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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Jan 10. 2017

오늘을 사는 사람을 만나
경험한 변화들

사소한 일상을 기적으로 볼 줄 아는 안목을 기르며



   내 주변에는 한 가지 일에 오래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몇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일’이란, 취미나 소일거리가 아닌 ‘직업’을 의미합니다. 당신도 나도 각자 자기 일하느라 여러 해를 보냈으니, 우리도 이런 사람들에 포함되겠군요.

   어떤 일을 시작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일에 상당히 서투릅니다.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나 처음부터 그 일에 능숙한 사람도 있지만요. 대체적인 사람들은 초보적인 수준에서 각자의 일을 익혀 나갑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자신의 일을 하는 처음 몇 년 간 꽤 어려운 시기를 경험합니다. 아직 일이 손에 붙지 않아 실수도 많이 하고, 그렇게 어설픈 그들을 바라보던 주변 사람들이 그들의 일을 비관하고 드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외에도, 말로는 다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힘겨운 순간이 빗발칩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때부터는 포기에 대한 유혹이 거의 하루마다 찾아옵니다. ‘내가 뭐하러 이 고생을 사서 하나.’ 싶기도 하고, 그 일에서 실력자가 되긴 어려울 거란 비극적 상상이 자꾸만 몸을 불립니다. 실제로 가장 많은 이들이 자기 일에서 손을 떼고 마는 게 바로 이 시점이라는군요. 모든 일의 초창기. 그 일을 시작하고 3년에서 5년까지의 시간…….

   그런데 그 고달픈 시절을 꿋꿋이 헤쳐 나가다 보면, 어느덧 실력이 눈에 띄게 향상되는 구간을 만납니다. 전문가까지는 아니더라도 보통 이상의 수준으로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스스로를 그들은 놀라운 눈으로 발견하게 됩니다. 그때쯤 되면 주변에서도 그들을 제법 쓸 만한 인재로 간주하기 시작합니다. 더러는 그들에게 찬사를 보내오거나 그 일에 관련된 부탁을 해 오기도 합니다. 몇몇은 그 일을 하며 별 탈 없이 밥벌이를 시작하게도 됩니다. 





   최근에 당신은 이 구간에 도달한 듯 보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일에서 상당히 유능해졌고, 당신의 그 탁월함은 안팎으로 많이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이 일궈낸 모든 것들에 너무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가슴 벅찬 감사를 한시도 잊지 못하는 듯 보입니다.

   자기 일에서 끝내 빛을 보고 만(다시 말해,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둬낸) 사람들 모두가 그렇게 깊은 감사를 느끼는 건 아니기에, 나는 요즘의 당신을 감탄스럽거나 감동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곤 합니다.    

   노력 끝에 어떤 결실을 얻게 된 사람은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뉘는 것 같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결실을 매번 기적처럼 여기는 부류’와 ‘자신에게 주어질 더 근사한 결실이 아직 오지 않았다고 초조해 하는 부류’로…….

   당신은 의심의 여지없이 전자의 부류입니다. 그리고 나는 후자의 부류에 가까운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런 것 같구요.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나는 그 일을 하는 그 자체만으로 행복해질 줄 아는 깨끗한 마음으로 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 일에서 최대한 두각頭角을 나타내려 했고, 그것을 통해 세상의 박수나 환호를 받고 싶어 했습니다. 나는 내 일이 언제나 더 많은, 보다 더 많은 결과물을 내게 안겨 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결코 채워지지 않는 장독처럼 언제나 ‘더 많은 것들’에 목말라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 일을 하는 동안 항상 가슴이 꽉 조여드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일을 이만큼 해낸 오늘’을 축하하지 못하고, ‘이 일을 이만큼 했으니 이만큼 누려야만 하는 내일’을 욕망하느라 정신없이 바빴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이 그 즉시 성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오늘의 내 노력이 내일의 성과가 돼 재빨리 내게 와 주길 염원했습니다. 염치도 없이 그렇게 염원했습니다.     





   그런 내가 어느 세월에 당신을 만났습니다. 당신이라는 한 사람과 당신의 만족과 당신의 감사와 당신의 차분한 기다림을 만났습니다. 자신이 매사에 행하는 모든 일이 저마다 즐거움이고, 돌아올 결과를 기다릴 시간에 자신이 애써 행한 것들을 스스로 (또는 그 일을 함께한 사람들과) 격려하고, 자신에게 돌아오는 결과가 빠르든 느리든 크든 작든 그것에 온 힘 다해 고마워하고, 그래서 모든 매일에 만족하고, 모든 매일에 감격할 줄 아는 당신을…….



어떻게 이런 사람이 있나,
자꾸 눈을 비비고 싶어지게 만드는 당신을…….



   그런 당신이 내 삶에 있기에, 그런 당신을 오래 지켜볼 수 있기에, 그런 당신으로 인해 내가 나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기에, 내 못난 조급증과 불만족이 하루마다 깎여져 나갈 수 있었습니다. 말끔한 마음으로 일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리며, 이따금 결과가 오지 않더라도 ‘이 일이 주는 기쁨으로 나는 족하다.’ 여기며 미소 짓는 당신을 바라보는 것은 내 오염된 영혼에 비눗물을 끼얹는 일입니다. 그 비눗물이 매워 내 영혼의 눈이 자주 따가워지지만, 끝내 내 영혼은 조금씩 세척됩니다. 그래서 가끔은 나도 내일에 대한 걱정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갑니다. 애쓴 만큼의 결과를 내놓으라고 운명에 떼쓰던 태도를 뒤로하고, 다만 오늘의 뜻깊고 즐거운 수고로움을 스스로 격려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살든 저런 태도로 살든 내일 일을 아는 사람은 없고, 내일에는 내일 반드시 벌어져야 할 일들만 벌어질 테니, 오늘의 나는 모든 내일과 별 상관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납득합니다. 

   어차피 내가 바꿀 수 없는 내일이라면, 내일에 대해 생각할 에너지로 오늘 실컷 즐기기나 해야겠다고 나는 마침내 결심합니다. 지긋지긋할 만큼 당연하지만 지긋지긋할 만큼 쉽게 어그러지던 그 결심을 비로소 내 가슴에 단단히 뿌리내립니다.     

   그토록 생생히 오늘을 사는 당신을 만나, 나도 이제는 순간순간 오늘을 살 정도는 되었습니다. 과거에 대한 미련과 후회를 흩뜨리고 순간순간 오늘을 삽니다. 미래에 대한 헛된 욕심과 조급증을 버리고 순간순간 오늘을 삽니다. 

   지금 이 찰나의 내 몸과 마음과 내 주변 환경 그리고 내 곁에 있는 당신 모두 내게 가장 완벽한 기적임을 순간순간 기억하며, 오늘에 뜨거운 축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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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과 산문집을 발행하는 
WRIFE MAGAZINE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당신의 하루와 당신의 마음과
당신의 웃음과 눈물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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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책 속 한 문장 :


법이 인간의 선과 악을 정말 정확히 구분해 낸 걸까. 법을 어기는 것은 선을 어기는 것이며 법을 지키는 것은 악을 범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뜻일까. 나는 인간이 내린 정의들에 대해 처음으로 회의감을 느꼈다.

-소설집『피아노 치는 아내를 원해요』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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