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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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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Oct 27. 2016

사연 있는 사람이 좋아

내 부끄러움을 안아 주는 사람



   “사연?”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네가 물어 왔다. 어깨 뒤로 쓸려 넘어간 머리카락 대부분이 도로 쏟아져 나왔다. 네가 몸을 앞으로 숙이고 있는 까닭이다. 너는 다리 꼬고 앉을 때마다 꼭 몸을 앞으로 기울인다.

   “응.”

   “사연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좋다고?”

   “응.”

   “그게 뭔데?”

   내게 다시 묻는 네 눈살이 찡그려져 있다. 너는 방금 내게 이상형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이상형은 뚜렷이 없고 그냥 사연 있는 사람이 좋다고만 대답했다. 

   “얼마 전에 드라마 봤는데…….”

   내가 운을 띄우자 너는 입술에 손을 가져다 댔다.

   “의사들 나온다던 그 드라마?”

   “아, 응. 맞다. 내가 그 드라마 본다고 말했었지.”

   “그 드라마가 왜?”

   “그 드라마에서 한 의사가 그러더라고. 자기는 사연 있는 여자가 좋다고. 그 말 듣는데 뜨끔하더라. 왜 뜨끔한가 생각해 봤더니 나도 사연 있는 여잘 좋아해서 그런 거더라고. 내 얘기하는 줄 알고 뜨끔했던 거야.”

   “아니, 잠시만……. 사연이 있다는 게 뭔데? 뭐 고생하면서 자라고 그런 거?”

   “꼭 고생이라기보다…….”

   “야,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

   “세상천지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냐구. 자기한테는 자기 인생 온통 절절한 거 아니야? 남들은 모르고 지나쳐도 자기가 살아온 순간순간이 자기한텐 다 기구한 사연이고 대단한 역사고 그런 거 아니냐구.”

   “그러게.”

   “뭐가 그렇게 단순하니. 다시 생각해 봐. 니가 정확히 원하는 게 뭔지. 니가 진짜 좋아하는 게 뭔지. 끌리는 사연 같은 게 따로 있었던 건 아니고?”

   “끌리는 사연……. 몰라. 그런 건 없는 거 같은데. 니가 갑자기 그렇게 나오니까 내가 할 말이 없잖아.”

   “내가 뭐? 맞는 말한 거지!”

   “음…….”

   “…….”

   “사연 있는 사람이 좋다고 하려면……. 먼저 그 사람 사연을 알아야 하는 거잖아. 내가 그 사람 사연을 알고 있어야 하는 거잖아.”

   “응.”

   “나는 비밀 많은 사람이나 신비로운 사람이 좋은 건 아니거든.”

   “그래서?”

   “아…….”

   “왜?”

   “너 진짜…….”

   “나 왜?”

   “몰랐어. 내가 어떤 사람 좋아하는 줄. 니가 내 말꼬리 붙잡고 늘어지기 전엔 그냥……. 막연히 내가 사연 있는 사람 좋아한다고만 생각했지…….”

   “이젠 알겠어? 니가 어떤 사람 좋아하는지?”

   “조금?”

   “그 조금 알게 된 거 나 언제 들을 수 있냐? 한 며칠 기다려야 돼? 뭔 뜸을 이렇게 오래 들이는 거야? 나랑 말하기 싫어?”

   너는 농담조로 내 대답을 부추겼다.

   “미안. 미안. 사연……. 내가 말하는 사연이랑 니가 말한 사연이랑 비슷해. 살면서 진짜 힘들었거나 상처 받았거나 슬펐거나 쫄딱 망했거나 제대로 쪽팔렸거나 하는 순간들. 그 순간들의 기억. 나는 그 기억을 사연이라고 불러. 솔직히 그런 거 남들한테 말하기 그렇잖아. 잘못한 일이 아니어도 수치스럽고……. 왠지 치부 같아서 꺼냈다간 사람들이 나 이상하게 볼 거 같고……. 그렇잖아. 내가 너무 창피했다 보니까 그 사연 전해들은 사람들 전부 나를 창피하다고 생각할 거 같아서. 근데 그걸 딱 드러내 놓는 사람 보면 가슴이 좀 그래.”

   “어떻게 좀 그런데?”

   “어떻게 그런 일을 다 겪었나 싶어서 가슴이 미어지다가도……. 그 사람 참 대단하다 싶어져. 나는 내 사연 말로 꺼내기 어려운 이유가……. 나를 용서하지 못해서거든. 아까도 말했다시피 내 사연이 내 잘못은 아니지만 나는 나를 용서 못해. 그 사연 속에서 굳이 내 잘못 찾아내가지고 나는 나를 탓해. 왜 하필 그 사연 속에 있어서 나 자신을 아프게 만들었냐고 나를 탓해. 그 사연 속에서 찾은 내 잘못이라는 게 너무 작아서……. 잘못이라 하기엔 의아할 만큼 작아서……. 그걸 말해도 사람들이 괜찮다고 너는 아무 잘못 없다고 해 줄 건데……. 나는 내 사연 절대 말 못해. 내가 힘들었던 거 아팠던 거 망신스러웠던 거 절대 말 못해. 사람들이 손가락질할 거 같아서. 정작 고달팠던 건 난데 사람들이 위로는 안 해 주고 나 이상하게만 볼까 봐……. 나도 알아. 이게 정상적인 사고방식 아니라는 거. 근데 뭐 어떡해. 내 생각이 자꾸 그런 식으로 흘러가는 걸……. 그런 내 앞에서 누가 자기 사연을 툭 털어 놓는 거야. 미치게 떳떳한 거야. 사람들이 자길 어떻게 생각하는지 크게 신경 안 쓰는 거처럼 보이는 거야. 내 쪽에서는 어떻게 저러나 싶은 거지. 어떻게 그런 일을 겪고도 자기 자신을 안 부끄러워하는지 신기한 거지. 그러다가……. 저 사람이라면……. 내 인생도 나도 그렇게 봐줄 거 같아서……. 내 과거를 1초 단위로 샅샅이 뒤져보고 와서도 나한테 웃어 주고 내 손도 잡아 줄 거 같아서……. 그래서였던 거 같다. 사연 있는 사람 좋다고 한 거.”

   “이걸 잠깐 사이에 생각한 거야?”

   “응?”

   “이런 엄청난 깨달음이 이렇게 빨리 와?”

   “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떡해.”

   “니 깨달음이잖아!”

   “나한테 그냥 온 거지 내가 지어낸 깨달음은 아니잖아.”

   “도인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이제 궁금증 풀렸어?”

   “응. 니 대답 기다리느라고 눈 빠지는 줄 알았다.”

   “기다리는 건 귀가 하는데 눈이 왜 빠지냐?”

   “내가 그렇다면 좀 그런 줄 알아.”

   너는 내가 앉아 있는 의자 팔걸이를 툭 때리며 나를 가볍게 을러댄다. 네 핸드폰 액정이 켜지고 메시지 팝업 창이 하나 뜬다. 너는 다시 핸드폰 액정에 주의를 기울인다. 나는 의자를 뒤로 조금 물리고 주변 테이블을 둘러보았다.

   연인 한 쌍은 수북한 접시 더미를 사이에 놓고 한껏 화기애애한 표정이다. 가족 한 무리는 말없이 식사만 하고 있다. 하얀 셔츠 입은 종업원이 스테인리스 물병을 들고 내 앞을 가로질러 간다. 여기 있는 이 모든 사람들에게도 나름의 사연이 있고 나름의 수치심이 있고 그 사연과 수치심 다 보듬어 줄 한 사람이 있겠지.

   사랑은 참 많은 일을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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