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마음은 백일홍입니다
주말 아침, 인터넷을 켜고 빈둥거리고 있었습니다. 건강식을 소개하는 게시물이 떠 있길래, 그걸 읽어 보고 있었어요. 그러다 ‘꽃말’에 대한 게시물을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꽃마다 가진 특색에 따라,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해 놓은 것. 그게 꽃말이죠. 그 게시물에는 여러 가지 꽃말들이 한가득 실려 있었습니다.
읽다 보니 재미가 있었습니다. 나는 그 게시물을 끝까지 읽어 보았습니다. 그게 정확한 정보인지는 몰랐지만요.
‘꽃말에 정확한 정보 같은 건 있을 리 없다.’는 생각이 뒤따랐습니다. 꽃말은 상징이잖아요. ‘평화의 상징은 비둘기다.’처럼, 상징은 추상적인 개념을 사물에 빗대서 표현하는 것일 뿐입니다. 진실을 정의하는 게 아니라. 생각이나 마음을 나타내기 위해, 사물을 잠시 빌려 쓰는 것일 뿐입니다.
나라마다 꽃말이 조금씩 다르다는 얘기를 어디서 주워들은 기억도 있었구요.
그래서 아무려나 상관이 없었던 것입니다. 읽고 있던 그 게시물 속에 담긴 꽃말들이 정말 꽃말이든, 아니면 게시물 작성자가 즉흥적으로 지어낸 것이든. 그게 뭐든 꽃말의 이름을 한 거라면, 모두 꽃말일 테니까요.
아무튼, 그 게시물에는 내 마음을 끄는 몇 가지 꽃말이 있었습니다. 그것들을 손으로 한번 써 보았습니다.
· 붓꽃 : 당신에게 전할 말이 있어요.
· 등나무 : 당신과의 만남은 내게 아주 큰 의미입니다.
· 보라색 라일락 : 처음 느껴 보는 사랑입니다.
· 백일홍 : 당신이 그립습니다.
· 레몬 꽃 : 진실하게 당신을 만날 것을 약속합니다.
· 파란색 제비꽃 : 언제나 당신을 믿습니다.
· 페리윙클 : 언제나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 수선화 : 존경합니다. 나를 잊지 말아요.
순서대로 읽어 보세요. 편지 같지 않나요.
저기 적힌 꽃들을 모두 모아, 한 다발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수께끼인 꽃말들을 가득 담아, 당신에게 주고 싶었습니다. 꽃잎이 시들고 모든 향기가 흐려진 뒤에도 사라지지 않을, 이 마음을 당신에게 주고 싶었습니다. 언제나 주고 있는 이 마음을 새로이 주고 싶었습니다. 은밀하게.
그런 비밀스런 순간 하나쯤 간직하고 살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순간순간 따뜻할 것 같았습니다.
그나저나, 꽃 색깔에 따라서도 꽃말이 조금씩 달라지는 모양입니다. 색깔이 가진 상징과 꽃이 가진 상징을 혼합하면, 새로운 꽃말이 만들어지는 듯했습니다. 그 멋진 상상력과 응용력에 문득 감탄했습니다.
그런데 꽃말을 처음 발명한 사람은 누굴까요. 아마 수줍음이 아주 많은 사람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마음을 곧바로 고백하는 게 어려워, 꽃 한 송이마다 마음의 의미를 한 줄씩 담아냈던 것 아닐까요.
꽃말 이외에도, 우리가 마음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선물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그것들 또한 마음 표현에 서툰 사람들이 고안해 낸 것 아닐까, 짐작됩니다. 마음 보여 주는 게 서툰 그들이 진심 전할 방법을 고민하다 하나씩 찾아낸 것들 아닐까.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니까요.
거기까지 생각하고 났더니, 꽃들을 바라보는 심정이 색다릅니다. 마음 표현에 영 어설픈 사람이 나뿐인 건 아니구나, 하는 위안을 받아서였을까요.
따지고 보면, 세상에 개발된 모든 것들의 시작이 ‘필요’입니다. 필요하지 않았다면 만들어 낼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필요하다.’는 건, ‘그것 없이 뭔가를 하기엔, 어딘지 부족한 상태에 처해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세상 모든 개발자들은 우리와 비슷한 사람으로서, 보통의 필요를 느꼈던 것입니다. 다만, 그 보통의 필요를 보통이 넘는 수준으로 세심히 연구했겠죠. 그 보통의 필요를 해결할 수 있을 때까지.
이러나저러나, 대부분의 사람이 보통인 거라 생각하면, 마음이 문득 편안해집니다. 유달리 특출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내려놓게 됩니다. 적당한 수준의 보통 사람으로서, 다만 성실해지자고, 끈질겨지자고, 오직 그뿐이라고, 다짐하게 됩니다. 감당할 수 있는, 산뜻한 다짐을 하게 됩니다.
오늘의 내 마음은 백일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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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 :
당신이 그렇게 물어 오면 / 난 뭐라고 대답할까요 / 내 상상도 당신의 약속도 / 우리의 기억도 닿을 수 없는 / 그 시간에 벌써 내가 / 서 있다고 하면 / 당신은 내 말을 믿을까요
-소설집『나고 살고 사랑하고 죽고』중-
소설집과 산문집을 발행하는 WRIFE MAGAZINE은 ‘나’와 ‘나’가 만나 ‘나’와 ‘너’가 되고, ‘나’와 ‘너’가 어우러져 ‘우리’가 되는 모든 순간들을 담아냅니다. WRIFE MAGAZINE의 시선과 마음과 글이 머무는 곳은 언제나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