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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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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Oct 05. 2016

가장 아름다운 고백


   공휴일 아침인데도 도로가 번잡하다. 출근하는 게 나뿐인 건 아닌가 보았다. 회사 건물 지하 주차장으로 차를 몰았다. 지하 2층까지 갈 것도 없었다. 주차장은 지하 1층부터 텅텅 비어 있었다. 흔히 볼 수 없는 풍경이다. 보통 평일엔 오전 8시만 돼도 지하 1층 주차 자리가 가득 차 버리는데…….

   공식적으로 오늘 우리 회사는 휴무일이다.

   차에서 내려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열린 엘리베이터 문 너머엔 누군가 등을 보이고 서 있었다. 1층 카페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인 듯했다. 그는 카페 이름 적힌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회사 건물 1층은 로비로 활용되고 있다. 1층엔 카페와 샌드위치 전문점과 편의점이 들어서 있다. 일 바빠지면 세 끼 다 이곳에서 때우곤 한다. 카페 사이드 메뉴(여긴 치즈케이크가 일품이다)와 샌드위치 그리고 편의점 음식으로……. 배달 기다리는 시간도 사치일 때가 있다. 요즘이 그렇다.

   내가 엘리베이터에 들어서자 아르바이트생은 구석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의 품 안엔 커피 원두가 열 봉지도 넘게 들려 있다. 밀폐된 엘리베이터 안이 커피 향기로 진동했다. 커피를 마셔야겠다.

   아르바이트생을 따라 나도 1층에서 내렸다. 수위 아저씨와 눈인사 나눈 후 카페에 들어갔다. 지하 주차장처럼 카페도 한산했다.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따뜻한 거…….”

   코트 안주머니에서 지갑 꺼내며 내가 주문했다. 아까 그 아르바이트생이 내 주문을 받았다. 그는 세상만사에 심드렁한 표정으로 내 신용카드를 건네받았다. 새로 온 아르바이트생인가. 못 보던 얼굴인데.

   핸드폰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가방을 열고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핸드폰 액정에 ‘정혜’라고 적혀 있다.

   “어, 정혜야.”

   전화를 받았다. 전화 받느라 어정쩡해진 자세로 신용카드도 돌려받았다. 수화기 너머에선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여보세요?”

   수화기에 대고 정혜를 불렀다. 아르바이트생이 에스프레소 머신 앞에 섰다. 

   “박찬진!”

   막힌 숨 토해내는 듯한 목소리로 정혜가 내 이름을 불렀다.

   “뭔데? 뭐하는데?”

   “아……. 옷 입느라……. 너무 딱 붙는 옷 가지고 나왔나 봐. 팔 끼우다가 팔 부러뜨릴 뻔했네.”

   “옷? 어디 나가는 길이냐?”

   “암벽등반 하러 가.”

   “오늘도?”

   내가 묻자 정혜는 대답 대신 웃기만 했다.

   정혜는 3년 째 실내 암벽등반 센터를 다니고 있다. 처음엔 친언니랑 같이 다니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정혜 혼자 다니고 있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 읊는단 말은 사실인 듯하다. 지난 주에 본 정혜는 수준급 선수 같았다. 지난 주 주말에 정혜 다니는 실내 암벽등반 센터에 놀러 갔었다. 정혜와 수연이가 다니는…….

   “수연이는?”

   내가 정혜에게 물었다.

   “수연이?”

   “수연이도 간대?”

   “수연이 가는지 안 가는지를 왜 나한테 물어? 수연이가 내 애인이냐?”

   “잘까 봐 출근하면서 연락 안 해 봤거든…….”

   “너 오늘 출근했어?”

   “프로젝트 마감 이번 달까지잖아. 죽어나고 있다.”

   내가 우는 시늉하며 말하자 정혜가 웃음을 터뜨렸다.

   “수연이 오늘 안 와. 실내 운동이면 왔을 텐데 오늘 우리 축제 가거든.”

   “무슨 축제?”

   “암벽 등반 축제! 축제라고 해 봐야 줄 매단 사람들끼리 바위나 열심히 기어오르는 거겠지만……. 우리 센터장님 친구라는 분이 이번 축제 주최자래. 먹을 거 많이 줄 테니까 머릿수 채우러 오라더라. 축제 장소가 여기서 좀 멀어. 차 타고 세 시간 거리라던데…….”

   “니 차 타고 가게?”

   “아니. 관광버스 대절했대. 센터 앞으로 가면 돼. 근데 나 늦었다.”

   “그럼 전화 끊고 빨리 운전해.”

   “아니……. 잠시만. 너한테 해 줄 말 있어서 전화했거든. 그 말할 시간 정도는 돼.”

   “무슨 말?”

   “지난 주에 너 우리 센터 놀러 왔을 때…….”

   “응.”

   “너 가고 나서 우리 게임했거든.”

   “게임?”

   “응. 암벽 꼭대기에서 군인들 로프 강하하는 거 따라해 보자구……. 아무튼 가위바위보를 했는데 나랑 수연이가 걸렸어. 수연이 걔 높은 데 무서워하잖아. 운동할 때도 아동용 코스까지만 올라가는 앤데……. 그래서 강사 쌤들이 무서우면 대신 해 주겠다고 했어. 억지로 하면 위험할 수 있다고. 근데 수연이가 한번 해 보겠다네? 재밌을 거 같다고 말이야. 그래서 나랑 수연이랑 암벽 꼭대기에 올라갔어. 로프 확인하고 자세 잡고 내려오려고 하는데……. 수연이가 갑자기 니 이름 부르더라.”

   “내 이름?”

   “응. 손발 덜덜 떨다가 ‘박찬진’ 하고 중얼대더라고. 주문이나 기도처럼……. 그러더니 밑으로 쭉 내려갔어. 너랑 수연이 만난 지 얼마나 됐냐? 한 3년 됐나? 3년쯤 만나면 그럴 수 있는 거야? 만나는 사람 이름 부르면 마음이 막 안정되고……. 야……. 부럽더라. 가슴 졸여질 때 부를 이름 있다는 게……. 부르면 편안해지는 이름 있다는 게……. 수연이도 복 받은 거 같고 너도 복 받은 거 같다. 한쪽만 잘해서는 그렇게 사이 깊어지기 어렵잖아? 너네 참 잘 만났어. 그 말해 주려고 전화한 거야. 나 이제 차 탄다? 끊을게. 일 열심히 해!”

   정혜가 전화를 끊었다.

   수연이가 내 이름을 불렀다고. 암벽 꼭대기에서.

   박찬진. 내 이름을 불렀다고.

   “주문하신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 나왔습니다.”

   아르바이트생이 카운터에서 소리쳤다. 아직 지갑에 꽂지 않은 신용카드와 지갑을 한데 뭉쳐 쥐고 일어섰다. 카운터에서 커피 받아 와 다시 테이블 앞에 앉았다. 지갑 속에 신용카드를 넣고 지갑은 가방에 넣었다.

   멍하다.

   지난 주에 본 수연이 모습을 떠올려 봤다. 어깨에 닿을 듯 말 듯한 단발머리. 굳은살 밴 손바닥. 까만색 운동복과 손목에 차고 있던 까만색 머리끈. 하얀 운동화. 그 모습으로 암벽 꼭대기에 올라 내 이름을 불렀다고.

   “박찬진.”

   내 이름을 발음해 보았다. 

   나 없는 공간에서 내 이름 부르는 수연이 마음은 어떤 걸까. 나 없는 데서 누군가 내 이름 부를 수 있단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내 얘길 하다 내 이름 언급하는 게 아니라 단지 내 이름을 불러 보기 위해 그 세 글자를 내뱉는다니.

   “이수연.”

   수연이 이름을 발음해 보았다. 꼬리뼈가 찌르르했다. 아까부터 가슴은 계속 벌떡거리고 있다. 

   가장 아름다운 고백. 가장 아름다운 고백이었다. 입가에서 웃음이 자꾸 비죽비죽 새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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