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단편 소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이로운 Oct 07. 2016

보은이 누나


   “성근아. 이리 와 봐. 성근아!”

   누나가 나를 불렀다. 누나는 조명 가게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 뭘 보고 있는 건가. 조명 가게 사장님이 누나 뒤에 서 있었다. 사장님이 나를 돌아보았다.

   “왜?”

   누나에게 다가가 물었다. 누나는 회전목마 모양으로 생긴 조명을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어른 손바닥 크기 정도 되는 조명이었다. 노란 불빛을 내뿜으며 회전목마가 돌아가고 있었다. 오르골처럼 낭랑한 음악이 흘러 나왔다. 누나는 저게 마음에 드는 눈치다.

   “이거 사 줘?”

   회전목마 조명을 집어 들며 내가 말했다. 누나가 나를 따라 일어섰다. 사장님이 뒤로 물러나 카운터로 들어갔다. 물건 살까 말까 할 때 누가 사라고 하면 왠지 사기 싫어진다는 걸 사장님은 아는가 보다.

   “왠지 비쌀 거 같아. 예쁘잖아.”

   누나가 배시시 웃으며 속닥거렸다. 

   “예쁘면 비싸?”

   “예뻐서 비싸면 납득이 되잖아.”

   “뭔 그런 납득이 다 있대…….”

   “너 진짜 이거 사 줄 거야?”

   “못 사 줄 게 뭐 있어. 여기서 젤 비싼 거 사도 돼. 누나 결혼 선물인데 내가 뭘 못해 줘.”

   내가 호기롭게 말하자 누나가 다시 웃었다. 웃는 누나 눈에 아쉬움 같은 게 서려 있다.

   “떠나는 느낌이라 선물을 받아도 찜찜하네.”

   누나가 울적하게 말했다. 누나 눈길이 회전목마 조명으로 떨어졌다. 회전을 멈춘 목마에선 불빛도 음악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신혼살림 차려 놓고 떠나긴 뭘 떠나.”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내 마음도 이상했다. 

   “지금이랑 다르겠지?”

   누나가 고갤 들며 물어 왔다. 

   “뭐가 달라?”

   “모든 게…….”

   “누난 아무것도 안 달라졌으면 좋겠어?”

   “그런 건 아닌데…….”

   “그럼 뭐가 걱정인데.”

   “아빠처럼 말하지 마.”

   “내가 아빠 자식인데 아빠처럼 안 말하고 누구처럼 말해?”

   “…….”

   “뭐가 걱정이냐구.”

   “원래 가족들이랑 멀어질까 봐 겁나.”

   “우리? 엄마랑 아빠랑 나랑?”

   “그래.”

   “왜 멀어지는데?”

   “같이 안 살잖아.”

   “누나.”

   “응?”

   “이럴 때 보면 누난 진짜 애 같아.”

   “뭐가?”

   “당연히 멀어질 수밖에 없지. 같이 안 살기 시작하면 우린 멀어질 거야. 눈에 안 보이는 만큼 모르는 것도 많아질 거니까. 근데 우린 또 다른 방식으로 가까워질 거야. 부모로서 엄마아빠랑 누나는 멀어지겠지. 근데 인간 대 인간으로 엄마아빠랑 누나는 가까워질 거야. 엄마랑 아빠는 이제 누나 책임지는 사람 아니잖아. 엄마랑 아빠는 이제 누나한테 의지하기 시작할 거야. 벌써 좀 그런 거 같기도 하더라. 나는 누나 결혼 소식 듣고……. 누나가 어른이란 생각이 처음 들었어. 그래서 누나로서 누나랑 나는 멀어졌어. 예전처럼 장난 걸고 말 짓궂게 내뱉는 거 못 하겠더라. 근데 누나가 어른처럼 느껴지니까 누나가 편해. 같이 살 땐 못했던 말 같은 거 있잖아……. 식구끼리는 굳이 안 하는 말……. 고민 같은 거……. 그런 거 누나한테 가끔 말할 수 있을 거 같아. 그래서 어른으로서 누나랑 나는 가까워졌어. 지금까지 내가 한 말 이해 돼?”

   내 물음에 누난 얼굴을 끄덕거렸다. 누나 눈에 눈물이 차올라 있었다.

   “왜 자꾸 울고 그래. 속상하게.”

   내가 어르자 누난 고갤 숙이고 눈물을 닦았다.

   “야.”

   눈물 다 닦은 누나가 나를 불렀다. 누나는 아무리 울어도 울음 그치고 나면 새 얼굴이 된다. 눈도 붓지 않고 피부도 부르트지 않는다. 나는 조금만 울어도 눈이 퉁퉁 붓고 피부가 훌떡 뒤집어지는데…….

   “왜.”

   “넌 결혼 언제 할래?”

   “뭔 소리야 갑자기.”

   “너 결혼 생각은 있냐?”

   “나 아직 결혼 생각할 나이 아니야.”

   “스물여섯이면 결혼 생각 슬슬 할 때 아닌가? 누난 보은이 걔가 참 괜찮던데.”

   “보은이 누나?”

   “뭐야. 표정 왜 이래. 왜 이렇게 펄쩍 뛴대?”

   “보은이 누나 얘기하지 마.”

   “발끈할 건 뭐래? 니네 뭐 없었잖아. 너 보은이 좋다고 한 적 없었잖아. 보은이가 너 좋다고 난리 피웠지.”

   “아, 글쎄 보은이 누나 얘기하지 마! 그리고 난리가 뭐냐? 하여튼 단어 고르는 거 진짜……. 말 그렇게밖에 못하지?”

   “난리가 어때서? 그리고 니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이게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나한테 짓궂게 말 못한다 그러더니…….”

   “속 터져서 그래. 속 터져서. 그러니까 보은이 누나 얘기하지 마.”

   “속이 왜 터지는데. 니네 뭐 있었어?”

   “뭐 없었어. 그래서 속 터져.”

   “뭔 말이야, 그게?”

   “누난 나한테 말 좀 해 주지.”

   “내가 뭘?”

   “그때 보은이 누나가 나한테 잘해 줬던 게……. 그냥 잘해 주는 게 아니라고. 친한 동생이라 잘해 주는 게 아니라고. 좀 말해 주지.”

   “못해도 백 번은 넘게 말했을 걸? 너한테? 보은이가 너 좋아한다고?”

   “놀리듯이 말고 진지하게 말이야.”

   “내가 진지하게 ‘보은이가 너한테 진짜 마음 있나 봐.’ 하고 말했으면 니가 들었겠냐?”

   “아니……. 그땐 몰랐겠지……. 누가 나 쥐어 패면서 말해도 몰랐을 거야. 하도 답답해서 그냥 해 본 소리다.”

   “그래서 지금은 알아? 보은이가 그때 너한테 어떤 마음이었는지?”

   “당사자도 아닌데 그 마음을 어떻게 다 알겠냐. 그래도 대강은 알겠어. 그때 보은이 누나가 나한테 어떤 마음이었을지……. 보은이 누나……. 나한테 한 번도 누나이려고 한 적 없었던 거 같아. 누나로서 잘해 준 거 아니었어. 내 앞에서 풀어진 모습 보여 준 적도 없고. 아는 동생 앞에서 좋게 보이려는 게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예뻐 보이려 했던 거 같아. 보은이 누나는 나한테.”

   “그래서?”

   “짜증나.”

   “짜증나? 그걸 전부 이제 알아서?”

   “응.” 

   “너 보은이 좋아해?”

   “아니. 미안해.”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이제 와 미안할 건 뭔데?”

   “마음 훤히 알고도 모른 척하는 것보다 아예 모르는 게 더 나쁜 거 같아서…….”

   “그건 그러네. 내 마음 알고도 모른 척하는 사람은 미운데 내 마음 전혀 모르는 사람은 싫지. 화나지. 나는 이 마음 때문에 잠도 못 자고 절절 끓는데 아무것도 몰라주는 거면……. 잔인하지.”

   “보은이 누나가 했던 말들……. 그땐 무심결에 흘렸던 말들이 전부 가슴을 막 후벼 파.”

   “너 보은이 좋아해?”

   “아니래두.”

   “확실해?”

   “확실해. 왜 웃어?”

   “자기 마음 확실하다 그러는 애들이 제일 많이 울더라.”

   “왜?”

   “마음이 확실할 필요가 왜 있어? 이러기도 하고 저러기도 하니까 마음이지. 근데 마음에 못을 왜 박냐구. 왜 아니라고 잡아떼냐구. 자기 진심 너무 커서 무서우니까 아니라고 아니라고 진심 떠미는 거잖아.”

   “진짜 아니야.”

   “아, 알았어. 아닌 걸로 해. 니가 보은이 좋아하든 말든 내가 뭔 상관이야.”

   “방금 전까지 들볶아 놓고…….”

   “계산이나 해. 나 이거 살 거야.”

   누나가 회전목마 조명을 들이밀며 말했다. 나는 조명을 받아 들고 돌아섰다. 카운터에 서 있던 사장님이 헛기침하며 나를 맞았다. 

   “13만 7천원입니다. 조막만한 게 그냥 예쁘기만 해서 비싼 게 아니라 이게 물 건너온 골동품이라……. 들여올 때부터 가격이 좀 나갔거든요……. 포장해 드릴까요?”

   사장님이 하얀 포장 종이를 꺼내며 물었다. 

   “네. 포장해 주세요.”

   내가 대답하자 사장님이 포장을 시작했다. 나는 카운터에 지갑을 올려놓았다. 누나가 내 지갑을 가져가며 나를 쳐다보았다.

   “고맙다? 계산 카드로 해? 현금으로 해?”

   누나가 웃음을 참으며 물어 왔다. 누나는 내가 화낼 때마다 저렇게 웃는다. 누나 눈엔 내가 화내는 게 너무 웃기단다. 철딱서니 없는 여덟 살짜리 애가 바락바락 우기는 거 같아서 너무 웃기단다. 

   보은이 누나는 내가 화낼 때……. 

   보은이 누나는…….

   “누나 맘대로 해.”

   누나에게 쏘아붙이고 밖으로 나왔다. 밤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 여자에게 내 천진난만함은 냉정함 이상의 상처였겠지. 




신간 안내 : www.parkdabin.modoo.at

매거진의 이전글 가장 아름다운 고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