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단편 소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이로운 Oct 12. 2016

어떻게 저렇게 용감할까


   “한 번은 말이야.”

   네가 뜬금없이 말문을 열었다.

   “응?”

   운전 중이라 너를 바라보진 못하고 그게 무슨 말이냐 묻기만 했다.

   “걔가…….”

   “걔?”

   내가 재차 묻자 너는 눈을 껌벅거리며 나를 돌아보았다. 내가 운전하는 동안 너는 ‘걔’라는 사람을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 미안해. 지형이. 걔는 지형이야.”

   “지형이가 누군데?”

   “동생 친구.”

   “응, 지형이가 왜?”

   “걔가 까만 운동화를 신고 왔어.”

   “왜?”

   “내가 걔한테 너는 까만 운동화가 잘 어울릴 거 같다고 그랬거든. 왠지 그냥 그럴 거 같아서 지나가듯 말했어. 근데 얼마 뒤에 지형이 걔가 내 동생이랑 우리 집 놀러오면서…….”

   “까만 운동화를 신고 왔다?”

   “응. 그러면서 하는 말이……. ‘누나, 봐요. 나 오늘 까만 운동화 신고 왔는데. 진짜 잘 어울려요?’ 그러는 거야. 그래서 내가 잘 어울린다고 그랬어. 진짜 잘 어울리기도 했고 내가 한 말 기억해서 그거 신고 온 게 기특하기도 해서. 근데 걔는 우리 집 올 때마다 까만 운동화를 신고 오네? 내 동생이나 걔나 신발 수집 장난 아니게 많이 하거든? 그거 때문에 죽이 잘 맞아서 둘이 어울리는 건데……. 우리 집 올 땐 그 까만 운동화만 신고 오는 거야.”

   “뭐야. 나 질투 나려고 하는데.”

   내가 중얼거리며 입술을 샐쭉거리자 네가 웃음을 터뜨렸다.

   “질투할 필요 없어. 눈썹에 힘 빼. 지형이 걔가 그러는데 꼭 나 보는 거 같더라. 오빠가 하는 말들이 나한테 그렇거든. 오빤 그냥 지나가듯 말할 뿐인데……. 난 오빠가 하는 말들이 자꾸 곱씹혀. 오빠가 초록색 좋아한다 그래서 내가 초록색 옷을 얼마나 많이 산 줄 알아? 초록색 옷 되게 소화하기 힘들어. 잘못 입으면 촌스럽다구. 근데 자꾸 초록색 옷이 눈에 들어와. 오빠가 좋아하는 색이니까.”

   “너한테 내가 초록색 좋아한다 그랬어?”

   “그래. 이거 봐. 오빤 기억도 못하잖아. 그리고 오빠 파프리카 좋아하잖아.”

   “넌 파프리카 안 먹잖아.” 

   “먹어. 나 요새 파프리카 먹어. 집 앞 슈퍼에서 아이스크림 사다가 파프리카도 같이 산 적 많아. 아이스크림 퍼 먹다가 파프리카 썰어 놓은 것도 먹고 그래. 이상하지? 근데 그러게 돼. 오빠가 좋아하는 것들로 내 일상을 채우게 돼. 오빠가 날 보고 있든 아니든……. 나는 그래. 이상해. 근데 자꾸 그러게 돼. 이상한데 좋아. 혼자서 자꾸 웃어.”

   네가 말을 마치고 나는 차를 세웠다. 수많은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다. 보행자 신호등에서 빨리 길 건너라는 기계음이 터져 나왔다.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눈을 떼고 너를 바라보았다.

   “나 없을 때 내 생각 많이 해?”

   빙긋 웃으며 네게 질문했다.

   “같이 있을 땐 더 많이 해.”

   네가 생글거리며 대답했다.

   “같이 있는데 어떻게 더 많이 생각해?”

   “기억해 둬야 될 게 많으니까.”

   “너는 참…….”

   “왜?”

   “예쁘다.”

   내가 나지막이 말하는데 옆 차선에 세워져 있던 차가 출발했다. 신호등을 올려다보았다. 신호가 바뀌었다. 차를 출발 시켰다. 

   “어디가 어떻게 예쁜 건지 좀 자세히 말해 봐.”

   네가 장난스런 말투로 채근해 왔다.

   “요즘은 세상이 좀 희한해서……. 더 많이 좋아하는 게 큰일이라도 되는 거처럼 생각해. 밑지고 들어가는 거라고 생각해. 그게 연인 사이든 친구 사이든 말이야. 더 많이 좋아하는 쪽이 꼭 손해를 본다는 듯이……. 근데 너는 그런 게 없어. 저울로 달아 보고 ‘이만큼 주면 되겠다.’ 하고 마음 주는 거 같지가 않아. 아주 박박 긁어 주는 느낌이야. 니 마음을……. 그래 놓고 억울해 하지도 않고 오히려 좋아해. 마음을 크게 덜어 주는 너 자신을 스스로 되게 기뻐하는 거 같아. 그래서 니가 그럴 때마다 난 자꾸 가슴이 철렁하네. 니가 마음을 왕창 보여 줄 때마다 가슴이 철렁해. 어떻게 저런 말을 할까. 어떻게 저런 표정을 지을까. 어떻게 저렇게 용감할까. 어떻게 저렇게 매번 자기 마음을 다 펼쳐 놓을까. 놀라서 철렁하고 고마워서 철렁하고 감동이라 철렁해. 한 번도 담담했던 적이 없어. 니가 솔직한 마음으로 다가올 때마다 심장이 남아나질 않는다. 니가 되게 용감하다고 해서 니 용감함이 쉽게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거 알기 때문이야. 너한테도 가끔은 챙기고 싶은 자존심 그런 거 있을 텐데. 나한테는 그 자존심 내세우지 않아 줘서 고맙고 그래. 니가 나 좋아하는 거보다 내가 너 좋아하는 게 더 적다고 말하는 게 아니야. 나도 너 많이 좋아해. 무지 많이 좋아해. 내 마음도 크다고. 근데 난 그 마음 쓰는 데 참 서툴고 넌 자연스러워. 그 차이야. 그러니까 내가 가끔 너 서운하게 만든다 싶으면 이 말 기억해. 그리고 혼자 생각해. 저 사람이 마음이 작아서 나한테 이러는 게 아니라 마음을 쓸 줄 몰라서 이러는 거라고…….”

   “어디가 어떻게 예쁜지 설명하라니까 고백을 하고 그래…….”

   네가 두 손으로 뺨을 감싸며 말했다.

   사거리에서 다시 차를 세웠다. 이번엔 횡단보도 건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너를 돌아보았다. 

   “너 초록색 옷 잘 어울려. 안 촌스러웠어. 한 번도.”

   내가 말하자 네가 고갤 숙였다. 

   차창을 내렸다. 코끝을 약간 맵게 하는 겨울바람이 차 안으로 들어온다.

   입 밖으로 토한 말은 늘 바람 같다고 생각했다. 뱉어 놓으면 금방 사라지는 거라고. 근데 너는 온 계절의 바람을 유리병에 담아 보관하듯 내 말들을 기억에 담아 보관하고 있었다. 




신간 안내 : www.parkdabin.modoo.at

매거진의 이전글 욕심 좀 내면 안 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