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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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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Sep 21. 2016

나비 키우는 사람


   “아, 그냥 들어갑시다, 좀!”

   가게 입구에서 누가 소리쳤다. 주방 밖으로 나와 보니 손님 한 무리가 가게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다들 술기운 잔뜩 오른 얼굴이다. 이미 1차로 거하게 마신 듯했다. 아르바이트생이 그들을 2층으로 안내했다. 1층으로 되돌아온 아르바이트생은 “11시네요. 가 보겠습니다.” 하곤 서둘러 퇴근했다.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11시 2분이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어쩐지 좀 졸리다 싶었다. 메뉴판을 챙겨 2층으로 올라갔다.


   “바로 주문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이따가 부르실래요?”

   제일 덜 취한 같은 사람에게 내가 물었다.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있어 얼굴빛이 잘 안 보이긴 했지만 몸짓이나 앉은 자세로 보아 정신이 제일 멀쩡해 보였다. 나머지 사람들은 메뉴판 뜯어보며 서로 웅성거리고 있었다. 치킨에 맥주 아닌 다른 술 마시는 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한 사람이 목청을 높였다. 그럼 너나 맥주 많이 마시고 오줌 많이 싸라며 또 다른 사람이 응수했다. 옷차림이 자유로운 걸로 봐서 회사 다니는 사람들은 아닌 것 같았다.

   “여기……. 여기 적힌 치킨 하나랑요. 맥주 3000cc랑 소주 한 병 주세요.”

   손가락 끝으로 메뉴판 한 구석을 짚은 채 모자 쓴 사람이 주문을 마쳤다. 나는 주문 받은 메뉴들을 그에게 확인 시킨 뒤 메뉴판을 들고 돌아섰다.

   “잠깐만요.”

   모자 쓴 사람이 말했다. 나를 부른 건가 싶어서 뒤를 돌아보았다.

   “류진구 씨 아니세요?”

   모자 쓴 사람이 내게 물었다.

   “류진구는 제 동생인데요.”

   내가 대답했다.

   “아, 어쩐지……. 닮았다 했네.”

   “진구를 어떻게 아십니까? 무슨 사이…….”

   “별 사이는 아니고……. 고등학교 동창이었습니다.”

   “진구 지금 1층에 있는데 불러 드릴까요?”

   “아, 진구가 여기 있습니까?”

   “네. 이 치킨 집 저랑 진구 둘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따 형님하고 진구하고 같이 올라오십시오. 제가 한 턱 내겠습니다. 제 이름은 한재입니다. 박한재. 진구는 저를 모를지도 모릅니다.”

   박한재가 유쾌한 어조로 말했다. 원래 잘 웃는 사람인가 보았다. 눈 끝에 엷은 주름이 끼어 있었다.     


   “진구야, 2층에 니 친구 분 와 계신다.”

   주방에서 치킨 튀기던 진구에게 내가 말했다.

   “친구?”

   “어. 박한재라고 하던데. 고등학교 동창이라고.”

   “박한재? 음……. 안경 쓰고 좀 말랐고?”

   “그래. 안경 썼더라. 마른 줄은 모르겠던데? 모자 쓰고 있어서 제대로 못 보긴 했다.”

   “박한재……. 근데 한재가 나 여기 있는 줄 어떻게 알았대? 고등학교 졸업하고 한 번도 못 봤는데.”

   “아까 나보고 류진구 씨 아니냐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진구는 내 동생이라고 했지. 우리 닮았냐?”

   내가 묻자 진구는 빙긋 웃기만 했다.

   “박한재 그 사람이 이따 너랑 나랑 올라오라던데?”

   빈 접시 잔뜩 쌓인 싱크대 쪽으로 걸으며 내가 넌지시 말했다.

   “왜?”

   “왜긴 왜야. 술이나 한 잔 하자고 그러겠지. 어차피 마감 시간 다 됐는데 오늘 일찍 접자.”

   “그래.”   


   30분쯤 지났다. 가게를 대강 정리한 뒤 나와 진구가 2층으로 올라갔다. 박한재 일행은 아까보다 더 취해 있었다. 이 사람들은 술기운이 모조리 입으로 쏠리는가 보았다. 다들 뭐라고 떠드느라 바빴다. 박한재는 누군가의 이야기에 “그럼요!” 하고 맞장구 치고 있었다. 내가 테이블 하나를 옮기자 박한재가 이쪽을 쳐다보았다. 진구는 쭈뼛거리며 서 있었다.

   “진구!”

   박한재가 진구를 반갑게 불렀다. 원래 수줍음 많이 탈 거 같은 인상인데 박한재도 술에 좀 취했나 보다. 진구가 박한재 쪽으로 두 걸음 걸어갔다.

   “한재. 오랜만이다.”

   진구가 박한재에게 손 내밀며 말했다. 박한재가 진구 손을 꽉 붙잡고 흔들었다.

   “나 알아보겠어?”

   박한재가 진구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아깐 어렴풋했는데 얼굴 보고 나니까 알겠다. 근데 잠깐 봐서는 못 알아보겠어. 되게 많이 변했다, 야.”

   박한재를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며 진구가 말했다. 진구 얼굴에 웃음기가 돌기 시작했다. 한때 알고 지낸 사이가 무섭다. 난 아직 멋쩍은데 진구는 금세 편안해 보인다. 하기야 전에 알던 사람 마주칠 때 나도 그랬던 것 같다. 2년 전일 거다. 아내와 둘이 마트에서 장 보고 있다가 대학 동기를 만났다. 그 상황이 된통 어색한 아내는 표정이 굳어 있는데 나는 그 친구를 그 자리에서 얼싸안고 난리가 났었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죽고 못 살게 친했던 친구도 아니었는데…….

   지나간 어느 세월을 같이 보냈단 사실 하나로 사람은 사람에게 참 반가운 존재가 될 수 있다. 아주 오랜 공백을 두고 만나도 금방 다시 친근해질 수 있다. 잊고 지냈던 내 어느 순간이 되살아나는 그 느낌은 설명할 길 없이 기쁘고 행복하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여기서 닭 장사 하는 거 알 테고……. 한재 너는 뭐하고 지내냐?”

   반쯤 비워진 맥주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진구가 박한재에게 물었다.

   “나? 만화 그려. 웹툰이라고 컴퓨터로 만화 그리는…….”

   허공에 그림 그리는 시늉하며 박한재가 대답했다.

   “여기 우리는 한재 씨랑 작업 같이 하는 식구들입니다. 저는 영상 팀. 저쪽은 녹음 팀. 저쪽은 편집 팀.”

   박한재 옆에 앉은 사람이 진구와 나를 둘러보며 자신들을 소개했다.

   “내가 그린 웹툰으로 지금 영화 만드는 중이라…….”

   박한재가 쑥스러운 듯 말했다. 진구 눈이 커다래졌다.

   “영화? 아, 대단한데……. 의외다. 나는 너 의사 될 줄 알았거든.”

   진구가 한재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려 보이며 말했다.

   “한재 씨가 의사를요?”

   치킨 살과 치킨 껍데기를 분리하던 한 사람이 진구에게 물었다. 

   “네. 의사요.”

   “왜요? 전 한재 씨랑 의사랑 매치가 잘 안 되는데…….”

   “한재랑 저랑 고등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었습니다. 한재 공부 잘했습니다. 전교에서 몇 등 한 줄은 모르겠는데 우리 반에서는 1등이었어요.”

   진구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람들이 비명을 터뜨렸다.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던 모양이다. 웃으며 고개 숙인 박한재가 손사래를 쳤다. 진구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근데 이렇게 보니까 한재한테 만화 그리는 일도 참 잘 어울리는 거 같습니다. 의사랑 정반대 직업 같긴 하지만……. 그나저나 한재가 무슨 만화를 그립니까?”

   진구의 물음에 박한재가 고갤 들었다.

   “이번에 영화로 만드는 웹툰은 나비 키우는 사람 이야기야. 그 사람이 어쩌다가 나비를 키우게 되거든. 근데 나비를 키우면서 이런저런 것들을 깨달아 가. 진구 너 나비가 어떻게 자라는 줄 알아?”

   “나비가 어떻게 자라긴. 그냥 번데기 뚫고 나오는 거 아닌가?”

   “그건 마지막 단계. 나비는 먼저 알에서 태어나. 애벌레로. 애벌레는 허물을 몇 번씩 벗어. 마지막 허물을 벗고 나면 번데기가 되는데……. 니가 말한 거처럼 그 번데기를 벗고 나와야 우리가 아는 나비가 돼.”

   박한재는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켠 뒤 다시 말을 이었다. 이전에도 자기 웹툰에 대한 설명을 아주 많이 해 본 것 같다. 박한재에겐 설명 순서를 고민하는 기색이 없었다. 시종 담담했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말하는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표정이다. 능숙하고 자신만만하지만 그걸 또 설명해야 하는 것에 대해 조금은 지루해 하는 듯한 표정.

   “이 웹툰 주인공으로 나오는 사람이 말이야…….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항상 ‘저 사람은 원래 저런 사람이다.’라고 생각했어. 잘난 사람은 원래 잘난 사람이었고 못난 사람은 원래 못난 사람이었고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자기가 좋아한 사람이었고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이었다고. 근데 이 사람이 나비 알을 처음 보고 충격을 받아. 누가 나비 준다고 해서 날개 달린 곤충을 상상하고 갔는데……. 허연 알만 열 몇 개 건네받은 거야. 나비는 처음부터 나비가 아니었던 거야. 나비는 알부터 시작이었던 거야. 그 사람은 알이 애벌레가 되고 애벌레가 허물을 벗고 애벌레가 번데기가 되고 번데기에서 나비가 나오는 과정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봐. 모든 일엔 처음이 있고 과정이 있고 그 다음에 지금이 있다는 걸 진짜로 깨달아. 처음과 과정과 지금이 늘 똑같진 않다는 걸 깨달아. 알과 애벌레와 번데기와 나비처럼 말이야. 그 사람은 그걸 머리로 아는 게 아니라 실제로 퍽 깨달아. 그러면서 자기 자신을 되돌아봐. 자긴 항상 자기 사연 알아 달라고 자기 사정 이해해 달라고 자기가 걸어온 삶을 헤아려 달라고 울듯이 호소하면서……. 정작 다른 사람들 대할 땐 겉으로 보이는 결과만 갖고 판단하던 스스로를 되돌아봐. 얼마나 부끄럽겠냐. 그 부끄러움이 그 사람을 조금씩 바꿔 나가. 뭐 그런 내용이야. 사실 이 내용 외에 다른 내용도 많이 들어가는데……. 제일 중심 되는 내용이 이거야. 나비 키우는 거. 진구야. 나 많이 변했지. 근데 나는 계속 나였어. 알일 때랑 애벌레일 때랑 번데기일 때랑 나비일 때가 전부 나비인 거처럼. 내 상태는 내 모습은 계속 변해 갔지만 난 항상 그대로였어. 내가 보기엔 너도 많이 변했다. 근데 너도 그대로잖아. 너는 너였잖아. 아, 나 술 많이 마셨나 보다. 왜 갑자기 이 얘기로 빠지냐…….”

   박한재가 코밑을 긁적이며 말을 마쳤다. 박한재 맞은편에 앉아 있던 남자가 눈을 지그시 감으며 고갤 끄덕거렸다. 진구는 박한재를 물끄러미 바라다보았다. 나는 박한재가 그렸다는 웹툰 원작을 읽어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박한재가 자기 앞에 놓인 맥주잔을 채웠다. 맥주 거품이 잔 밖으로 조금 흘러내렸다. 테이블 주변에 다시 활기가 돌았다. 방금 전까지 진중하게 얘기했던 박한재는 다시 장난꾸러기 같은 얼굴로 술을 마셨다. 내가 보기에도 지금 저 박한재와 의사는 별로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다. 나는 박한재의 갈색 머리카락과 박한재가 입고 있는 가죽 소재 재킷과 박한재 목에 걸린 금 목걸이와 박한재가 쓴 검은 모자를 차례로 응시했다. 지금의 박한재가 되기까지 박한재는 얼마나의 알을 깨고 얼마나의 번데기를 탈출했을까.

   그리고 나는?

   아까 편집 팀 사람이라고 소개 된 여자가 내 맥주잔을 채워 주었다. 나는 그 여자를 바라보며 “영화는 언제 개봉하는 겁니까?” 하고 물었다. 여자는 긴가민가하는 얼굴로 어깰 들썩해 보이더니 자기 맥주잔을 내게 내밀었다. 나도 여자의 맥주잔을 채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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