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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Jan 12. 2017

그렇게 서로의 귀한 숨결이 되자

원하는 것은 다만 그뿐



   저는 상쾌한 공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한겨울이 아닌 이상, 집에 있는 대부분의 창문들은 언제나 활짝 열어 놓습니다. 한겨울에도 아침마다 최소 5분 이상은 온 집을 환기하구요. 

   추위가 아무리 지독해도 제 집에 ‘완전히 닫힌’ 창문은 없습니다. 추운 날씨 때문에 창문을 닫더라도 좁은 틈새를 얼마간 남겨둔 채로 닫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제가 살고 있는 이 집은 여간해선 밀폐되는 일이 없습니다. 거센 바람 때문에 창문이 깨져 버릴지도 모르니 문단속 철저히 하라는 태풍 경보 같은 게 뜨지 않는 한, 집이 밀폐되는 경우가 거의 없는 까닭입니다. 

   신선한 공기를 공급 받는 일은 신선한 음식을 챙겨 먹는 일만큼이나 제게 중요합니다. (아침 공기가 지닌 냄새 자체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일상 공간에 고인 묵은 공기를 새 공기로 바꿔 개운한 하루를 보내는 일은 제 컨디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바꿔 말하자면, 공기의 질이 나쁜 곳에 있을 때 제 컨디션은 급속도로 저하됩니다. 

   환기換氣 시설이 잘 갖춰지지 못한 곳에 있을 때 저는 숨 쉬는 게 어렵다는 ‘의식적인’ 느낌을 받습니다. 한번 시작된 그 의식은 자꾸만 커져서, 어느 순간부터는 호흡에 신경 쏟느라 일에 제대로 집중을 못하게 돼요. 그리고 그 느낌이 오래되다 보면 저는 약간 고통스러울 정도의 갑갑함에 시달립니다. 그때부터는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거의 지배해 버립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밀폐된 공간에 있으면 얼굴이 금세 벌게지는데다가 별로 한 것도 없이 피곤해져 버려요. 그래서 하던 일을 매끄럽게 마무리하는 데 지장을 받습니다. 그 일을 하는 도중에도 어느 정도의 지장을 받지만요.

   그래서 ‘바람을 쐰다.’라는 건 제 취미이기도 하지만 제게는 일종의 건강 증진 행위이기도 합니다. 식사를 제때 하거나 갈증을 제때 채우는 것처럼, 공기를 제때 마셔 줘야 제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남들보다 산소 농도에 민감한 모양입니다.    





   평상시 생활하는 동안 제가 주의를 기울이는 공기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저는 바깥 공기에도 각별한 신경을 쏟지만, 사람의 공기에도 각별한 신경을 쏟습니다. 

   네, 사람의 공기요. 저는 사람에게도 그 사람만의 공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의 기류氣流라고 할까요. 집집마다 독특한 집 냄새가 있듯,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고유한 기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류의 맑고 탁함 정도 또한 모두 제각각인데요. 저는 누군가의 기류가 얼마나 맑은지, 탁한지, 하는 것에도 커다란 영향을 받습니다. 

   사람이 가진 기류의 맑고 탁함 정도는 ‘그 사람이 자기 태도를 원활하게 순환시킬 수 있는가?’의 문제로 결정된다고 여깁니다. ‘그 사람 마음의 문이 충분히 열려 있거나, 마음의 환풍기換風機가 제대로 돌아가서, 다른 이들의 태도를 잘 받아들일 수 있는가?’의 문제로요.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다른 사람들 의견을 무조건 다 받아들여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 그럴 수도 없겠지만, 만일 그렇게 된다면 각자가 가진 특유의 기류가 모두 희석돼 버리고 말겠죠. 우리가 가진 특별한 개성들이 다 사라져 버릴 거구요. 우리라는 사람을 구석구석 빛나게 해 주던 매력들도 모조리 흩어져 버릴 것입니다. 

   그 결과, 세상에는 ‘한 세월 아침저녁으로 진득이 붙어 있고 싶은 사람’ 같은 게 없어져 버릴지도 모릅니다. ‘마음이 끌리다 못해 난감할 정도로 자주 생각나는 사람’ 같은 게 없어져 버릴지도 모릅니다. ‘불이 나지도 않았는데 가슴 안쪽을 우그러지게 만들고, 어디 맞은 것도 아닌데 등허리를 휘청거리게 만들고, 전기가 누출된 전선을 쥔 것도 아닌데 온몸이 쩌릿해지도록 만들어 이상한데, 너무 이상한데, 쉽사리 떨쳐지지가 않고, 어쩐지 떨치고 싶지도 않아서 더더욱 이상한 사람’ 같은 게 없어져 버릴지도 모릅니다. ‘이건 아니야, 이건 안 돼, 라고 골백번 말하지만 몸도 마음도 자꾸만 쏠려 버려서, 한없이 기묘한 중력의 세계를 살게 하는 사람’ 같은 게 없어져 버릴지도 모릅니다. 

   ‘그 사람다운 무엇’이 없는 사람들의 세상은 그토록 밋밋하고 비릴지 모릅니다.





   그러니 제가 원하는 것은 우리가 가진 기류의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적당한 교류입니다. “저는 해질녘 노을을 좋아하는데, 그게 얼마나 아름다운데, 어째서 당신은 정오의 뜨거운 볕이 더 좋다고 말씀하십니까? 거 참 이해할 수가 없군요.”의 터질 듯한 답답함이 아니라, “저는 해질녘 노을을 좋아하는데, 당신은 정오의 뜨거운 볕을 더 좋아하시는군요. 정오의 볕이라니, 저는 미처 알지 못했던 종류의 아름다움입니다. 언제 한 번 그 풍경을 나란히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군요. 그래서 저도 그 아름다움에 조금쯤 눈뜰 수 있었으면 좋겠군요.”의 넉넉함을 원합니다. 타인의 주장을 인정하는 것이 자신의 주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님을 (세상의 진실은 모두의 주장을 골고루 포용하고 있음을) 아는 폭넓음을 원합니다. 제가 당신과 반대여서 묻는 “왜?”가 아니라, 당신의 더 깊은 사연을 듣기 위해 묻는 “왜?”를 원합니다. 서로를 애써 이해해 보려 노력하는 시간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이 마음껏 뛰놀 수 있도록 머리와 가슴을 탁 풀어헤쳐 버리는 시간을 원합니다. ‘이해’보다 중요한 ‘함께’를 날마다 성실히 실천하는, 소탈하고도 굳건한 마음을 원합니다. 

   사랑하는 사람 앞일수록 걷잡을 수 없는 불안에 겨워 마음의 문을 비좁게 만들어 버리는 저지만……. 그래서 사랑하는 그 누군가에게 편안한 기류를 제공하지 못하는 저지만……. 가끔은 사랑하는 이들의 숨통을 조여 버리기도 하는 저지만……. 저는 여전히 원합니다. 우리가 가진 기류들이 알맞게 교류되기를. 비록 제가 그 알맞은 수준의 교류에 너무 어설프다 해도, 감히 저는 간절하게, 아주 간절하게 원합니다. 

   부디 저라는 사람이 단 한 사람에게만큼은, 사랑하는 단 한 사람에게만큼은, 먼지 자욱한 이 세상 속 한 줄기 맑은 숨결이 돼 줄 수 있기를. 간절하게, 아주 간절하게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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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


몇 페이지의 책을 읽고 5분 간 산뜻한 마음이 되는 것. 가장 가까운 사람을 향한 잔소리 몇 마디 꾹 참아 보는 것. 카페에 들어가 취향이 아닌 차 한 잔을 시켜 보는 것. 그런 것들. 대단한 경험은 아니지만 내 생활 귀퉁이를 새롭게 적시는 경험들. 더 잘 살기로 마음먹고 실천하기가 힘든 나날엔, 이런 작은 변화만으로 충분한 거 아닐까.

-소설집『살아 있다는 그 자체가 실력이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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