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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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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Aug 19. 2016

그런 게 있어

   집 앞에 생선 가게가 생겼다. 살아 있는 생선을 팔기도 하고 생선 구이를 팔기도 한다. 조개류와 갑각류도 같이 취급한다. 가게 앞엔 커다란 수족관이 두 개 놓여 있다. 저걸 수족관이라 불러도 되는 건가? 수족관에서 생선을 꺼내 먹는다고 생각하니 왠지 잔인하게 느껴진다. 양식장이라고 하면 덜 그런데……. 살았던 걸 죽이긴 매한가지면서 말 한 마디 차이가 참 어마어마하다. 님 하나에 점 하나만 붙이면 남이라더니. 내가 너무 감성적인 건가.

   오늘은 생선 가게 앞에 파란 트럭 한 대가 서 있다. 파랗다고 하기 좀 그런 게 트럭이 많이 낡았다. 바다 같은 데는 소금 바람 불어 자동차 상하기 십상이라더니 정말인가 보다.

   트럭 뒤 짐칸엔 소금이 잔뜩 쌓여 있다. 천일염도 있고 처음 보는 종류의 소금도 있다. 염전 이름 대문짝만하게 박힌 소금 세 포대가 짐칸 끄트머리에 위태롭게 얹혀 있다. 저것들을 안전하게 싣고 온 비결이 뭐지? 아니면 도로에 벌써 몇 개는 흘리고 왔을까. 결국 내 멋대로 판단 내릴 거지만 ‘이걸까, 저걸까.’ 추측해 보는 시간은 늘 오묘한 쾌감을 준다. ‘이걸까, 저걸까.’ 중에 답이 없을 수도 있지만 내 추측 속에 무조건 답이 있다고 생각되는 혼자만의 고집. 그 고집엔 달콤한 구석이 있다. ‘난 아무것도 모르는 천하의 멍청이야…….’ 보단 낫지 않은가 말이다. 물론 자기 고집을 남한테 강요하면 문제가 된다. 하지만 혼자 곱씹는 고집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그 고집을 적당히 조절할 수 있게 되면 그게 자신감이 되는 거 아닐까.    


   트럭 옆을 막 지나칠 무렵이었다. 짠 냄새와 비린 냄새가 한꺼번에 훅 들이닥쳤다. 엄밀히 따지자면 냄새가 들이닥친 게 아니라 그 냄새 속으로 내가 걸어 들어간 거다. 아무튼 숨이 “컥.”하고 막혔다. 갑자기 어떤 실루엣 하나가 눈앞에 떠올랐다. 어떤 목소리도 귓가에 어른거렸다. “순이야…….” 하던 목소리. 명희다. 명희 얼굴, 명희 목소리다.

   명희……. 이 이름을 중학교 졸업하자마자 홀랑 잊어버렸다. 그렇게 친하게 지냈는데 왜 그리 빨리 잊고 만 걸까. 고등학교 가서 공부를 유별나게 열심히 한 것도 아닌데. 나는 다니던 중학교에 딸린 고등학교로 진학하지 않았다. 그 대신 큰오빠를 따라 도시로 갔다. 한 학년에 반이 10개가 넘는 고등학교에 다녔다. 명희는 다니던 중학교 옆 건물이었던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중학교 졸업식 날 명희와 나는 교복 재킷까지 바꿔 입으며 오래 연락하고 지낼 걸 약속했다. 서로 손 붙잡고 코가 빨개지도록 울었다. 졸업식 끝난 사흘 후 학교 앞에서 만나 쫄면도 사 먹었다. 

   명희와 나는 1학년 때부터 3년 간 같은 반이었다. 반이 세 개밖에 없어서 같은 반 될 확률이 높았다 해도 진짜 3년 내내 같은 반 되는 애들은 드물었는데……. 

   명희는 누가 봐도 얌전하고 똑바른 친구였다. 준비물 빠뜨리고 오는 일도 없었고 누군가를 험담하는 일도 없었다. 교복은 항상 단정하게 입었고 머리도 말끔히 묶고 다녔다. 신발에 흙먼지 묻히고 다니는 걸 본 적 없을 정도로 명희는 깨끗한 친구였다. 외모뿐만 아니라 마음도 참 맑은 친구였다. 그런 명희를 아니꼽게 보는 친구들도 있었다. 아예 얼굴 앞에서 대놓고 비아냥거리는 친구도 있었다. 1학년 2학기에 명희는 전교 1등 자리를 거머쥐었다. 전교 2등 한 애가 명희를 자주 못 살게 굴었다. 명희 듣는 앞에서 이런저런 안 좋은 소릴 마구 해댔다. 다른 친구들은 그 옆에서 티 나게 키득거렸다. 그럴 때 명희 얼굴은 홍당무처럼 달아올랐다. 하지만 명희는 그저 제자리를 지켰다. 울지도 화내지도 않고 그저 제자리를 지켰다. 착하다 해야 할지 미련하다 해야 할지……. 명희는 자신에 대한 헛소문이 돌아도 그 허무맹랑한 소문의 근원을 찾으려 들지 않았다. 그저 그 소문 퍼뜨리고 다니는 애들을 멀리할 뿐이었다.

   명희와 내가 친해진 건 1학년 2학기 겨울방학 때였다. 우리는 방학 가운데 꼭 하루는 학교에 나가야 했다. 빈 교실을 청소해야 했기 때문이다. 방학식 날 우리 반은 두 팀으로 나누어졌다. 나는 첫 번째 청소 팀에 속했다. 명희도 나와 같은 팀이었다. 빈 교실 청소가 있었던 그 날 명희는 하얀 목도릴 두르고 나타났다. 그 목도리가 어찌나 예쁘던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시선을 느낀 명희는 내게 다가와 목도리를 벗어 주었다. “추우면 이거 두르고 있을래?” 하면서……. 나는 약간의 수치심과 반가움을 동시에 느끼며 그 새하얀 목도릴 목에다 둘러보았다. 살결에 감기는 목도리 감촉이 몸에 전율 같은 걸 만들었다. 왠지 이 목도릴 하고 다니면 저절로 기품 있는 사람이 될 것 같았다. 

   청소가 끝나고 우린 중앙현관을 통해 학교 건물 밖으로 나왔다. 꽁꽁 얼어 흙먼지 하나 없는 운동장을 디디고 나가며 나는 배가 고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명희가 내게 다가왔다. “우리 집 놀러 갈래, 순이야?” 하고 물었다. 그 점잖은 애가 그렇게 물어 오는 게 놀랍기도 하고 저 애의 집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저 애가 처음 불러 준 내 이름이 좋기도 해서 나는 “그래!” 하고 대답했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명희 집으로 향했다. 명희는 벌써부터 나를 손님 취급하며 한 자리 남은 좌석에 나를 한사코 앉혔다. 버스가 덜컹거릴 때마다 명희의 하얀 목도리와 명희의 결 고운 머리카락이 함께 흔들거렸다. 우리가 내린 곳은 옆 동네 시장 입구 정류장이었다. 버스를 내린 명희는 뭔지 모를 기합을 “하!” 넣으며 “얼마 안 걸려. 가자.” 하고 말했다.     


   “엄마, 친구 왔어.”

   시장 한가운데 갑자기 멈춰 선 명희가 그렇게 말했다. 엄마라고? 나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명희가 엄마라 부르는 사람을 쳐다보았다. 명희가 엄마라 부르는 사람은 빨간 고무장갑을 낀 채로 나와 명희를 번갈아보았다. 그녀는 생선 가게 앞에 나와 냉동 고등어들을 진열하고 있었다. 왜인지 모르게 너무 놀라 버린 나는 “어…….” 하고 서 있다 뒤늦게 인사를 전했다.

   “안녕하세요, 명희 친구 순이예요.”

   “그래……. 들어가서 놀거라.”

   명희 어머니가 빙긋 웃으며 말씀하셨다. 어머닐 향해 고갤 끄덕여 보이던 명희는 문득 내 팔을 붙잡았다. 명희는 나를 데리고 시장 뒤편으로 뚜벅뚜벅 걸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이었다. 나는 명희에게 붙들려 걸어가며 명희 어머니 쪽을 한 번 뒤돌아보았다. 명희 어머니는 나와 명희를 바라보고 계셨다. 손에 냉동 고등어 하나를 쥔 채로. 나는 다시 고갤 돌려 명희와 걸음을 맞추었다. 명희의 결 고운 머리카락과 하얀 목도리가 다시 한 번 눈앞에서 흔들거렸다.    


   “여기야.”

   현관문에 열쇠를 밀어 넣으며 명희가 말했다. 명희 집에선 전형적인 집 냄새가 났다. 아침에 먹었을 음식 냄새와 빨래에서 나는 섬유 유연제 냄새 그리고 내가 짚어낼 수 없는 각종 생활의 냄새들……. 그 냄새들이 모여 정말 사람이 살고 있는 집에서 나는 집 냄새를 만들었다. 식당이나 숙박업소에는 이런 냄새가 나지 않는다. 자기 집 냄새는 너무 익숙해서 잘 맡지 못한다고 하는데 맞는 말인 것 같다. 늘 누군가의 집에 들를 때나 ‘와, 집 냄새다.’ 하는 생각을 하니까.

   “니가 처음이다? 우리 집에 초대된 손님.”

   명희가 침대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진짜?”

   “응, 너한텐 보여 줘도 될 거 같아서.”

   “뭘?”

   내가 묻자 명희는 침대에 벌렁 누우며 “그런 게 있어.” 하고 말했다. 어려서도 추측하길 좋아했던 나는 명희에게 뭔가 더 묻지 않고 혼자 이런저런 상상을 했다. 명희 어머니 얼굴과 명희 어머니 손에 끼워져 있던 고무장갑 그리고 생선 가게와 이 작은 집이 머릿속에서 차례로 되새겨졌다. 나는 침대 밑에 떨어져 있는 명희의 하얀 목도릴 내려다보았다. 명희의 반듯한 교복 치맛단을 바라보았다. 얼룩 하나 묻어 있지 않은 명희의 초록색 책가방을 쳐다보았다. 명희와 명희 어머니……. 명희와 명희 집……. 명희가 나 아닌 다른 애들한테 보여 주고 싶지 않아 하는 것들……. 내 상상은 좀 더 나아가 명희의 초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갔다. 명희의 반 친구가 초등학생인 명희에게 이렇게 말하는 거다. “명희야. 너희 집에 가면 미끄럼틀도 있고 그네도 있어?” 명희의 수려한 외모와 정갈한 옷차림 그리고 품위 있는 분위기에 취한 눈빛으로 이렇게 말하는 거다. “명희야. 나 너희 집에 놀러 가면 안 돼?”    


   “어이!”

   소금 트럭 너머에서 수염 덥수룩한 아저씨가 나와 소리쳤다. 나는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 치며 “흐익!” 하는 소릴 냈다. 아저씬 어리둥절한 듯 나를 바라보더니 시선을 내 뒤로 던졌다. 

   “최 사장! 잠시만……. 다 끝나 갑니다.”

   생선 가게 맞은편 치킨 집 사장에게 아저씨가 말했다. 

   나는 ‘내가 여기 얼마나 오래 서 있었지…….’ 생각하며 다시 발길을 집으로 돌렸다. 얼굴 주변을 감싸던 짠 냄새와 비린 냄새가 옅어지고 있었다. 

   명희는 잘 살고 있을까. 명희 어머닌 아직 정정하게 살아 계실까. 그 생선 가게와 아담한 집은 그대로일까. 명희는 그때 왜 나에게만 자기 삶을 보여 줬던 걸까. 난 그저 친구나 공부나 학교생활에 별로 관심 없던 변두리 동급생이었을 뿐인데. 어쩌면 그래서 더 편안했을까. 자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선입견 없는 나는 명희에게 안심 되는 존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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