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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Nov 01. 2016

그런 말해 줄 사람

한 명쯤은 내게


   기다려 보자고, 같이…….

   형은 늘 그렇게 말했다. 잔걱정도 많고 겁도 잘 먹고 시도 때도 없이 불안해지는 내게. “그렇게 쩔쩔맨다고 뭐가 달라지냐?”고 형은 나를 다그치지 않았다. 형은 항상 그렇게만 말했다. 기다려 보자고. 같이 기다려 보자고. 

   나는 마음이 흐트러질 때마다 형에게 달려가 그 말을 들었다. 초등학교 때는 형네 반 뒷문에 자주 서 있었다. 모르는 게 생기거나 화나는 일 생기면 쉬는 시간마다 형네 반으로 갔다.

   누나네 반으로는 가지 않았다. 누나네 반으로 찾아가 본 적은 없지만……. 왠지 누나한테 찾아가면 혼날 것 같았다. 쫓겨날 것 같았다. 형보다 누나가 두 살이나 더 많은데 누나는 별로 의지되지 않았다. 성별이 달라서가 아니라 성격이 달라서였다. 누나 성격이 불같다면 형 성격은 물 같았다. 마음에 불이 붙은 채로 찾아가기에 누나는 너무 뜨겁고 거칠었다. 누나를 대하고 있으면 내 마음속 불이 더 커질 뿐이었다. 누나가 제일 자주 하는 말은 “아, 뭘 그런 거 갖고 그래!”와 “됐어, 그만해!”였다. 누나가 그런 말을 하면 (내게 하는 말이 아닐 때도) 아랫배가 아파 왔다.

   누나 성격은 아빠와 잘 맞았다. 우유부단한 아빠는 고민거리가 생길 때마다 누나에게 갔다. 누나는 마치 아빠의 누나이기도 한 것처럼 아빠에게 대담히 조언했다. 누나가 초등학생일 때부터 아빠는 누나에게 의지했다. 아빠는 선택이 어려웠고 누나는 선택을 망설이지 않는 사람이었으므로. 나는 선택이 아니라 안정을 취하고 싶었기에 누나보다는 형을 찾았다. 형은 나에게 선택을 요구하지 않았다. 내가 처한 일에 대한 옳고 그름을 구분하지도 않았다. 형은 그냥 나를 바라보았고 내 옆에 서 주었다.

   형은 내 형이 되어 주기 위해 이 세상에 온 사람 같았다. 유치원에 다닐 때나 초등학교에 다닐 때나 형은 늘 형다웠다. 

   나와 형과 누나가 함께 다닌 초등학교에서 나는 꽤 유명했다. 형네 반 사람들 대부분이 나를 알았다. 하도 자주 찾아가서 모를 수가 없었다. 형 친구들 중 하나가 형에게 “명택이! 니 동생 왔다!”고 말하면 형은 반사적으로 뒷문 쪽을 돌아보았다. 나는 축 처진 눈으로 형을 물끄러미 건너다보았다. 형은 동생의 방문을 창피해 않고 항상 내게 뛰어왔다. 내 양 어깨에 손을 얹고 나를 내려다보며 “무슨 일 있었어?” 물었다. 내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자초지종을 털어놓으면 형은 심각한 얼굴로 내 말을 귀담아 들었다. 그리곤 “그럼 일단 기다려 보자, 같이. 형도 생각해 볼게.” 하고 나를 달랬다. 나는 약국에서 약 사다 먹듯 형의 말을 받아먹었다. 그러고 나면 마음이 한결 놓였다.

   사람에겐 누구나 그런 말해 줄 사람이 존재하는 줄 알았다. 세상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형 같은 사람이 하나쯤 곁에 있는 줄 알았다. 평생.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형은……. 병원으로 이사를 갔다. 학교 갔다 돌아와 보니 형 방에 있던 짐이 거의 다 사라져 있었다. 거실로 나와 엄마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잠긴 목소리로 엄마가 전화를 받았다. 형은 병원에 있단다. 엄마도 병원에 같이 있단다. 형은 당분간 병원에서 살 거란다. 나는 왜 내게 미리 말하지 않았느냐고 엄마를 책망했다. 엄마는 “니 형이 엄마랑 아빠만 알고 있으라 그래서……. 엄마랑 아빠도 안 지 얼마 안 됐어.” 하고 말했다. 엄마는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사과할 것 같은 목소리였다. 미안하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나는 엄마에게 언제 집에 오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형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물을 수 없었다.

   형이 아프냐고 물을 수 없었다. 형이 아프냐고 물으면 형이 나를 떠나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느낌이 막연히 들었다. 막연한 주제에 살 떨리게 하는 느낌이었다.

   그 날 누나는 울면서 집에 돌아왔다. 누나는 먼 곳에서부터 울며 온 모양이었다. 누나 얼굴이 엉망이었다. 이마고 뺨이고 온통 빨갰다. 귀 빼고는 다 부어 있었다. 그때 누나는 스무 살이었다. 누나는 주방 냉장고 앞에 서 있던 나를 덥석 끌어안았다. 그때 기억으로는 누나에게 처음 안겨 보는 것이었다. “명택이! 명택이…….” 하면서 누나는 계속 울었다. 나는 누나가 제발 아무 말 않길 바랐다. 하지만 누나는 그 자리에서 모든 걸 말해 버렸다.

   형은 많이 아팠다.

   누나는 형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누나가 그 말을 하자마자 나는 누나 몸을 밀쳤다. 내 손에 쥐여 있던 우유팩이 주방 바닥에 떨어지며 우유가 콸콸 쏟아져 나왔다. 나는 누나에게 욕을 퍼부었다. 누나는 울다 말고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나는 잘 들이쉬어지지도 않고 내쉬어지지도 않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냉장고 문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싱크대에서 행주 짜는 소리가 들렸다. 누나가 코 훌쩍거리는 소리도 간간이 들렸다.

   나는 밤새도록 울었다. 발바닥에서 우유 썩는 냄새가 났다.

   다음 날 거실로 나가 보니 우유팩도 주방 바닥도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누나는 그 날 밤 내 방에 들어와 내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누나가 그런 말을 했다. 누나가.

   그때부터 우리 가족은……. 서로에게 자꾸만 미안하다고 했다. 

   형은 스무 살이 되어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형이 내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도 “미안하다.”였다.

   “명훈아, 미안하다.”

   형이 죽고 나서 나는 끝없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내가 형의 삶을 다 빼앗아 버린 것 같아서였다. 나 때문에 형이 자기 나이를 못 살고 어른의 나이를 살아 버려서……. 나 때문에 형 영혼이 너무 빨리 나이를 먹어 버려서……. 형이 그렇게 된 것 같았다.

   가까운 사람을 잃었을 때 가장 고통스러운 건 상실감이 아니라 죄책감이었다. 아무 근거도 없이 그 상실의 모든 원인이 내게 있다고 믿게 되기 때문이었다.     


   형 없이 스무 살이 되었다. 형이 살아 보지 못한 나이를 살게 되었다.

   나는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누구에게도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는 어른이 되었다. 누가 내게 미안하다고 하면 다신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이 너를 떠나겠다는 말과 똑같이 들렸기 때문이다. 그 말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사실 참을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나는 걸핏하면 속이 펑 터져 버리는 것 같았다. 어느 날은 TV를 보는데 자전거 타며 웃고 있는 사람들 모습 때문에 화가 났다. 누군가의 즐거움과 행복이 내겐 분노였다. 나는 내가 미쳐 가고 있음을 알았다.

   어느 순간부터는 형도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사랑하고 따랐던 형인데……. 하지만 언제나 가장 원망스러운 건 나 자신이었다.     


   나는 점점 말수를 잃어 갔다. 표정도 없어지고 활동량도 줄어들었다.

   대학교 3학년 때였다. 편입생이 들어왔다. 편입생 이름은 신윤희였다. 나하고 나이가 같았다. 신윤희의 이름을 금세 기억할 수 있었던 건 신윤희가 내게 자기 이름을 네 번이나 소개했기 때문이었다. 신윤희가 네 번째로 이름을 말해 줄 때 내가 말했다. “안다고, 니 이름.” 그랬더니 신윤희가 “난 또. 모르는 줄 알았지.” 하고 웃었다. 나는 신윤희가 싫었다. 잘 웃어서 싫었고 아무 걱정 없어 보여 싫었다.

   신윤희는 강의 들을 때마다 내 옆자리에 앉았다. (우리 과는 모든 학년이 같은 스케줄로 강의를 듣게 돼 있다. 고등학교처럼 시간표가 짜여서 나온다) 동기들은 그런 신윤희를 보고 ‘메딕medic’이라 불렀다. 메딕은 게임 속 캐릭터다. 영어로 위생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다친 캐릭터를 고쳐 주는 캐릭터가 메딕이다. 동기들은 병자 행색으로 돌아다니는 내 옆에 메딕이 붙었다고 조롱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나는 신윤희에게 적응되기 시작했다. 신윤희가 아침에 지각하면 교수 말에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짜증이 났다.

   신윤희는 나 같은 사람을 많이 만나 본 건지……. 아니면 원래 사람 대하는 데 훌륭한 재주를 가진 건지……. 나더러 “너한테 절대 하면 안 되는 말이 뭔데?” 하고 물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좀 뜨끔했다. 마음에 안 드는 사람 생기면 그 사람한테 ‘미안하다.’는 말을 유도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미안하단 말을 듣고 나면 그 사람을 내 밖으로 밀어낼 명분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나는 신윤희에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신윤희는 내게 미안하단 말을 하지 않았다.

   신윤희가 내 코트에 커피를 쏟게 했더니 신윤희는 “어떡하지……. 여기 소매 젖었는데……. 세탁해서 줄까? 추운데 벗어 줘도 되겠어?” 하고 물었다. 신윤희가 내 책을 떨어뜨리게 했더니 신윤희는 말없이 그것들을 주워다 주었다. 신윤희가 내게 미안해하지 않으니 그건 또 그거 나름대로 못마땅했다. 어느 순간부터 신윤희를 시험하고 있는 내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신윤희가 싫었다. 너무 싫었다. 신윤희가 자꾸 형의 모습으로 내게 와서 죽도록 싫었다. 신윤희 눈빛이 물처럼 잔잔해서 싫었다. 흔들리지 않는 신윤희 말투가 싫었다. 내 표정을 보고 내 마음을 헤아리려 하는 신윤희가 싫었다.

   그런데도 나는 자꾸 학교에 갔다. 신윤희가 내 옆에 앉도록 내버려두었다. 싫으면 안 만나면 될 텐데. 멀리 하면 될 텐데.

   내 마음이 간사해서 나는 신윤희를 자꾸 만났다.    


   신윤희는 그렇게 내 옆에 있으면서 내가 허락하지 않는 선 너머로는 절대 들어오지 않았다. 난감했다. 이 적당한 거리감이 편안해서.

   신윤희는 나를 걱정하지 않았다.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내게 필요 이상의 친절을 베풀지도 않았다. 나를 향한 연민의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신윤희는 그냥 거기 있었다. 내가 보이는 곳에 있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나를 당장이라도 말려 죽일 것 같던 분노는……. 신윤희에 대한 혼란스러움과 신윤희에 대한 난처한 심정과 신윤희에 대한 궁금증과 신윤희에 대한……. 신윤희에 대한……. 신윤희에 대한 것들로 변환되기 시작했다.

   나는 형이 필요했던 걸까. 아니면 그냥 이렇게 옆에 머물러 줄 사람이 필요했던 걸까. 형의 존재보다 신윤희 존재가 커질까 봐 나는 무섭다. 형을 배신하는 것 같아 마음이 어둡다. ‘긴 세월 형을 애도했으니 이제 마음 좀 편하게 먹어도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문득 들면 그 마음이 너무 낯설고 놀라워 오금이 저린다.

   내 마음이 간사한 건지 아니면……. 내 마음이 단지 춥고 외롭고 쓸쓸했던 건지……. 분간할 수 없어 아득하기만 하다.



책 안내 : www.parkdabin.modoo.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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