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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Feb 28. 2017

왜 우리는 ‘안녕’이라 인사할까요



   “안녕.” 

   “안녕.”

   우리나라에서는 만날 때와 헤어질 때, 똑같은 인사말을 주고받습니다. 3년 전 헤어진 연인에게 건넸던 인사말을, 오늘 처음 만난 친척 동생에게 건넬 수 있는 것입니다.

   “안녕.” 

   “안녕.”

   이것은 만남에 대한 반가움과 작별에 대한 애석함을 동시에 품고 있는 말입니다. 그래서일까요. 금방 만난 사람에게 “안녕.” 하고 인사할 때, 나는 이 사람과 언젠가 헤어지게 될 순간을 문득 그려 보게 됩니다. 누군가와 헤어지기 전에 “안녕.” 하고 인사할 때는, 이 사람을 또 만나게 될 훗날의 순간을 문득 기대하게 됩니다.

   “안녕.” 

   “안녕.”

   이것은 지금 맺어져 있는 인연을 더 소중하게 만들어 주는 말입니다. 이만 끝난 인연에 한 줄기 희망을 갖게 해 주는 말입니다.     





   그런데 왜 ‘안녕’일까요. 하고 많은 단어들 가운데, 왜 하필 ‘안녕’이 인사말로 채택되었을까요. 안녕이라는 말보다 더 긍정적인 말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인사말로 안녕을 사용하는 이유를, 나는 멋대로 추측해 보았습니다.

   ‘안녕’은 ‘편안할 안安’과 ‘편안할 녕寧’이 만난 단어입니다. 이것은 ‘안녕하다.’의 어원인데요. ‘안녕하다.’는 아무런 탈 없이 편안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뭐든 넘치면 독이 되니까.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잔잔한 날들을 빌어 준 걸까요.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무사한 나날을. 

   나와의 만남이 아무리 행복해도, 그 행복이 당신을 온통 뒤흔들어, 당신이 일상을 헝클어뜨리는 일 없기를. 알맞은 양의 행복과 함께, 당신은 당신 세상에서 그저 평안하기를. 

   나와의 헤어짐이 아무리 서글퍼도, 그 서글픔이 당신 활력을 다 빨아들여, 당신이 무기력해지는 일 없기를. 감당 가능한 서글픔과 함께, 당신은 당신 세상에서 그저 평안하기를. 

   나와 함께일 때나, 나와 함께이지 않을 때나, 당신은 그저 안녕하기를. 당신이 성실히 일궈 온 당신 세상이, 하루도 빠짐없이 안전하기를. 당신이 매일 당신이기를. 그러기를 바라서, ‘안녕’을 인사말로 정한 걸까요.   


  



   당신의 오늘은 안녕한가요.

   내 버전version의 안녕이라는 말이, 당신에겐 조금 매정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쌀쌀맞은 뜻을 담은 안녕이 아니에요. 나와는 상관없이 당신은 당신 인생이나 살라는, 그런 안녕이 아니에요.

   당신을 당신이도록 만들어 주는, 당신만의 색깔을 지켜주고 싶은 사람의 언어예요. 내가 당신에게 건네는 수많은 종류의 ‘안녕’은.

   당신 세상과 내 세상 사이에 벽을 쌓아 올리는 안녕이 아니에요. 당신 세상과 내 세상이 더 오래 지속될 수 있길 소망하는 안녕이에요. 당신과 내가 우리 자신이길 포기하면, 그래서 당신과 내 세상이 무너져 버리면, ‘우리’도 없는 거잖아요. 그렇기 때문입니다. 나는 당신 세상이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 잘 유지되기를 열렬히 기원합니다. 내 세상도 훼손 없이 잘 보존되기를 염원해요.

   내가 있고 당신이 있어야, 나와 당신으로 만나, 우리는 우리가 됩니다. 그러니 부디, 당신이 안녕하기를 바랍니다. 있는 힘껏, 당신 자신이기를 바랍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히 계십시오.

   그토록 안녕하여서, 우리 오래 만납시다.




사람과 삶을 공부합니다. 공부한 것들을 책 속에 차곡차곡 담으며 살아갑니다. 읽고 나면 사람과 삶에 한 발 가까워질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습니다. 느리고 서툴지만 부단히 노력하려 애씁니다. WRIFE MAGAZINE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매거진을 통해 소설집과 산문집을 펴냅니다.


출간된 책 구매 안내  :  www.parkdabin.modoo.at 


   “사람 마음 그렇게 잘 꿰뚫어보면서, 너는 왜 헤어졌는데, 그 사람이랑.”
   잠깐 물고 있던 테이크아웃 잔을 입에서 뗀 태인이 진서에게 빈정거렸다. 엄밀히 따지자면, 진서가 ‘그 사람’과 ‘헤어진’ 건 아니다. 두 사람이 교제를 제대로 시작한 게 아니니까.
   “너무 가까워서 안 보여. 내 마음이랑 그 사람 마음은…….”
   진서가 무슨 말을 더 이으려 하는데, 카운터에서 태인의 이름이 불린다. 태인의 표정이 약간 찡그려진다.
 
소설집 『남의 인생 관람 티켓』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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