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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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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Sep 25. 2016

숙맥


   흘러내리는 땀 때문에 이마고 목덜미고 온통 번들거린다. 하필이면 오늘 같은 날 에어컨이 고장 났다. 더위를 견디기 어려운 게 나뿐인 건 아닌가 보았다. 당신이 얼굴 쪽으로 손등을 가져다 대는 일이 잦았다. 한낮이 되어 가고 있었다. 시곗바늘 시침이 12에 닿기 직전이다. 창밖 햇살은 하얗다못해 눈이 부셨다.

   당신이 새하얀 블라우스 자락을 손으로 펄럭거렸다. 옷자락이 들춰지면서 당신 허리 살갗이 조금 드러났다. 그런데 거기 꿰맨 자국이 있다. 수술 때문에 난 흔적 같았다. 맹장 제거 수술 자국이라 하기에 자국이 너무 위쪽에 있는데……. 당신으로부터 수술 얘길 들은 적이 있었던가. 

   실례인 줄도 모르고 당신 허리께를 계속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 자국 남긴 수술이 무슨 수술인지 예상해 보느라 당신을 의식하지 못했다. 뭐 때문에 아팠던 걸까. 얼마나 아팠음 수술까지 한 걸까. 당신의 아픔은 그게 과거형일지라도 나를 멈칫대게 만들었다. 

   당신이 내 눈길과 자신의 허릴 번갈아 보았다.

   “봤어?”

   당신이 내게 물었다.

   “응?”

   “수술 자국.”

   “아……. 그게…….”

   잘못한 사람처럼 내가 어쩔 줄 몰라 하자 당신이 웃음을 터뜨렸다.

   “넌 볼수록 숙맥이다. 또 쩔쩔 매는 것 좀 봐. 뭘 묻질 못하겠네. 근데……. 너 숙맥인 거 난 좋아.”

   당신이 콧등을 살짝 찡긋대며 말했다. 진짜 좋다는 건지 그냥 놀리는 건지……. 남의 속도 모르고.

   “궁금해?”

   손가락 하나를 펼쳐 자기 허릴 가리키며 당신이 물었다. 나는 고갤 끄덕였다. 당신이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솔직히 기억 안 나. 너무 어릴 때여서……. 나도 그냥 엄마한테 듣고 아는 거거든. 아무튼 얘기해 줄게. 내가 세 살 땐가? 그때 큰오빠가 자전거를 타고 집에 왔어. 큰오빠랑 나랑 나이 차이 많이 나는 거 알지? 아마 큰오빤 학교 마치고 집에 온 걸 거야. 내가 큰오빠한테 자전거 태워 달라고 졸랐대. 큰오빠가 나 엄청 예뻐했거든. 큰오빠가 거절 안 할 거란 걸 알고 있었겠지. 큰오빠는 자전거 뒤에 나 태우고 동네 한 바퀴 돌고 오겠다고 한 거야. 엄마한테. 안 태워 주면 태워 줄 때까지 울 거 뻔하니까 엄마도 그냥 그러라고 했대. 근데 세 살짜리 애가 손에 힘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어. 처음엔 큰오빠 잘 붙잡고 있다가 자전거 속도 올라가니까 뒤로 쾅 떨어져 버린 거야. 등부터 바닥에 떨어졌는데……. 떨어져서는 내가 계속 배가 아프다고 울었대. 당장 숨넘어갈 거처럼 애가 우는데 엄마나 큰오빠나 별 수 있겠어? 뱃속이 들여다보여야 말이지……. 큰오빠는 당장 나 들쳐 업고 엄만 옷도 제대로 못 갖춰 입고 병원엘 간 거야. 병원 갔더니 몸 속 어디가 찢어져서 수술 받아야 된다고 했대……. 그래서 수술 한 거래. 별거 없어. 어디 병 걸려서 수술한 게 아니라 떼쓰다가 벌 받은 거야.”

   수술 부위 위에 손바닥을 포개며 당신이 말을 마쳤다. 나는 당신 눈을 물끄러미 바라다보았다. 

   “왜……. 뭘 그렇게 멀뚱히 봐.”

   당신이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아팠다니까 싫어서. 싫은데……. 니가 아팠던 거 알려 줘서 좋기도 하고. 또 수술 받은 데 없어? 다친 데는.”

   내 물음이 끝나자마자 당신이 주먹으로 턱을 괴었다. 주먹으로 턱을 괴었다가 손가락으로 윗입술을 만지작대기도 했다가 하는 게 당신 버릇이다. 뭔가를 생각해 내야 할 때 나오는 당신 버릇. 나는 선풍기를 당신 쪽으로 좀 더 가까이 놓아 준 뒤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내가 변호사 사무실 차린 이 건물은 일요일도 월요일 같은 느낌이다. 화요일도 월요일 같고 수요일도 월요일 같다. 모든 요일이 월요일 같다. 바짝 긴장돼 있지만 좀 노곤하기도 한 분위기. 피곤에 지쳐 있지만 북적대는 소란 통에 힘을 좀 내야 할 것 같은 분위기. 여긴 이런 분위기가 365일 이어지고 있다. 이 건물에 들어선 대부분의 사무실이 법과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이 건물 드나드는 대부분의 사람이 변호사나 검사나 피고(소송 당한 사람)나 원고(소송 건 사람)이기 때문이다.

   법을 통해 누군가를 벌주고 싶어 하는 쪽. 그 법과 벌을 피하려 하는 쪽. 여기선 이 두 쪽이 언제나 팽팽히 맞서고 있다. 그 팽팽함이 만드는 흥분 상태는 모두의 신경이 곤두서 있도록 한다. 일상생활에서 이기고 지는 것과 재판에서 이기고 지는 건 아주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때론 하나의 재판에 한 사람 인생 전부가 걸려 있기도 하다. 누구는 절박함 때문에 누구는 책임감 때문에 누구도 느슨해질 수 없다.

   나는 이런 분위기에 익숙한 사람이다. 법을 다루는 직업이 내 성격에 잘 맞는 것 같다. 나는 기준이 없거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다루는 데 젬병이다. 그래서 정해진 법 조항과 드러난 증거로 사태를 판단하는 이 바닥이 편하다. 항상 딱 맞아떨어지는 상황이 편하다.

   하지만 사람은 드러난 것보다 드러나지 않은 게 훨씬 많은 존재다. ‘이 사람이 이런 식으로 행동했으니 이 사람 마음은 이럴 거다.’ 하고 딱 맞아떨어지게 판단할 수 없는 존재다. 내 앞에 앉은 사람의 한 가지 표정은 수천 가지 속마음을 대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누군가의 표정으로부터 딱 한 가지 마음만 추측할 수 있다. 웃으면 좋은 마음이고 찡그리면 좋지 않은 마음인 것 정도로……. 가끔은 어떤 표정을 봐도 그게 무슨 마음일지 전혀 짐작 못하기도 한다.

   그래서 당신은 나를 항상 숙맥이라고 한다. 사람 속을 거의 헤아리지 못하는 나는 당신에게 숙맥이다. 나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여태 숙맥이란 말을 수천 번도 넘게 들었다. 나 자신을 숙맥으로 소개한 것도 수천 번이 넘을 거다. 나는 어디 가서 내가 숙맥인 것에 개의치 않는다. 근데 왜 당신이 내게 숙맥이라 하면 기분이 비틀리는가. 이상한 일이다.

   당신을 알고 싶다. 당신 표정 따라 눈치껏 행동하는 걸로는 충분치 않다. 당신 표정 뒤에 놓인 기분을 알고 싶다. 당신 손짓 따라 원하는 걸 가져다주는 걸로는 충분치 않다. 당신 손짓이 나타내는 느낌을 알고 싶다. 당신 눈빛 따라 결정을 내리거나 결정을 바꾸는 걸로는 충분치 않다. 당신 눈빛에 담긴 마음을 알고 싶다. 그런데 나는 그런 쪽으로 정말 소질이 없다. 그게 나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재판정에서 의뢰인을 실망 시키고 말았을 때 느껴지는 무기력함과는 차원이 다른 무기력함이다. 내가 당신 껍데기만 알고 있는 것 같단 생각은 내 온몸의 힘을 다 빼내 버리는 걸로도 모자라 나를 쥐어짠다. 아프다. 이런 내 속도 모르고 당신은 내가 숙맥인 게 좋단다.     


   옥상에서 내려와 사무실 앞에 섰다. 문고리에 손을 뻗으려는데 사무실 안쪽에서 문이 벌컥 열렸다.

   “밖에서 뭐했어? 집에 간 줄 알았네.”

   눈살을 좀 찌푸리며 당신이 물었다. 나는 쥐고 있던 음료수 캔을 당신에게 내밀었다. 내가 마시려고 자판기에서 뽑은 건데 마시지 못했다. 음료수 캔은 더 이상 시원하지 않았다. 당신은 캔을 받아 들더니 사무실 안쪽으로 들어갔다. 

   “숙맥이 뭐가 좋냐?”

   당신 등에 대고 내가 소리쳤다. 소파에 앉으려다 말고 당신이 나를 돌아보았다.

   “뭐?”

   턱을 살짝 틀며 당신이 되물었다.

   “숙맥이 뭐가 좋냐고.”

   “갑자기 뭔 소리래.”

   “아, 숙맥이 좋다며. 내가 숙맥인 게 좋다며. 숙맥이 뭐가 좋냐고. 등신 같기만 한데.”

   내가 퉁명스럽게 말하자 당신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숙맥이 왜 등신인데? 사람 쥐뿔도 모르면서 다 아는 척 노련한 척하는 것보단 백 배 낫지. 나한테 관심도 없으면서 내 맘에 들어오고 싶은 척 나 살살 구슬리는 것보단 백 배 나아. 입은 웃고 말은 달콤한데 도저히 속을 모르겠는 사람이 뭐가 좋아? 내 맘 보여 준 적도 없는데 니 맘은 이렇고 이렇다 점치는 사람이 뭐가 좋아? 안 웃길 땐 안 웃고 모를 때 모르는 티내는 사람이 백 배 천 배 좋지. 모른다고 하는 사람한테는 내가 할 말이 있잖아. 모른다고 하는 사람은 나한테 말할 틈을 주잖아. 나를 보여 줄 여지를 주잖아. 그게 뭐가 등신이야? 그런 사람이 곁에 오래 남는데. 나 내버려두고 자기 혼자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혼자 생각하다가 혼자 훌쩍 가 버려. 그게 뭐가 좋아? 숙맥이 등신인 게 아니라 니가 등신이야. 이 등신아!”

   고함에 가까운 당신 목소리가 사무실을 울렸다. 등 뒤에서 사무실 문이 철컥 닫혔다. 당신은 다시 한숨을 내쉬더니 소파에 앉았다. 털썩거리는 소리가 가슴을 짓눌렀다.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음료수 캔 따는 소리가 들렸다. 어디서 커피 냄새가 났다. 창가에 놓인 커피 메이커에 커피가 내려져 있었다. 기껏 캔은 따 놓고 당신은 음료수를 마시지 않았다. 나는 당신에게 다가가 당신 쥐고 있던 캔을 받아 들었다. 당신은 나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이럴 땐 무슨 말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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