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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Feb 25. 2017

우리는 인연이어서 만난 걸까요



   “좋은 관상觀相을 가지셨군요.”

   같은 말, 들어 본 적 있으신가요. 관상은 사람 생김새를 통해 그 사람 운명, 성격, 성공 여부 같은 걸 예측하는 풍속입니다.

   입꼬리가 올라가 있으면 출세할 상. 얼굴 색깔이 검으면 운수가 막힐 상. 코끝이 들려 콧구멍이 많이 보이면 재물을 모으지 못할 상. 눈동자가 노란빛이면 성질이 급하지만 정직한 상. 눈이 가늘고 길면 귀하게 되고 장수할 상. 눈꼬리가 위로 올라가 있으면 많은 복을 누릴 상. 광대뼈가 잘 발달돼 있으면 권력을 얻게 될 상. 인중이 길고 선명하며, 입술 모양이 말끔하면 복스러운 상. 이런 것들이 관상에 속합니다. 얼굴이 아닌 다른 몸 부위도 관상 보기의 대상이 되구요.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눈빛’도 관상에 포함된다는 거. 나는 이 사실을 어제 전해 들었습니다. 관상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눈인데, 눈빛도 관상이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여러 번 터져 나왔습니다. 눈빛이 관상에 포함된다는 게, 너무 신기하고 멋져서요.  

   어제부터 틈나는 대로, 나는 거울을 들여다봅니다. 내 눈빛을 수시로 점검합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눈빛은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진다. 눈빛의 출처는 마음이니까. 눈빛이 우리 운명에 관여한다는 건, 결국 마음이 우리 운명에 관여한다는 말이 되겠구나. 마음은 운명의 흐름 속으로 수많은 변수變數를 찔러 넣어 왔구나. 그러다 운명의 흐름을 바꿔 놓기도 했겠구나.

   이 생각은 내게 새로운 관점을 제공했습니다. 운명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운명은 저절로 눌리는 버튼 하나로만 이뤄진 게 아니라는 관점을.

   운명은 ‘두 가지 버튼’으로 작동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는 저절로 눌리는 버튼인, 운명 그 자체. 나머지 하나는 우리 마음. 





   이 관점을 가지자마자, 머릿속에 어떤 말이 불쑥 떠올랐습니다. 이 말, 당신도 들어 본 적 있을 거예요. ‘팔자八字를 고치다.’라는 말. 너무 흔한 말이죠. 너무 흔해서 너무 쉽게 흘려들은 말입니다.

   이 말을 떠올리고, 나는 잠시 아랫입술을 깨물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아, 왜 여태 이 말을 진중하게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이 말을 진솔하게 곱씹어 봤더라면, 운명을 덜 두려워하고, 나 자신을 더 믿어 줄 수 있었을 텐데. 운명만큼, 혹은 운명보다 더 센, 내 안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믿어 줄 수 있었을 텐데.    





   “우리, 인연일까? 그러니까, 맺어지기로 되어 있던 사람들일까, 우리?” 하고 당신이 내게 질문했던 날을 떠올려 봅니다. 길에 떨어진 꽃잎들이 따뜻한 바람에 일렁거리던, 늦봄의 밤이었습니다. 

   당신은 운명과 같은 의미로 인연을 말했습니다. 

   그 날, 당신에게 내가 대답했었죠. 인연이라고, 우리. 우리는 근사하게 마주쳐서 오래 닿아 있기로 된 사람들이라는 걸, 나는 강하게 확신한다고.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강하게 확신한다고. 

   그 확신의 이유를 오늘 가만히 깨우칩니다. 인연이에요, 우리. 우리가 그러기로 했으니까. 그러기로 해서 그렇게 된 것도, 인연이에요. 

   마음 담아 내달아 가는 모든 순간순간이 인연이에요. 태어나던 당시, 우리 인연 스케줄에 서로가 없었다 해도, 상관없어요. 이렇게 같이 있잖아요, 지금.

   서로의 생애에 나타났어야 할 사람이에요, 우리는. 하늘이 맺어 준 것도 인연이고, 마음이 맺어 준 것도 인연인데, 나는 왜 이 두 가지 인연 모두 우리에게 속한다고 생각되나요. 또 확신되나요.




사람과 삶을 공부합니다. 공부한 것들을 책 속에 차곡차곡 담으며 살아갑니다. 읽고 나면 사람과 삶에 한 발 가까워질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습니다. 느리고 서툴지만 부단히 노력하려 애씁니다. WRIFE MAGAZINE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매거진을 통해 소설집과 산문집을 펴냅니다.


출간된 책 구매 안내  :  www.parkdabin.modoo.at 


   당신처럼 누군가의 인생에 큰 흔적을 남기는 사람에게서 돌아서는 일이, 돌아서서 끝내 모든 걸 잊는 일이, 어떻게 간단하겠습니까. 만에 하나 그걸 간단히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저는 그 10000분의 1이라는 확률에 속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남은 9999명의 사람들 가운데서도 완전한 꼴찌입니다. 당신을 만난 만 명의 사람 가운데 당신을 가장 늦게 잊거나, 절대 잊지 못할 사람이 나인 것입니다. 그러니 나는 여전히 당신을 잃을 자신이 없습니다.

산문집 『마음이 퇴근하는 시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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