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단편 소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이로운 Aug 22. 2016

보고 싶어?

   “예전엔 싫었다?”

   이모가 무거운 생맥주 잔을 테이블에 ‘텅’ 소리 나게 놓으며 말했다. 난데없이 뭐가 싫었단 말인가. 아르바이트생이 안주 접시 갖다 놓고 가는 바람에 방금 잠깐 침묵이 흐르고 있던 차였다. 침묵 생기기 전에 했던 대화는 이모 자식인 사촌동생의 대학 진학 문제였다. 이제 다 컸으니 자기 진학 문제 정돈 알아서 결정하도록 이모는 녀석을 그냥 내버려두겠다고 했다. 근데 갑자기 ‘예전엔 싫었다.’니. 뭐가? 나는 젓가락으로 튀김 더미를 뒤적거리다 이모를 힐끗 쳐다보았다.

   “뭐가 싫었는데?”

   내가 물었다. 예전엔 사촌동생이 자유롭게 선택하는 게 싫었단 건가?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거 말이야. 어른들 자주 그러잖아. 하룻밤만 지나면 아무 일도 없었던 척……. 심지어 이모 친구 아빤 이모 친구 뺨을 때려 놓고 다음 날 아침에 ‘잘 잤냐?’ 그러더래……. 콧구멍을 아주 열심히 후비면서…….”

   이모는 전혀 짐작할 수 없던 종류의 이야길 꺼냈다.

   “으…….”

   “그런 게 싫었어. 너무 무책임해 보이고 너무 무례해 보여서.”

   “난 지금도 싫은데?”

   내가 어깰 부르르 떨며 말하자 이모는 빙긋 웃었다. 이모 앞에 놓인 차가운 생맥주 잔 표면에 맺혔던 물방울이 밑으로 쭉 흘러내렸다. 

   “근데 갑자기 그 얘긴 왜? 뭔 일 있었어?”

   김말이 튀김 한 입 베어 물며 내가 물었다.

   “뭔 일은 아니고…….”

   이모가 말을 얼버무리며 번들거리는 내 입술을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이모도 기름 가득 밴 김말이 튀김을 집어 들었다. 

   “그럼 뭔데?”

   나는 좀 집요하게 캐묻기로 했다. 이모 표정에 그늘이 껴 있기 때문이었다. 마음에 뭐가 턱 걸려 있길래 그런 얼굴로 느닷없는 이야길 두서없이 늘어놓는가 말이다.

   “외할머니 생각나서. 니 외할머니. 우리 엄마.”

   이모가 김말이 튀김 껍데기를 약간 갉아먹으며 말했다. 

   “외할머니? 외할머니가 생각났어?”

   “응. 아까 니가 보낸 문자 보자마자 허겁지겁 오는데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어떤 할머니를 봤거든. 갑자기 가슴이 쿵 내려앉더라구. 그 할머니랑 니 외할머니랑 너무 닮아서. 너 외할머니 얼굴 기억나?”

   “안 나. 나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어. 큰오빠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신 걸……. 사진으로 본 거 같긴 한데 가물가물해.”

   “그치? 아무튼……. 니 외할머니가 그런 분이셨어. 아까 이모가 말했잖아.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그런 어른. 불같이 화내다가도 돌아서면 아무 일도 없었던 척……. 온갖 욕을 퍼붓다가도 밥 먹을 때 되면 ‘얼른 와서 밥 먹어라. 국 식기 전에 먹어라. 많이 먹어라.’ 하시던 분이거든, 니 외할머니가.”

   “그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거 예전에 싫었다고 이모가 말했지. 그럼 지금은 좋다는 거야?”

   이모 말을 제법 귀담아 듣고 있었단 표정으로 내가 질문했다. 

   “좋다기보다……. 이해가 되네.”

   젓가락 쥔 손을 테이블에 얹어 놓으며 이모가 말했다. 젓가락 끝엔 튀김옷 반쯤 벗겨진 김말이가 집혀 있었다. 나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단 표정으로 이모를 바라보았다. 이모가 김말이 튀김을 접시 안에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난 니 외할머니처럼 자식 앞에서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척 못했어. 난 그런 뻔뻔스러움이 없는 엄마였거든. 강재, 강준이 막 혼내고 나면 내가 맘 쓰여서 한 이틀은 서먹하게 지냈다. 아직 어린 애들이 뭘 알고 그랬겠냐 싶어도 걔네들한테 서운한 거 생기면 며칠 말 않고 지내기도 했어. 근데 벌써 강재가 열아홉 살이고 강준이가 열일곱이야. 대학 가고 군대 가고 취업하면 나 걔네들 얼마나 보겠니. 그거 생각하면 내가 걔네한테 등 돌려 있던 시간이 왜 그렇게 아깝나 모르겠어. 나중에 엄마 참 뻔뻔했다 소리 듣더라도 좀 더 걔네한테 붙어 있고 걔네 얼굴 더 마주하고 말이라도 한두 마디 더 걸어 봤을 걸 그랬어.”

   마치 내일이라도 당장 강재, 강준이와 헤어질 사람처럼 이모는 슬프게 말했다. 이모 목소리에 우리 엄마 목소리가 겹쳐지는 것 같아 내 마음도 울적해졌다. 이모 성격과 우리 엄마 성격은 너무 똑같아서 가끔 놀라울 정도다. 그래서 이모하고 내가 이렇게 친해질 수 있었겠지. 아무튼 이모처럼 엄마도 나를 혼내거나 내가 말썽 피우면 나하고 며칠씩 때론 몇 주씩 나와 어색하게 지냈다. 대화를 안 하거나 정말 필요한 대화만 나눴고 나와 마주치는 시간을 최소화했다. 이모처럼 우리 엄마도 그 시간들을 아까워할까? 아까워할 시기가 지난 건가. 내 나이가 벌써 스물여섯이니까…….

   고갤 들고 이모를 건너다보았다. 이모는 목이 타는지 속이 타는지 생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내가 건배 하려 내 잔을 드는데 이모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물론 그런 부모 무책임해.”

   “응?”

   “화내고 혼내고 때리기도 했다가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거 무책임한 거야. 이유야 어떻든 자식 입장에선 그렇잖아. 자식이 뭔 짓 하면 왜 그랬냐고 당장 따져 물으면서 정작 부모는 자기 행동에 대한 이유 설명이 없는 거잖아. ‘엄마아빠가 이 민망한 분위기 어쩔 줄 몰라서 그냥 모르는 척 어물쩍 넘어가는 거야.’ 혹은 ‘무안해 하면서 말 안 하고 안 마주치고 보내는 시간 너무 아까워서 그러는 거야.’ 하는 설명이 없는 거잖아. 사과도 없고. 그거 옳은 거라고 볼 수 없어.”

   “…….”

   “그치만 그냥……. 이해가 되네. 내가 부모가 돼서 그런 건가? 내 부모를 조금씩 받아들이게 되네. 분명 옳지 않았다고 생각은 하지만 맘속으론 끌어안게 돼. 뭔 말이냐구? 너도 시집 가 봐. 그럼 이모 말 이해될 거야. 니 엄마도 이모처럼 외할머니처럼 서툴러 그렇지 너 얼마나 아끼는데. 아주 끔찍하다……. 니 엄마 나한테 전화 오면 니 얘기만 하는 거 알아? 그 말수 적은 사람이 니 얘기라면 30분이 뭐야 한 시간은 족히 떠들어.”

   “이모, 외할머니 많이 보고 싶어?”

   갑작스러운 물음이 터져 나왔다. 내 물음을 받은 이모 눈이 갑자기 글썽해졌다. 많이 보고 싶구나. 

   외할머니는 이모가 중학교 땐가 고등학교 때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이모는 집안 막내여서 외할머니 사랑을 많이 받긴 했지만 막내가 어디 괜히 막내겠는가. 이모는 막내답게 이리저리 사고치고 다니며 외할머니한테 타박도 많이 받고 매도 많이 맞았다.

   사랑이든 타박이든 지나고 나면 다 추억이라더니 그 말이 맞나 보다. 우리 엄마를 비롯한 외할머니 자식들 가운데 외할머니 얘길 가장 많이 하는 게 이모니까……. 이모가 외할머니 얘기 꺼낼 때면 자주 하는 말이 하나 있다. 나이 들수록 점점 더 고약하게 잔소리하고 등짝 좀 더 많이 때려도 좋으니 외할머니가 지금까지 살아계셨으면 좋았겠다고. 엄마니까.

   저렇게 다 큰 어른도 아직 엄마를 찾는구나. 나는 덜컥 무서웠다. 이다음에 내가 아줌마가 되어서 엄마 없는 세상을 살다가 별안간 엄마가 보고 싶어지면 어떡하지? 그 잡기 좋게 도톰한 손 움켜쥐고 “엄마, 엄마.” 엄마를 용건도 없이 불러 보고 싶어지면 어떡하지? 내가 확실히 잘못한 문제여도 괜히 뻗대고 싶은 날 유일하게 얼굴 비비러 갈 그 가슴팍을 가진 엄마가 보고 싶어지면 어떡하지? 아……. 어쩔 수 없이 다 늙어도 엄마를 찾을 수밖에 없는 건가. 엄마니까.

   “야, 우리 엄마 얘기하는데 니가 왜 울어?”

   갑자기 닭똥 같은 눈물을 줄줄 흘리는 내게 이모가 핀잔했다. 이모 볼도 축축했다. 

   하지만 우린 내일이 되면 또 우리 생활 속에 파묻혀 살아가겠지. 엄마를 잊고 어렸던 옛 시절을 잊고 오늘을 살아가겠지. 그러다 옛 둥지를 찾아 온 철새처럼 이따금 웅크리고 앉아 이렇게 또 발음해 보는 거다. 엄마아. 엄마아. 

   오늘 밤엔 엄마아빠 네 집으로 가야겠다. 급작스런 불청객이면 뭐 어때. 엄마가 안 된다면 나라도 뻔뻔해져야지.




홈페이지 : www.parkdabin.modoo.at

매거진의 이전글 그런 게 있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