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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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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Sep 29. 2016

당신의 시골집


   흙길 왼편으로 진한 초록의 논이 펼쳐져 있다. 바람 한 줄기 불어 갈 때마다 벼들이 뒤로 누웠다가 옆으로 기울어졌다가 한다. 벼들이 바람에 쓸릴 때면 ‘사아아’ 하는 소리가 난다. 사방이 워낙 조용해 그 소릴 들을 수 있다.

   오후 볕이 논 위로 뿌옇게 내려앉아 있다. 과연 8월다운 날씨다. 시선 두는 온 곳에서 열기와 환한 빛을 느낄 수 있다. 간간이 바람이 불어 더위가 지독하진 않다. 탁 트인 풍경이 개운해 더위가 덜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곳은 논 아니면 1층짜리 주택 아니면 흙길이 전부다. 주택의 절반 정도는 기와집이다. 가늠할 수 없는 옛 시절에 지어진 듯 보이는 기와집들……. 이 동네 시간은 언제부터 멈춰 있었던 걸까.

   시간이 사라진 것 같은 이 공간이 내게 편안함을 준다.

   나는 우리나라 수도에 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도시다운 동네에 살고 있다. 도시가 가진 아름다움은 ‘빠르기’다. 도시에선 모든 게 빠르다. 자동차도 빠르고 일 처리도 빠르고 사람들 말도 빠르고 식사 시간도 빠르다. 도시의 빠른 흐름은 기술과 문화를 발달시킨다. 도시가 빨리 돌아가기에 다달이 새로운 핸드폰과 노트북이 몇 개씩 출시될 수 있다. 새로 찍은 영화들이 우수수 개봉되고 신인 작가의 책들이 무명의 세월을 찢고 나온다. 수천 명의 목소리 담긴 음반들이 고층 빌딩 대형 매장에 진열된다. 그렇게 유행이 만들어지고 사람들은 짬을 내 열광하고 생활에 활기가 반짝 돈다. 

   도시의 빠른 흐름을 위해 도시 사람들은 항상 시간을 생각해야 한다. 출근 시간과 회의 시간과 약속 시간과 마감 시간과 지하철 시간과…….

   그런데 이곳엔 시간이 없다. 모든 게 그 자리에 멈춰져 있다. 햇볕 쐬러 나와 계신 할머니들은 두꺼운 폴더 핸드폰을 목에 걸고 계신다. 아까 지나온 작은 슈퍼엔 10년도 더 돼 보이는 TV가 켜져 있었다. 슈퍼 유리문엔 20년 전 영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논두렁 옆에 세워진 자전거 바구니엔 빨간색 라디오가 담겨 있었다. 그 라디오 속엔 낡은 카세트테이프가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알 수 없는 오래된 노래가 울려 퍼졌다. 

   이곳 사람들은 시간을 별로 생각하지 않는 듯 보인다. 시간을 별로 생각하지 않으니 유행에도 관심 없어 보인다. 유행에 관심 없으니 뭔가를 금방 잊지도 않는 듯 보인다. 뭔가를 금방 잊지 않으니 뭔가를 쉽게 버릴 일도 없겠지. 

   참 예쁘다.    


   땀에 젖어 살갗에 달라붙은 티셔츠를 떼어냈다. 코에서 고소한 모래 냄새가 맡아진다. 핸드폰 액정 속 길 찾기 어플에 따르면 나는 곧 목적지에 다다를 거다.

   털이 희고 덩치 큰 개 한 마리가 저 앞에 걸어가고 있다. 녀석은 나를 힐끔 돌아봤다가 털레털레 걸어가길 반복한다. 녀석이 축 늘어뜨리고 있는 분홍색 혀 속에도 여름이 스며들어 있다. 

   흙길 끝에서 모퉁이를 돌았다. 지어 올린 지 얼마 안 돼 보이는 황토 담장이 보인다. 까만 대문은 활짝 열려 있다. 뚫린 대문 자리 너머로 리모델링된 기와집이 보인다. 저기구나. 당신 살고 있는 집이.    


   “계세요?”

   담장 안쪽으로 들어서며 내가 외쳤다. 마당엔 아무도 없었다. 흙길과 연결된 흙마당 한편엔 장독대 4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현관문이 열렸다. 헐렁한 바지와 까만색 티셔츠 차림의 당신이 나타났다.

   “어!”

   당신이 나를 보고 놀란 듯 소리쳤다. 당신 눈길이 내게 한참 머물러 있었다. 내가 여길 올 거라고 생각 못한 모양이었다.

   “나 여기 계속 세워 둘 거예요?”

   내가 묻자 당신이 눈을 끔벅거렸다.

   “어, 아니……. 들어와요. 더웠죠?”

   당신이 현관문을 활짝 열어 주며 말했다. 나는 빙긋 웃으며 계단을 올라 현관으로 들어갔다. 현관부터 달콤한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냄새예요?”

   당신을 돌아보며 물었다. 당신은 신발장에서 내 신발을 가지런히 정돈하고 있었다.

   “잼. 율아 씨, 내가 보내 준 잼 먹었어요?”

   거실로 들어서며 당신이 물었다. 주방 쪽으로 걸어 들어가며 내가 “당연하죠.” 하고 대답했다. 

   달콤한 냄새의 정체는 복숭아였다. 복숭아가 제철인가? 복숭아 껍질이 주방 바닥과 식탁과 싱크대 모두 점령하고 있었다. 다져진 복숭아는 냄비 속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잼 속의 기포가 터질 때마다 기분 좋은 소리가 났다. 

   “튀면 데여요. 이거 엄청 뜨거워요. 가스레인지 가까이 오지는 말구요.”

   당신이 나를 조심 시키며 가스레인지 앞에 섰다. 당신은 싱크대 옆에 놓여 있던 나무주걱을 집어 들었다. 그걸로 냄비 속 잼을 젓기 시작했다. 내가 오기 전까지 이러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깨에 걸려 있던 가방을 내려놓고 당신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당신이 나를 맞바라보았다. 

   “20분만 기다려 줄래요?”

   당신이 내게 청했다. 내가 고갤 끄덕거렸다.

   “어디 가지 말고 여기 있으면서 기다리면 안 돼요?”

   당신이 다시 내게 청했다. 내가 싱글거리며 알겠다고 하자 당신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올 줄 몰랐어요.”

   내 앞에 찻잔을 놓아 주며 당신이 말했다. 국화차였다. 투명한 찻물 속으로 노란 국화 꽃물이 퍼졌다. 당신을 올려다보았다. 놀람이 아직 가시지 않은 눈빛으로 당신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20분만 기다려 달라던 당신은 10분도 안 돼 가스레인지 불을 껐다. 완성되지 못한 복숭아 잼이 주방에서 식어 가고 있었다.

   “당연히 몰라야죠. 이 표정 보려고 몰래 왔는데.”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내가 말했다. 당신이 내 옆으로 와 앉았다. 

   “생각보다 훨씬 좋아요.”

   내가 혼잣말하듯 말했다.

   “뭐가요?”

   당신이 허릴 쭉 펴며 물어 왔다.

   “이 집이요. 이 집도 좋은데……. 이 집 안에 있는 두영 씨가 좋아요.”

   “그게 무슨 말이지?”

   당신이 말끝에 입술을 깨물었다. 갸웃대는 당신 고갯짓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안 본 새 머릴 자른 것 같다. 밤톨 같아진 당신 짧은 머리카락이 오후 볕 속에 빨갛게 빛났다. 갈색인 당신 머리카락은 햇살을 받을 때마다 빨갛게 빛난다.

   “걱정했어요. 사실 많이 걱정했어요. 두영 씨가 일 다 그만두고 시골 내려간다 했을 때.”

   “결정 내리기 전부터 율아 씨한테 말하고 율아 씨한테 제일 자세히 말했는데……. 그래도 걱정 됐어요?”

   “걱정이 어떻게 안 돼요. 아무리 이 계획을 오래 했다고 해도……. 두영 씨 시골 간단 그 말 전해 듣는 나는 너무 갑작스럽고……. 혹시 무슨 일 생겨서 그런 건 아닌가 하고…….”

   “지금 내 얼굴 봐요. 이게 무슨 일 생겨서 곯아빠진 얼굴인가.”

   당신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래두요. 그냥 지켜보는 내 맘이 그랬다구요. 근데 내가 티내서 걱정하면 두영 씨 마음 무거울까 봐……. 응원만 했죠. 잘된 일이라고……. 이사 가는 거 안 도와줘도 된다길래 그것도 두영 씨 뜻 따라 주고…….”

   “진짜 짐이 별로 없었어요. 보면 알겠지만.”

   “알아요. 두영 씨 택배 받은 그 날 알았어요. 두영 씨가 괴로워서 여기 온 게 아니라는 거……. 괴로워서 여기 왔다 해도 괴로움은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라는 거……. 두영 씨가 새로운 집에서 괜찮게 지내고 있단 증거를 택배 상자 속에서 발견했어요. 상자를 열었는데……. 그 안에 포장된 과일 잼이랑 찻잎들이……. 따뜻하고 평온했어요. 과일 깎아서 그걸 썰고 냄비에 담아 졸이고……. 찻잎 뜯어다 말리고 덖고……. 그런 단순한 일들……. 단순한 일일수록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잖아요. 그래서 걱정을 조금씩 내려놓기 시작했어요. 두영 씨가 괜찮다고 하면 진짜 괜찮은 거라고 믿자, 하고…….”

   내 말이 끝나자 당신이 벌떡 일어섰다. 당신은 침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금세 거실로 돌아온 당신이 내게 건넨 건 당신 이름표였다. 당신이 동사무소에서 일하던 당시 사용했던 이름표……. 손바닥 위에 당신 이름표 올려놓고 당신을 바라보았다. 당신이 다시 뒤돌아 침실로 사라졌다. 이번에 당신이 가지고 온 건 명함이었다. 명함 속에 ‘도자기 공방’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밑에 당신 이름이 적혀 있었다. 

   “도자기 공방?”

   의아한 얼굴로 내가 물었다.

   “네. 도자기 공방. 율아 씨 줄 선물 있다고 했잖아요. 그게 이거예요. 이리 와 봐요.”

   당신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내 손을 잡아끌었다. 나는 당신 이름표와 명함을 쥐고 당신을 따라갔다. 

   현관 밖으로 나온 당신이 뒷마당 쪽으로 걸었다. 당신은 여전히 내 손목을 쥐고 있었다. 뒷마당에 커다란 가마가 있었다. 당신 집 담장과 똑같은 색깔의 가마였다. 황토 가마. 가마 옆엔 장작이 가득 쌓여 있었다.

   “도자기 공방…….”

   내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율아 씨 도자기 공방 가 보고 싶다고 했잖아요. 나중에 나이 들면 접시나 찻잔 만들면서 살 거라고……. 여기 봐요. 뒷마당 되게 넓죠? 이 땅 내버려두면 뭐하겠어요. 생각나는 게 가마밖에 없었어요. 도자기 구울 가마……. 담장 만들 때 쓰고 남은 황토로 가마 만들었어요. 그러면서 옆 동네 도자기 공방 다녔어요. 가마 쓰는 법도 배우고 그릇 빚고 굽는 것도 배우고……. 나 아직 전문가 아니에요. 그래서 공방 열어 놓고 율아 씨랑 같이 이것저것 만들어 보려고……. 어때요? 아직 너무 허술한가?”

   당신이 코밑을 긁적거리며 말했다. 나는 손 안에 쥐고 있던 당신 이름표와 명함을 내려다보았다. 당신 시선도 이름표와 명함에 닿았다.

   “나요……. 동사무소에서 하던 일 싫어하지 않았어요. 살던 곳이 지겨웠던 것도 아니에요. 그냥 궁금했어요. 어느 날부터 되게 많이 궁금했어요. 내가 지금 갖고 있는 것들을 다 내려놓으면 어떻게 될까. 익숙한 일상에서 내가 완전히 떠나 버리면 어떻게 될까. 이 궁금증이 희한한 게……. 이걸 궁금해 할수록 내가 신이 나는 거예요. 그렇게 한번 저질러 보고 싶은 거예요. 지금까지 무사히 흘러 온 일상한테는 고맙지만……. 이제 다른 일상도 살아 보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하나씩 준비했어요. 새로운 집 알아보고 일 그만두고 거기서 하던 다른 것들도 차례로 처분하고……. 안 해 본 일들 차근차근 시도해 보면서 이사 준비도 하고……. 그러는 동안 잼 만드는 거 배우고 빵 굽는 거 배우고 찻잎 만드는 거 배우고 도자기 만드는 거 배웠어요. 율아 씨. 율아 씨 많이 걱정하게 만들어서 미안해요. 근데 나도 걱정했어요. 내가 일상을 정리한다고 하는 게 율아 씨를 떠나겠단 말처럼 들릴까 봐. 그래서 율아 씨한테 내 속마음 말 못했어요. 그냥 일 그만두고 시골 내려간다고만 말하고. 집이 얼마나 지어졌다고 사진이나 찍어 보내고……. 내가 일상을 바꾼단 말은 되풀이돼 온 순간을 벗어난다는 의미예요. 내가 갖고 있던 것들을 다 내려놓는다는 건 오래된 습관을 깬다는 의미예요. 그래서 이것들하고 율아 씨는 아무 관련이 없어요. 근데 내가 이렇게 말해도 율아 씨가 혹시 불안해할까 봐……. 이사 끝나고 가마 다 만들어질 때까지 기다렸어요. 내가 여기서 완전히 자리를 다 잡으면……. 그러고 나서 율아 씨한테 내 새로운 일상을 보여 주면……. 율아 씨가 안 불안해질 거잖아요. 내가 율아 씨 떠나서 어디로 가려는 게 아니라 율아 씨랑 같이 여기로 옮겨 오려는 거란 내 말 율아 씨가 믿을 수 있잖아요. 가마는 이틀 전에 다 만들었어요. 주방에서 만들고 있던 복숭아 잼, 율아 씨 거예요. 아까 율아 씨 마신 국화차도 율아 씨 거예요. 율아 씨 초대하려고 했어요. 그리고 말하려고 했어요. 내가 왜 여기까지 오려고 했는지…….”

   말을 맺은 당신이 내 눈을 응시했다. 긴 말을 토해낸 당신은 차분히 숨을 골랐다. 아까 맡은 복숭아 잼 향기와 국화차 향기가 코끝에서 되살아났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맑은 바람 몇 줄기가 불어 갔다. 황토 가마 앞으로 걸어갔다. 가마 벽에 손바닥을 대 보았다. 차갑고 약간 거칠었다. 등 뒤에 서 있던 당신도 가마 쪽으로 걸어왔다. 가마 벽에 당신 손바닥이 닿았다.

   “여기 이름 새겨도 돼요. 선물 마음에 들어요?”

   당신이 아이처럼 웃으며 물었다. 가마에서 뗀 손바닥으로 당신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당신 머리카락에 배어 있던 햇살이 손끝에 묻어나는 것 같았다. 환하고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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