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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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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Oct 01. 2016

서희야. 괜찮아?


   녹음실엔 두 가지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긴장된 분위기와 나른해 하는 분위기…….

   서희는 녹음 부스 안에 서 있다. 마이크 때문에 얼굴이 반만 드러나 있지만 서희는 한눈에 보아도 긴장한 쪽이다. 손가락을 잠시도 가만두지 못하고 있다. 서희는 음악이 꺼질 때마다 양 손을 쉼 없이 꼬물거렸다. 긴장감을 최소 0에서 최대 10까지 분류한다고 치자. 8이 넘는 긴장감에 시달릴 때 서희는 저런 모습이다. 손이 바쁘고 눈을 자주 깜박거리고 크게 들이쉰 숨을 가슴에 한참 머금고 있다.

   오늘은 서희가 데뷔 곡을 녹음하는 날이다.

   부스 밖엔 나를 포함한 세 사람이 있다. 녹음 과정을 총괄하는 작곡가 두 사람은 녹음 기계 앞에 앉아 있다. 이들은 나른해 하는 쪽이다. 나는 녹음 기계와 작곡가 뒤에 있는 소파에 앉아 있다. 나는 긴장한 쪽도 아니고 나른한 쪽도 아니다. 오늘 진행되는 녹음과 나는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3분 전이었다. 왼쪽에 앉은 작곡가가 기계의 어떤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음악이 멈췄다. 서희는 정적에 대고 노랫말을 몇 마디 내뱉다가 음악이 멈춰진 걸 알았다. 그런 뒤 착잡한 표정으로 작곡가들을 응시했다. 

   “다시 한 번 가 볼게요.”

   버튼 누른 작곡가가 서희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헤드폰 고쳐 쓴 서희가 우물거렸다. 아까보다 좀 더 의기소침해진 듯하다. 작곡가 두 명은 말없이 고갤 끄덕거렸다. 서희는 초조한 기색으로 작곡가들을 쳐다보았다. 녹음 부스 유리창 너머로 서희를 바라보았다. 서희가 나를 찾으려는 듯 눈길을 돌리는데 음악이 다시 흘러나왔다. 서희는 눈을 감고 노랠 시작했다.     


상상할 수 없는 먼 훗날

무엇도 약속되지 않았을 그 날

그 날의 당신을 난 궁금해 해요    


그 날의 아침에

첫 번째 숨결엔

무엇이 맡아질까

내뱉어진 말들은

누구에게로 닿을까    


옷장을 열 때면

버릇처럼 생각나는

사람이 누굴까

당신은 매일 누구와 

잘 어울리고 싶을까

새로 산 구두를 신고

어느 거릴 걸을까

구두소리 멈춘 그곳에

누가 서 있을까    


당신은 왜냐고 물을 수 있겠죠

왜 하필 그런 날이 궁금하냐고

아직 오지도 않은 날 

함께 건 약속도 기억도 

닿지 못할 그런 날

나와 함께 할 사람이 

뭐가 중요하냐고    


당신이 그렇게 물어 오면

난 뭐라고 대답할까요

내 상상도 당신의 약속도

우리의 기억도 닿을 수 없는

그 시간에 벌써 내가

서 있다고 하면

당신은 내 말을 믿을까요    


   간주가 흘러나왔다. 서희가 마이크 뒤로 한 발 물러섰다. 호흡 고르는 서희를 건너다보았다. 작곡가 두 사람이 귓속말을 주고받았다. 나는 아까 서희가 주고 간 종이를 펼쳐 보았다. 서희가 지금 보고 있는 가사가 이 종이에도 적혀 있다.

   가사를 다시 읽어 보려다 종이를 구기듯 접었다. 녹음실 밖으로 나왔다. 녹음실 문이 닫히자 간주 소리가 말끔히 사라졌다.  

   뒤로 돌았다. 조용한 복도를 휘적휘적 걸었다. 녹음실 A-1과 A-2 그리고 B-1과 B-2를 지나 왔다. 녹음실 A-1과 A-2는 사용 중이고 녹음실 B-1과 B-2는 비어 있었다. 서희가 서 있던 그곳은 녹음실 A-0이다. 우리 회사 녹음실은 이렇게 총 다섯 곳으로 나눠져 있다.

   녹음실 A-0이 돌아가고 있다는 건 지금 회사에 아주 중요한 일이 진행 중이란 뜻이다. 서희 데뷔를 두고 회사가 큰 기대에 부풀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기야……. 녹음실 A-0 안에 서희가 들어가 있지 않아도 이미 모두가 알고 있다. 회사가 서희를 극진히 생각한다는 사실을.

   이 모든 게 동영상 하나로 시작되었다.

   6개월 전까지 서희와 나는 이 회사 연습실에만 붙박여 있었다. 우린 데뷔를 꿈꾸는 가수 지망생이었다.

   서희와 내가 이 회사 연습생 오디션을 본 건 축제 때문이었다. 이 회사에서 매년 봄가을마다 열리는 축제……. 이 축제를 통해 회사는 연습생들이 무대 위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그것은 이미 데뷔해 유명해진 선배들과 한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였다. 엄청난 규모의 팬들에게 자신을 알릴 기회이기도 했다. 

   서희와 나는 3년 동안 총 5번의 무대 경험을 가졌다. 그리고 6개월 전 봄 축제……. 서희는 무대에 통기타를 들고 나가 잔잔한 팝송을 불렀다. 연습생들끼리는 그런 서희를 놀려대곤 했다. 일개 연습생의 팝송 공연은 따분해 보일 거라고……. 심지어 서희는 그 팝송을 편곡했다. 가뜩이나 잘 알려지지 않은 팝송을 원곡과 다르게 부르겠단 거였다. 대중에게 자신을 각인 시키는 게 축제 무대의 목적 아닌가? 서희의 모험적인 선택은 대중의 외면을 받을 거라고 판단되었다. 우리의 그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축제가 끝날 때까지는 말이다. 서희의 조용한 독무대는 미적지근한 반응과 함께 막을 내렸다.

   하지만 그 다음 날부터 우리 예상은 산산조각 나기 시작했다. 축제 끝난 지 24시간도 채 안 된 때였다. 축제 다음 날 오전 10시였다. 동영상 사이트에 동영상 하나가 올라왔다. 서희의 공연이 고스란히 찍힌 동영상이었다. 동영상 게시자는 아주 섬세하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서희가 부른 팝송 원곡 제목과 서희 이름 그리고 원곡 가수 이름과 우리 회사 이름까지 동영상 제목에 다 써 넣었다. 그로부터 17시간이 지났다. 서희가 편곡해 부른 팝송의 원곡 저작자가 (대체 어떻게 찾은 건지) 그 동영상을 자기 트위터에 공유했다. 아무도 예상 못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서희의 공연 동영상은 미국 전역으로 일파만파 퍼져 나갔다. 얼마간의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서희 공연은 엄청난 환호를 받았다. 서희 공연 동영상이 올라오고 2주가 지났다. 서희는 CNN 뉴스 한 자락을 장식했다. 한국의 한 여학생이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는 내용이었다. CNN에 보도된 서희 모습은 우리나라 뉴스에서 다시 중계되었다.

   그리고 지금이다.

   우리 회사는 굴러들어온 기회를 걷어차지 않았다. 서희는 서둘러 데뷔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서희는 여러 종류의 뉴스 프로그램에 나가 인터뷰를 했다. 크고 작은 토크쇼에도 출연했다. 때때로 서희는 TV 속에서 내 이름을 언급했다. “저한테 오래된 친구가 있는데……. 저랑 같은 꿈을 꾸거든요.” 하면서……. 가족들은 TV에서 서희가 내 이름을 언급하는 것에 상당히 감동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자꾸 TV 채널을 돌리고 싶었다. 저 자리에 서희와 함께 있지 못한 게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서희가 미치게 부러워서 짜증나는 거면 차라리 나은데……. 서희가 승승장구할수록 나는 한없이 가라앉았다. 세상의 모든 물을 빨아들인 솜 덩어리가 나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이건 무슨 무게일까. 주변 기대의 무게일까. 아니면 나 자신에 대한 내 기대의 무게일까. 아무튼 너무 무거웠다.     


   “너 진짜!”

   등 뒤에서 서희가 불쑥 튀어 나오며 소리쳤다. 그 바람에 나는 하마터면 계단에서 떨어질 뻔했다. 

   “뭐야? 녹음은?”

   식겁한 얼굴로 내가 물었다.

   “끝났어. 내일 다시 하려나 봐. 너 왜 나갔어? 너 나가는 거 보고 나 혼자 얼마나 떨었는데!”

   서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시 소리쳤다.

   “그냥…….”

   계단 밑으로 시선을 던지며 내가 우물쭈물 대답했다. 서희가 내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도 다시 계단 턱에 엉덩이를 걸쳤다.

   “니 눈에도……. 티가 나?”

   서희가 넌지시 물어 왔다.

   “뭐가?”

   “나 어설픈 거.”

   “갑자기 무슨?”

   “난 자꾸 들키는 기분이야. 솔직히 내가 데뷔하는 게 아니라……. 나한테 갑자기 온 유행이 데뷔하는 거 같아. 내 실력이 인정받아서 데뷔하는 게 아니라……. 너는 당연히 알 거고 저기 계신 작곡가님들도 다 알 거야. 내가 이만한 대우 받고 이렇게 빨리 데뷔할 인물이 아니라는 거. 내가 누구한테 인정받을 만한 실력 가진 게 아니라는 거. 윤영아. 나 그동안 데뷔 너무 하고 싶었거든. 근데 지금은 너무 무서워. 물론 누가 봐도 완벽하게 준비하고 완벽하게 실력 쌓아서 데뷔한다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난 아직 풋내긴데……. 그래서 지금 내 품에 들어온 게 행운이기만 한 건 아닌 거 같아. 달아 주는 날개 달고 날아오르자마자 떨어질 거 같아. 내 맘이 너무 아슬아슬해. 그러니까 너 자꾸 사라지지 마. 내 눈에 보이는 데 좀 있어 주라구. 여기서 내가 누구한테 맘 붙여. 너마저 나한테서 멀어져 버리면 나 진짜 못 버텨……. 그리고……. 알아. 너 나한테 예전 같은 맘 가지기 어려울 거라는 거. 지금 내가 한 얘기 너한텐 같잖게 들릴 수도 있다는 거. 차라리 너였어야 했어. 니가 그 자리에서 그 노랠 불렀어야 했어. 윤영이 너는 잘하잖아. 뭐든 나보다 잘하잖아. 너라면 지금 데뷔해도 충분히 잘해낼 텐데…….”

   쪼그리고 앉아 무릎에 얼굴 묻은 서희가 중얼거렸다. 나는 얼굴이 너무 뜨거워서 손바닥을 뺨에 댔다.

   이리저리 불려 다니느라 바빠서 정신없기만 한 줄 알았는데……. 서희는 자길 향한 내 미묘한 변화를 모두 감지하고 있었나 보았다. 세상의 엄청난 주목을 받아 온통 마비된 줄 알았는데 서희는 누구보다 민감해져 있었다. 

   감사한 일밖에 없다고. 기쁘다고. 설렌다고. 지난 6개월 동안 서희는 참 많이 웃었는데. 언제 어디서든 활기가 넘쳤는데. 그게 부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는 왜 생각 못했을까. 그러고 보면 지난 6개월 동안 서희가 투정 부리는 걸 한 번도 못 본 거 같다. 그걸 왜 몰랐을까. 

   왜 알려고 하지 않았을까. 묻지 않았을까. 다독여 주지 않았을까.

   서희야. 괜찮아?

   한 번을 묻지 않았을까.

   서희야. 괜찮아.

   한 순간을 다독여 주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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