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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Oct 17. 2016

간절함도 실력이다


   컴퓨터 모니터 구석에 붙은 포스트잇이 눈에 띈다. 멀건 눈으로 그쪽을 쳐다보았다. 밝은 연두색 포스트잇엔 간결한 한 문장이 적혀 있다.

   ‘간절함도 실력이다.’

   부장님이 해 주신 말씀이다. 세 달 전인가……. 옥상에서 몰래 담배 피고 있다 마주쳐 들은 말씀이다. 부장님은 내 손가락에 끼워진 담배를 발견하곤 조금 흠칫하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부장님이 그 놀람을 태연함으로 바꾸는 데는 1초도 걸리지 않았다. 부장님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부장님은 어떤 얼굴을 지어야 상대가 불편해 하지 않는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몸속에 있는 진이 다 빠지도록 사람을 상대해 본 사람만이 얻는 직감 같은 게 부장님에게 있다. 그러는 바람에 나는 이 담배가 내 생애 첫 담배라는 걸 고백할 수 없었다. 부장님은 내가 담배를 모르고 살았든 담뱃진에 절어 살았든 별 상관없단 표정이었으니까. 아침에 “홍 대리.” 부르던 그 표정이었으니까.

   부장님 그 표정 보면 드는 생각이 하나밖에 없다. ‘저 사람은 내가 무슨 행동을 해도 나를 똑같이 바라봐 줄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와 가슴 가득 차오른다. 그리고 그 생각은 현실이 되었다. 4년의 직장생활 동안 부장님은 나를 한결같이 대해 주셨다.

   아까도 말했지만 부장님은 상대가 불편해지지 않는 표정을 골라 짓는 능력이 있다. 그건 상대가 어떤 식으로 굴든 부장님이 상대를 불편해 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뜻밖이라 조금 놀라 하긴 해도 누군가의 행위가 틀렸다는 뉘앙스는 절대 풍기지 않는다. 대신 살아 줄 것도 아니면 개입하지 않는 게 부장님 철칙이다. 부장님 그 철칙이 냉정하다고만 생각했는데……. 부장님의 적당한 거리감과 무관심은 나를 편안하게도 만들어 주었다. 

   옥상에서 본 부장님 그 표정은 내 마음을 좀 당당하게 만들었다. 뒷짐 진 손 안에서 타들어 가는 담배를 몸 앞으로 가져왔다. 하지만 담배 피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금방 생긴 당당함은 연기처럼 흩어졌다. 나는 옆에 있던 스테인리스 쓰레기통 뚜껑에 담뱃불을 비벼 껐다. 꽁초로 담뱃재를 닦은 뒤 쓰레기통 안에 꽁초를 버렸다. 부장님이 헛기침하며 “괜찮은데…….”라 말씀하셨다.  

   “부장님 때문이 아니라 담배 생각이 없어요.”

   내가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생각이 있어 올라왔을 텐데 왜 생각이 없어졌나?”

   “담배 피면 뭔가 차분해질 거 같았거든요. 점심 먹고 편의점에서 한 갑 사 들고 올라왔는데……. 목이고 눈이고 맵기만 하지 마음은 똑같네요.”

   “왜 차분해져야 되는데?”

   “안 그러면 그만둘 거 같아서요.”

   “뭐를?”

   “회사를요.”

   “홍 대리 무슨 일 있었어?”

   “…….”

   “혼자 있어야 되는 시간에 괜히 내가…….”

   “명 대리처럼 해낼 자신이 없어요.”

   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부장님이 내 쪽으로 돌아섰다. 부장님 눈길이 내 눈동자를 뚫고 지나갔다. 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명 대리처럼 해낼 자신이 없어요.”

   “누가 명 대리처럼 하라고 하든? 부장은 난데. 명 대리처럼 하라고 홍 대리 뽑은 거 아니야. 명 대리가 있는데 왜 명 대리처럼 하는 사람이 또 필요해. 홍 대리는 홍 대리처럼 해.”

   “그 말이 아니라…….”

   “명 대리가 어떤데? 홍 대리 눈에 명 대리 어떤데?”

   “잘하잖아요.”

   “명 대리가 뭘 잘하는데?”

   “그냥 잘하잖아요.”

   “그 잘하는 기준이 뭐야? 홍 대리. 마음 복잡할수록 생각을 똑바로 해야 돼. 구체적으로 생각해야 돼. 그냥 싫은 게 아니라 대체 뭐가 싫은지. 그 사람이 그냥 잘하는 게 아니라 대체 뭘 잘하는지 집어내서 생각해야 돼. 자꾸 어렴풋하게 생각하면 결국 자기 생각에 잡아먹혀, 홍 대리. 명 대리가 뭘 잘하는지 알면 그에 비해 홍 대리는 뭘 잘하는지 생각할 수 있잖아. 명 대리가 그냥 잘하는 사람이면 홍 대리는 뭔데? 명 대리가 그냥 잘하는 사람이고 홍 대리 자기도 그냥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거 아니잖아, 지금. 명 대리는 그냥 잘하는 사람인데 명 대리처럼 할 자신이 없다고 했잖아.”

   “네…….”

   “명 대리가 뭘 잘하는데?”

   “모르겠어요.”

   “홍 대리는 뭘 잘하는데?”

   “전 잘하는 거 없어요. 그냥 간절한 거밖에 없어요.”

   “홍 대리. 간절함도 실력이다.”

   “…….”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 같지? 천만에요. 홍 대리, 들어 봐. 세상엔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어. 왜 그런 줄 알아? 노력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 그랬을까? 아니. 더 이상 노력하지 않아서야. 노력은 누가 하는데? 머리로 노력하나? 노력은 엉덩이로 하는 거야. 노력은 지혜의 주머니가 아니야. 노력은 실패 덩어리야. 노력은 있는 힘껏 버티는 거야. 노력은 뭘 이루려고 하는 거니까. 뭘 이루는 건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니까. 그래서 노력은 견디는 거야. 그렇기 때문에 노력은 간절함으로 하는 거야. 그런데도 간절함이 실력이 아니라고?”

   “…….”

   “홍 대리. 출발선에 선 사람마다 능력 차이 얼마씩 있다는 거 나도 알아. 우리 부서에서 명 대리 특출한 거 나도 모르지 않는다고. 명 대리가 김 과장 일 거의 다 맡아서 하는 거 우리끼리 다 알고 있잖아? 근데 그게 뭐?”

   “쪽팔리잖아요.”

   “홍 대리랑 명 대리랑 같은 대리 직함 달고 일은 다르게 해서?”

   “네.”

   “홍 대리 목적이 뭔데?”

   “네?”

   “이 회사 다니는 목적이 뭔데? 안 쪽팔리기? 사람들한테 멀쩡한 모습만 보이기?”

   “아, 부장님…….”

   “일을 말아 먹어서도 아니고……. 누구랑 대판 치고받고 싸운 것도 아니고……. 자기 일 곧잘 잘 해내는 사람이……. 직장 동료처럼 해낼 자신이 없어서 그만두기를 고민한다……. 옥상 나와서 피지도 못하는 담배 물고 말이야.”

   “저한테는 이거 되게 심각한 문제거든요.”

   “그래. 누가 뭐래? 근데 앞으로도 심각할 건지 말 건지는 한번 다시 생각해 봐. 누가 명 대리랑 홍 대리랑 비교해?”

   “아니요.”

   “그런 비슷한 눈치 준 적은?”

   “없어요.”

   “진짜 없어?”

   “없어요.”

   “그럼 홍 대리 스스로한테 그만 창피 주고 마음 잘 추슬러.”

   “…….”

   “나도 담배 태우러 나왔는데 갑자기 담배 생각이 없다. 먼저 내려갈게.”

   헐렁한 바지 주머니에 양손 찔러 넣은 부장님이 돌아섰다. 초록색 방수 마감 처리된 옥상 바닥을 걸어 나간 부장님이 비상구 문 너머로 사라졌다.

   옥상 난간 쪽으로 몸을 틀었다. 가슴이 싸하다. 스스로한테 그만 창피 주란 말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가슴을 문질렀다.     

   “홍 대리!”

   누가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포스트잇에 꽂혀 있던 시선을 거두고 고갤 두리번거렸다. 나를 부른 건 명 대리였다. 명 대리가 서류 묶음 하나를 내 쪽으로 흔들어 보인다. 

   “왜?”

   내가 물었다.

   “이거 이번 분기 판매 내역이거든. 1주일 단위로 정리해서 과장님 드려야 되는데……. 홍 대리한테 좀 맡기자. 미안. 진짜 미안. 나 오늘 발가락 하나 끊어지는 한이 있어도 집에 일찍 들어가 봐야 돼. 어떻게 안 되겠어?”

   “알았어. 이리 줘.”

   “진짜 미안. 그리고 진짜 고마워.”

   명 대리는 모니터 위로 서류 묶음을 내밀었다. 나는 서류 묶음과 명 대리 손과 포스트잇을 번갈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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