 더 깊이 끄덕거렸다. 당신이 만족스런 얼굴로 테이블을 떠나갔다. 나는 머그잔 밑에 깔려 있던 영화 티켓을 꺼내 보았다.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영화가 곧 시작된다. 당신 기다릴 겸 시간도 때울 겸 나는 핸드폰 액정을 켰다.

   “아!”

   등 뒤에서 당신이 갑자기 나타났다.

   “벌써 갔다 왔어?”

   깜짝 놀란 얼굴로 내가 물었다.

   “난 밥이 더 좋아. 진짜 갔다 올게.”

   당신이 다시 후다닥 사라졌다. 얼굴 전체에 말랑말랑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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