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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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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Oct 10. 2016

욕심 좀 내면 안 돼?


   “어디까지가 사랑이고 어디부터가 욕심인데.”

   내가 물었다. 목소리에 억양이 실리지 않았다. 얼굴이 뜨겁고 등이 따끔거렸다.

   “난들 아냐?”

   네가 퉁명스럽게 되물었다. 네가 야속하다. 

   “근데 왜 내 사랑은 욕심이라는 건데.”

   “…….”

   “욕심 좀 내면 안 돼?”

   “…….”

   “나도 알아. 니가 그렇게 못 박듯이 말 안 해도. 니가 그런 눈빛으로 나 안 쳐다봐도. 안다고. 나도 안다고. 그 사람하고 내가 이어질 수 있을까.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도 나를 사랑해 줄 수 있을까. 하루에도 수천 번씩 생각해. 그리고 좌절해. 수천 번씩 좌절해. 그 이상으로 좌절해. 아파. 그 생각 끝에 무슨 결론이 있는 줄 알아서 너무 아파. 그 사람 때문에 죽을 거처럼 좋다가도 곧 죽을 거처럼 아파. 온몸이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지는 거 같아. 세상 사람들이 전부 손톱 세우고 내 살갗 벗겨내는 거 같아. 나랑은 너무 다른 세상에 사는 그 사람. 내 순정이 아무리 뜨거워도 내 순정에 달아오르지 않는 그 사람. 나도 알아. 그 사람 그런 거 나도 안다고. 그 사람이랑 나랑 이어질 확률 거의 없다는 거 안다고. 내 사랑만큼 그 사람도 나를 사랑해 주는 거? 나 거기까지도 못 가. 그 사람은 내가 자기 사랑하는 줄도 모르니까. 내 사랑이 너한테만 승산 없어 보이겠니? 나한테도 승산 없어 보여. 그래서 그 사람 곁 맴돌다가도 그 사람한테 사랑한다고 못해. 내 맘 때문에 너만 답답해? 내가 제일 답답해! 니가 나 미워해서 그런 소리 하는 거 아니라는 것도 알아. 니가 나 아껴서……. 나 상처 받지 말라고……. 상처 받았으면 이제 그만 받으라고……. 그래서 그 사람 좋아하는 거 욕심이라 하는 거 알아. 니가 나 소중하게 생각해서 나 말리는 것도 알아. 근데 있잖아. 니가 말리니까 나 짜증나. 니 맘도 모르고 짜증내서 미안한데……. 지금은 니 맘보다 내 맘이 더 중요해. 내 맘밖에 안 보여.”

   “혜주야.”

   “나 아직 말 덜 끝났어.”

   “…….”

   “니가 걱정하는 것보다 나 훨씬 힘들어. 아주 구질구질해. 넌 모르지? 내가 그 사람한테 어떤 말들을 쏟아 놓는지. 사랑한단 말은 못하면서 그 비슷한 말들은 얼마나 잘도 떠들어대는지. 내가 얼마나 비겁한지. 근데 내가 해보겠다고. 그냥 구질구질해질래. 사랑한다 말은 못하고 그냥 그 사람 주위 맴도는 거. 그래 놓고 은근히 내 맘 자꾸 보여 주는 거. 그러다가 그 사람이 나한테 따뜻한 눈빛 보내면 혼자 희망 갖는 거. 그 희망이 절망으로 변할 때마다 무너지는 거. 해 볼래. 나 그렇게 끝까지 가 볼래. 될까 말까 이어질까 끊어질까 따져 가면서 사랑하는 거 이제 그만할래. 나 혼자 미친 사람처럼 마음 접었다 펼쳤다 구겼다 폈다 하는 짓 그만할래. 그냥……. 내버려둘래. 내 맘대로 해 볼래. 그 사람이 나 몰라준다고 내 맘 접으면 내가 앞으로 누굴 좋아해. 누구한테 사랑한다고 말해. 쪽팔려서 어떻게 사랑한다고 해? 안 다칠 만큼만 마음 주는 거……. 당신하고 내 관계 발전될 가능성 있을 때까지만 당신 좋아하겠다는 건데……. 그 마음으로 어떻게 사랑을 말해. 그게 구걸이지 사랑이야? 근데 나 여태 그러고 살았어. 치사하게 사랑 구걸하면서 그 사랑 안 줄 거 같은 사람은 칼 같이 잘라냈어. 그러면 잘 사는 건 줄 알았어. 그러면 똑똑하게 사랑하는 건 줄 알았어. 근데 이젠 쪽팔려.”

   “너 진짜…….”

   “근데 웃긴 게 뭔 줄 알아? 끝까지 가 보겠다고 해 놓고도 나……. 그 사람 앞에 가면 사랑한단 말 못해. 내가 아직 이렇게 구질구질해. 나는 아직도 구걸해. 구질구질하지 않은 척 구걸하지 않는 척 되게 씩씩하게 밀고 들어가는 척하지만 아니야. 아직도 아니야. 근데 그냥 이렇게 지낼래. 이렇게라도 할래. 그 사람 좋아할래. 구차하게라도 좋아할래. 미안해. 내가 뭐라고 하는 줄도 모르겠다. 정리가 안 돼.”

   “정리가 어떻게 돼.”

   “…….”

   “알았다. 그만 말릴게.”

   네 말끝에 떨림이 묻어났다. 너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벅벅 문질렀다. 

   멎어 있는 듯했던 주변 소음이 다시 귓속으로 들어왔다. 벤치 앞을 지나가는 자전거 바퀴소리가 들린다. 바람에 나무 흔들리는 소리도 들린다. 이 길 끝에 지나가는 자동차 색깔도 보이고……. 가을로 계절이 바뀌는 공기 냄새도 맡아진다.  

   “혜주야.”

   벤치에서 일어선 네가 나를 불렀다. 너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널 왜 말린 거 같냐?”

   네가 물었다.

   “응?”

   “내가 널 왜 말린 거 같냐고.”

   “그거야…….”

   “아까 니가 말한 이유……. 내가 너 말린 이유……. 그거 틀렸어. 나 그렇게 좋은 사람 아니야. 너 상처 안 받았음 해서 너 말린 거 아니야. 너는 니 맘이 더 중요하지. 나도 내 맘이 더 중요해. 니 맘 생각해서 너 말린 거 아니야. 내 맘이 걸려서 너 말린 거야. 니가 구질구질하든 구걸하든 비겁하든 구차하든 계속 사랑하겠다고 하니까……. 그 사람 곁에 있겠다고 하니까……. 마음이 불편하더라. 나는 뭐지 싶어서. 나는 나 구질구질한 거 싫어. 누구한테 구걸하는 것도 싫어. 비겁해지는 것도 싫고 구차해지는 것도 싫어. 그래야 하느니 사랑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 그래서 난 도망가. 자존심 상하면 도망가. 붙잡다가 거절당할까 봐 안 붙잡아. 추접스럽게 빙빙 돌려 말할까 봐 아예 말 안 해. 누가 나한테서 떠난다고 하면 가라고 해. 누가 나한테서 떠날까 봐 먼저 떠나. 난 항상 그런 식이야. 그래서 난 한 번도……. 단 한 번도……. 끝까지 가 본 적이 없다. 내 마음 다 덜어내고 나면 가슴에 뭐가 남는 줄 몰라. 너도 얼마 전까진 이런 사람이었잖아. 그래서 위로가 됐어. 나만큼 구질구질하고 나만큼 구걸하고 나만큼 비겁하고 나만큼 구차한 니가 좋았어. 근데 니가 이제 안 그러겠다네? 끝까지 가 보겠다네? 그러면 축하를 해 줘야 되는데 왜 축하가 안 되니. 니가 끝까지 가 버리면 나만 구질구질하고 나만 구걸하고 나만 비겁하고 나만 구차한 거 같아서……. 같이 구질구질해지자고. 같이 구걸하자고. 같이 비겁해지자고. 같이 구차해지자고. 그러다가 접자고. 마음 접자고. 끝까지 가지 말라 하고 싶은 걸 어떡하니. 너 나한테 미안해하지 마. 내가 미안해. 니 맘이 아무리 너저분해도 나만큼은 아니야. 그러니까 가. 오늘은 가. 나 부끄러워서 니 얼굴 더 못 보겠다.”

   내 얼굴 더 못 보겠단 너는 말을 끝내 놓자마자 돌아섰다. 나는 얼빠진 얼굴로 네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뭔 놈의 사랑은 이렇게 번번이 난잡한가. 

   “갈게.”

   네 뒷모습에 대고 내가 인사했다. 너는 돌아보지 않는다. 나는 몸을 일으켜 걸었다. 네 등과 내 등이 마주 보이는 채로 걸었다. 

   나는 너를 이해한다. 요즘은 내 마음만 아니면 모든 마음을 이해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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