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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Mar 08. 2017

약점까지 포함해야 진짜 ‘나’니까



   우리 모두에겐, 누르면 아픈 곳이 있습니다. 몸에든, 마음에든. 이 취약한 부분을 어떻게 다루면 좋을까요.

   얼마 전, 취약성脆弱性에 관한 강연을 보았습니다. 브레네Brene 브라운Brown이라는 박사의 강연입니다.

   취약성은 무르고 약한 성질을 의미하는데요. 취약성이 있는 부분은 ‘취약점, 단점, 약점, 허점, 결함’으로 부릅니다. 그다지 반가운 단어들은 아니죠. 되도록 대화에서 제외시키고 싶은 화제이기도 하구요. 


   취약성을 드러내 놓는 순간, 어떤가요? 내 여린 부분을 내놓는 건, 스스로를 나약한 인간으로 만드는 것 같다고, 나는 자주 느낍니다. 상대 앞에서 나약한 인간이 되는 건, 내 매력을 곤두박질치도록 만드는 일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취약성을 제대로 드러내야 진정한 용기가 생긴다고 하는군요. 강연 영상 속에서, 박사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사실상, ‘취약점’과 ‘약점’은 별개라고. 오히려, 취약성은 인생의 연료가 된다고. 자신의 엄연한 일부분인 취약성을 인정하고, 온전한 자기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야, 타인과 진실로 연결될 수 있는 거라고.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특징 가운데 ‘취약성 포용’이 있다고.

   게다가, 인생에 취약성이 제로zero가 되는 시기 같은 건 없다고. 모두의 인생이 그렇다고. 그러니, 당신이 어떤 취약점을 가졌든, 당신은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라고.    





   강연을 모두 들은 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박사의 말들을 내 삶과 연결 지어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정말 ‘취약점’과 ‘약점’은 별개였나. 내 취약성이 정말 내 인생의 연료가 되었나. 취약성을 인정하고, 내 진짜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냈을 때, 정말 타인과 진실로 연결될 수 있었나. 나는 내 가치와 취약성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나. 

   인생에 취약성이 제로가 되는 시기가 정말 있을 거라고, 나는 믿었나. 내가 가진 취약점이 어떠하든, 나는 정말 충분히 괜찮은 사람인가.    

   지금껏, 나는 취약점과 약점이 같은 거라고 여겼습니다. 약한 부분이 있다는 건, 그만큼의 오류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내 취약성이 내 인생의 연료를 갉아먹는다고 간주했습니다. ‘이런 물러 터진 부분이 없었더라면, 내가 더 굳세게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 하고 아쉬워했습니다. 


   그런데요. 여태까지 내 곁에 남아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내 취약점에 대해 남김없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내 곁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내 취약점이 취약점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내 취약점에 대해 불평하면, 그들은 내게 화를 냈습니다. 

   어째서 그게 네 흠집이 될 수 있느냐고. 네가 그런 부분을 가졌다 해도, 네겐 아무 문제없다고. 그렇게 말하는 그들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만 갔습니다. 그 격앙된 목소리에 실린 진심이 내 호흡을 가로막고, 내 눈시울을 붉히곤 했습니다. 

   그리고 또 이런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니가 그런 얘기해 주니까, 나는 너무 좋다.”고 말하던 한 사람의 목소리, 따뜻해진 뺨, 부드러운 눈빛. 내가 내 안의 흉허물을 토해놓고 난 뒤에 본, 그 얼굴. 

   그 환한 얼굴을 가진 사람은 내게 고맙다고 했습니다. 그 지저분한 것들을 전해 듣고도, 내게 고맙다고 했습니다.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어, 기쁘다고 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대화를 자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연결. 

   연결.

   내 안의 어두침침한 쓰레기 소굴을 개방하고 난 뒤에, 나는 그 사람과 좀 더 끈끈하게 연결되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요. 내 취약성에 대한 고백은, 나를 타인과 더 깊이 결속시키기도 했습니다. 박사의 말이 옳았습니다.    





   나는 문득,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타입type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는 실수해도 움츠러들지 않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매사에 적당량의 긍정을 가진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 긍정을 받치는 슬픔과 우울함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말할 줄 아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울 때 잘 우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마음이 체하도록 그냥 두지 않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자기 단점 속에서 유용함을 발견해 낼 줄 아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스스로에 대해 자긍심을 가진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분. 나는 내 삶에 진실한 모습으로 걸어 들어오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이 모든 게 취약성과 관련돼 있었습니다. 

   그걸 깨닫고, 나는 잠시 멍했습니다. 나는 취약해질 줄 아는 사람을 사랑하면서, 정작 스스로의 취약점은 꽁꽁 숨기고 있었습니다. 사랑할 수 있는,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는, 내 허점들을 감추기에 급급했습니다.

   나는 취약성을 사랑했습니다. 내 취약성만 쏙 빼놓고.    





   나 자신에 대한 지나친 기준을 버리고, 내가 되자고, 나 자신이 되자고, 또 한 번 다짐하는 밤입니다. “이대로도 괜찮을 거야. 아니, ‘이대로’여야 돼.” 하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까만 창밖을 가만히 내다봅니다.   

  

   그동안, 나는 내 취약점과 나를 동일시했습니다. 내가 약한 부분을 가진 게 아니라, 내가 약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내 취약점을 악착같이 숨기려 했던 것입니다. 

   취약점을 인정한다는 것은, 나 자신이 약점이 아니라, 내가 어떤 약점을 가졌을 뿐이라고, 스스로와 약점을 분리시키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취약점을 인정하는 사람이 취약점을 숨기는 사람보다 강하다고 했던 모양입니다.    


   누군가에게 안기고 싶은 날, 스스럼없이 안길 줄 아는 사람을 사랑하면서, 정작 나는 아무에게도 안기지 않으려 한 세월을 돌아봅니다. 

   손바닥에 내려앉는 봄꽃처럼, 조용히 당신에게 안길 줄 아는 사람이 되겠다고, 별안간 약속을 겁니다. 원한다면 ‘영원히’라도 나를 안아 줄 당신에게, 좀 더 진실한 내가 되어 보이겠다는, 약속을 겁니다.

   당신과 연결되고 싶습니다. 당신에게 살짝 걸쳐진 사람이 아니라, 당신과 완전히 연결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입니다.




사람과 삶을 공부합니다. 배운 것들을 책 속에 담아내며 살아갑니다. 읽고 나면 사람과 삶에 한 발 가까워질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습니다. 느리고 서툴지만, 더 나은 책을 위해 부단히 고민합니다. 카쿠코 매거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매거진을 통해 소설집과 산문집을 펴냅니다. 생활의 보고서를 발행합니다. 투박하지만 천진한 세계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카쿠코에서 출간된 책 둘러보기  :  http://cacuco.modoo.at/


   일상 속에 감사할 것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나는 일상 밖에서 올 멋진 일들을, 이를테면 어떤 횡재들을 손꼽아 기다리며 매일을 시큰둥하게 보내고 있었다. 횡재는 지나가지만, 내 안에 자리 잡은 내 능력은 영원히 남아 나를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구하며 나를 보살필 텐데도.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뭔가를 쉽게 얻고 싶어 하는 이 얄팍한 욕심이 나를 따라다니는구나, 싶다. 나이가 든다고 세상살이에 저절로 겸허해지는 건 아니었음을, 다시금 절감한다. 스스로의 삶에 충분히 만족하고, 만족하는 생활과 나태한 생활을 구분할 줄 알며, 자기가 애써 쏟은 노력으로 결실 맺으려는 마음가짐은 세월이 아니라 내 의지를 통해 이뤄내는 것이라는 것도.

산문집 『마음이 퇴근하는 시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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