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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Oct 24. 2016

나를 웃게 하는 마음

내 고난에 나보다 더 흔들리는 사람


   마주 선 사람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 버릴 때가 있다. 그런 때 그들 입술을 비집고 나오는 말은 대개 이런 것이다.
   “그 사람들 뭐야? 진짜 웃긴 사람들이네!”
   “그냥 관둬!”
   그렇게 소리치는 그들은 ‘그 사람들 뭐야?’의 ‘그 사람들’을 알지 못하거나 알더라도 미워하지 않는다. 그들 입장에선 ‘그 사람들’을 비난할 이유가 없다. 또 그들은 ‘그냥 관둬!’에서 ‘그 관두라는 일’이 뭔지 잘 모르거나 아예 그 일과 연관이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 사람들’에 대해 거칠게 말하고 내게 ‘그 일’을 때려치우라고 한다.
   ‘그 사람들’이나 ‘그 일’ 때문에 내가 상처 받을까 봐 그냥 큰소리부터 치고 보는 거다.
   그래서 그런 말을 듣고 나면 빙긋 웃게 된다. 웃을 상황이 아닌데 참기 힘든 웃음이 새어나온다. 웃음을 막아 보려 입술을 말아 물어도 보지만 눈은 벙글벙글 웃고 있다. 눈빛을 들키지 않기 위해 시선을 돌려 봤자 그땐 이미 늦었다. 온몸의 분위기에 웃음기가 잔뜩 배어 있다.
   내게 덮여 있던 고민을 걷어 저만치 밀쳐 버리고 내 앞에 훌쩍 다가온 사람. 내가 내 고민을 못 보도록 그것을 막아 선 사람. 내 고민에 대해 나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 내 고민 앞에 나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 그런 사람의 그런 반응은 나를 자꾸 웃게 한다. 내가 깨지고 다치지 않길 바라는 그 마음이 나를 웃게 한다. 그럴 때 나오는 웃음의 감각에서 나는 행복과 감사를 읽는다.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닌데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귀엽다고 하기 애매한 상황인데 그런 말은 참 귀엽다. 자려고 누웠다가도 생각나 기꺼이 잠을 설칠 만큼 귀엽다. 굳이 내 편이 돼 주겠다고 우기는 그 정성이 귀엽다. 귀여운 마음이 가시면 든든한 마음이 온다. 그 말 덕에 내 마음이 참 포근하고 안전하다.
   그리고 그런 말은 내게 전혀 유치하지 않다. 진심이 가진 순수는 절대 유치하지 않다. 유치할 수가 없다.
   객관적인 것의 반대가 유치한 것은 아니잖은가.
   좋아하는 사람이 힘들어하는데 객관이고 뭐고 다 무슨 소용인가.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울 만큼 내 일이 그에게 중요하다면. 내가 그에게 그만큼 귀한 사람이라면. 신경질 난 그가 내게 몇 마디 고함 좀 친들 마음이 상하지 않는다. 상한 마음이 아문다면 모를까.
   사실 나를 걱정해서 내게 뭐라 하는 사람 대부분이 기본적으로 나를 험하게 다루지 않는다. 우리가 때리고 꼬집고 무찔러야 할 대상은 서로가 아니니까. 그걸 너무 잘 아니까.
   이쯤에서 신비로운 현상이 벌어진다. 누가 내 고달픔에 대해 진심으로 마음을 쓰면 내 쪽에서 불만이 쑥 들어가 버린다. 같이 푸념하거나 계속 침울해 하지 않는다. “괜찮아. 아, 괜찮대두.” 하고 담담히 말하게 된다. 힘겨운 일의 주인이 바뀐 것처럼 내가 상대를 달래게도 된다.
   그래서다. 오전 내내 당신에게 괜찮다고 말한 건.
   “뭐가 그렇게 신났어? 지금 재밌니?”
   당신은 나를 꾸지람하듯 묻고 있다.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이다. 
   “뭐가, 왜. 왜 심통이 났어.”
   “왜 자꾸 웃어?”
   “내가 웃었나?”
   “계속 웃었잖아!”
   “원래 이렇게 생긴 걸 뭐……. 나 웃는 상이잖아.”
   헛기침하며 내가 느물댔다.
   “내가 그렇게 의지가 안 돼?”
   당신이 한숨 섞인 목소리로 질문해 왔다.
   “갑자기 무슨…….”
   “뭐가 다 괜찮대. 하나도 안 괜찮으면서. 이게 괜찮을 일이야?”
   “…….”
   “말해 봐. 이게 괜찮을 일이냐고.”
   “괜찮은 일 아니지.”
   “근데 왜 자꾸 괜찮대?”
   “내 마음은 괜찮으니까. 그 일이 괜찮다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이 괜찮다고. 내 마음 괜찮다고 한 거야, 계속.”
   “…….”
   “이해 못하는 표정 지어도 할 수 없어. 니가 이해 못한다 해도 이게 사실이고 진짜니까. 해린아……. 지금 상황 엉망진창인 건 나도 알아. 해결된 거 하나도 없고 해결될 기미조차 없는 거 내 눈에도 보여. 내가 바보야? 그런 상황 보고 괜찮다고 하게? 근데 그 상황 속에 있는 내 마음은 괜찮다고. 괜찮아졌다고. 너는 내가 상황 따라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렸으면 좋겠어? 지금 상황 처참하다고 내 마음까지 처참했으면 좋겠어?”
   “아니 그게 아니라…….”
   “그래, 너 나 괜찮았으면 하잖아. 그걸 누가 몰라. 그러니까 믿으라고. 믿어 주라. 꼭 내가 이렇게 말해야 내 말 듣지, 넌. 웃으면서 말하면 넌 내가 너 속이는 줄 알아. 아닌데도 괜찮은 척하는 줄 안다고. 넌 언제쯤 내 말 고스란히 믿어 줄래? 내가 그렇게 의지가 안 돼? 불안하고 못 미더워서 마음을 막 못 주겠어? 마음을 푹 못 놓겠어?”
   내가 당신 말을 따라하며 질문 공세를 퍼붓자 당신은 고갤 떨어뜨린다. 내가 뒷말을 잇기 시작했다.
   “살다가 뭔 일 생기면 그 일 때문에 갑자기 마음 무너지는 거. 그거……. 그 일 때문에 내 가치 떨어지면 누가 나를 떠날까 봐. 이제 변변찮아졌다고 다들 나한테서 돌아설까 봐. 그게 두려워서잖아. 뭐 다른 사람들까지 그런지는 모르겠고 나는 그렇거든? 근데 넌 나한테 무슨 일 생겨도 내 가치 안 깎아먹는 사람이잖아. 좋은 일 생기면 내 가치 올라가고 안 좋은 일 생기면 내 가치 떨어진다고 생각 안 하는 사람이잖아. 아니야?”
   “맞지.”
   “근데 내가 니 앞에서 안 괜찮을 게 뭐가 있어. 니 앞에서 이 일 갖고 걱정할 필요가 없잖아, 나는. 니 앞에선 이 일 해결하려고 아등바등 애쓰지 않아도 되잖아. 넌 내가 하는 일보다 그냥 내 자체가 더 중요하다고 해 주는 사람인데……. 하던 일 망쳤다고 니 앞에서 변명하고 둘러대고 빨리 해결하겠다고 다짐할 필요가 뭐 있어. 안 괜찮은데 너무 안 괜찮은데 금방 괜찮아질 거라고 억지 부릴 필요가 뭐 있어. 나 니 앞에서는 좀 괜찮으면 안 돼? 그냥 안 괜찮을까?”
   “아니야…….”
   “이제 믿겠어? 믿어 줄 거야?”
   “…….”
   “울긴 왜 울어.”
   나는 당신을 어르며 당신 뺨 쪽으로 손을 뻗었다. 당신은 내 손을 피해 뒤로 주춤 물러섰다. 당신 왼발이 땅에 닿자 눈물이 당신 볼을 타고 흘렀다. 나는 손을 거둬들이며 당신을 멀거니 응시했다. 당신에게 필요한 건 위로가 아닌가 보다. 그럼 난 당신에게 뭘 해 줄 수 있을까. 줄 수 있는 진심은 방금 다 줬는데.

   “그냥…….”
   울음 추스른 당신이 울먹거리며 입을 열었다.
   “응.”
   “니가 맞아. 나……. 안 괜찮단 말이 듣고 싶었던 거 같아. 너한테만 그랬던 게 아니었어. 되돌아보니까 나 주변 사람들한테 항상 닦달했네. 좀 힘들다고 말하면 어떠냐고. 좀 안 괜찮다 하면 어떠냐고. 내 앞에선 힘들다 해도 된다고. 괜찮지 않다 해도 된다고. 맘껏 의지하라고……. 선심 쓰듯 말했는데……. 실은 그 사람들이 힘들길 바라고 안 괜찮길 바란 거 같아. 그 사람들이 나한테 기대는 느낌 누리려고. 그 사람들이 나 필요로 하는 느낌 받으려고. 그 사람들이 아니라 나 위해서……. 나 되게 나빴네. 나쁘다……. 미안해. 되게 부끄럽고 쪽팔린다.”
   “그럼 믿어. 이제 내 말 믿어. 내가 괜찮다고 하면 믿어 줘. 알겠지? 그러면 돼.”
   “미안해.”
   “아니, 그 말 말고.”
   “알았어. 믿을게.”
   “그래. 그러기로 했다?”
   “또 미안하다 그러면 싫어할 거지?”
   “싫긴 왜 싫어. 또 말해 줄게. 내가 듣고 싶은 말 그거 아니라고. 미안해 말라고……. 너는 내가 뭘 해도 다 이해해 주면서 니가 나한테 하는 건 말 한 마디 표정 하나 다 검사 받는 거 알아?”
   “그렇게 되는 걸 어떡해.”
   “나한테 애쓰지 마. 그런 건 서먹서먹한 사람들한테 가서 해. 덥네, 좀……. 나가서 걸을까?”
   내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당신은 꺼진 핸드폰 액정에 얼굴을 비춰 보았다. 눈물 자국을 확인하나 보았다. 내가 현관에 들어가 신발 신는데 당신은 화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현관에 멍하니 서 있다 다시 거실로 돌아왔다. 화장실에서 세면대 수도꼭지 틀리는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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