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단편 소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이로운 May 17. 2017

직접 선택해

   집에 들어오자마자, 현관 바로 앞에 누웠다. 장마철이라 창문이란 창문은 다 닫고 나갔는데, 보름 동안 밀폐된 집치고 내부 공기가 그리 탁한 것 같지는 않았다. 

   이렇게 잠시 누워 있고 싶었다. 집을 떠난 곳에서는 아무리 쉬어도 피로감이 얼마씩 남아 있다. 그곳은 집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그 이유뿐이다. 

   내 집 방바닥의 서늘함이 등허리에 닿아 오자, 친숙한 내 집 풍경이 나를 에워싸자, 나른함과 졸음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미세하게 남아 있던 긴장이 완전히 풀려 나가기 시작했다. 비로소. 

   집이라는 공간, 참 이상하다. 집은 단순히 공간적인 속성만 가진 게 아니라는 생각이 확신으로 굳어졌다. 여행 다녀올 때마다 그런 확신을 되새긴다. 집의 전체적인 속성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건, 심리적인 속성이리라. 감정적인 속성이거나. 나한테는 그렇다.

   “니가 그 이유 알아서 뭐할 건데?”

   여행지에서 만난 한국인의 목소리가 또 다시 떠올랐다. 비행기 안에서도 그러더니. 그 사람이 꺼낸 이야기가 내 안에 얼마간의 충격을 일으킨 모양이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그곳은 여행지가 아니었다. 현지인들만 살고 관광객은 거의 드나들지 않는, 그런 곳이었다. 그런 곳이어서, 거기에 갔다. 여러 종류의 관광객이 뒤섞이는 바람에 어설프게 낯선 곳이 아니라, 철저하게 낯선 곳으로 가고 싶었던 까닭이다. 철저한 이방인이 되고 싶었다.

   내가 여행 중이라는 생각, 내가 여행객이라는 생각, 내가 누구라는 생각 모두 잊고 싶었다. 아는 게 하나도 없는 곳으로 가서, 나를 선명하게 느낄 수 없는 곳으로 가서, 나를 좀 내려놓은 채로 지내고 싶었다. 

   나와 나 사이가 너무 가까워서, 나 자신이 버겁던 차였다.    


   그런데 여행 나흘 째 되던 날, 그 한국인 여행객을 맞닥뜨렸다. 그는 동갑내기 친구로 보이는 또 다른 한국인과 함께 있었다. 그들과 나는 그 동네에서 가장 오래된 가게에 있었다. 그곳은 커피도 팔고, 음식도 팔고, 술도 팔고, 기념품도 파는 곳이었다. 팔 수 있는 건 죄다 파는 곳이었다. 그래서 카페나, 식당이나, 술집이나, 기념품 상점이라 꼬집어 말할 수 없는 곳이었다.

   나는 가게 입구 바로 안쪽에 앉아 있었다. 입구를 등지고. 그들은 입구 바로 앞에 놓인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마찬가지로, 그들 또한 입구를 등지고 있었다.

   나는 느긋하게 앉아, 챙겨 온 산문집을 읽고 있었다. 읽던 장에서 그 다음 장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얼결에 두 장을 넘겨 버린 때였다. 내 모국어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 왔다. 나는 몸을 움칠했다. 놀라서였다. 찰나적인 놀람이 가시자, 신경이 예민하게 곤두섰다. 방해꾼이 등장한 것 같아서였다. 

   그들에게도 내가 방해꾼일 것이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 혼자였다. 내가 몸을 틀어 유리창 너머의 그들을 쳐다보거나, 말소리를 내지 않는 이상, 그들의 여행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들을 방해하지 않기로 했다. 유리창에 그려진 메뉴판과 그림들 때문에 내가 그들에게 잘 보이지도 않을 텐데, 나는 상체를 약간 움츠리고, 다시 책에다 시선을 주었다. 

   “니가 그 이유 알아서 뭐할 건데?”

   대답을 꼭 들어야겠다는 투로, 한 사람이 물었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금방 전에 말한 그 사람이 다시 입을 열었다.

   “걔 그냥, 지 하고 싶은 대로 살게 좀 내버려 둬. 왜 걔한테 사사건건 설명을 요구하는데? 왜 걔가 지 선택을 너한테 납득시켜야 하는데? 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냐? 니가 뭔데? 가만 보면 너 좀 이상해. 좀이 아니라 많이 이상해. 걔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다 관여하려 하면서, 걔 부모처럼 굴고 있잖아. 아니, 아무리 극성인 부모라도 그렇게는 안 하겠다. 너 왜 그러냐? 왜 그러는데? 뭐 붙들고 그거 통제하면서 자기가 옳다는 느낌 받고 싶으면, 니 인생 갖고 해. 왜 걔 인생 갖고 난리냐? 니 거도 아닌데. 친구 핑계, 우정 핑계, 신뢰감 핑계 대면서 걔 들들 볶지 좀 마라. 걔한테 무슨 죄가 있다고? 걔 걱정돼서 그런다는 개소리는 하지도 마. 안 들어. 안 속아. 걔가 너 참아주는 만큼 너 참아줄 만한 인내심 같은 것도 없고, 난. 야, 아직 아무 일도 안 일어났을 때 멈춰. 너 계속 그러다가 큰코다친다.”

   그 사람 말이 멎은 뒤, 또 한 번의 침묵이 시작되었다. 이번 침묵은 꽤 길었다. 가게 주인이 그들에게 다가가 주문을 받으려 했다. 핸드폰 속 번역기 어플에서 외국어 몇 마디가 흘러나왔다. 주인이 웃음을 터뜨리며 “예스!” 하고 말했다.

   주인이 나를 지나쳐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때 나는, 내가 또 다른 한국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았다. 주방 안쪽에서 웃음소리가 들려 왔고, 새로 온 손님 몇 사람이 기념품 선반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테이블 위에 책을 엎어 놓고, 빵 한 조각을 집어 먹었다. 

   “그럼 내가 뭘 어떻게 해야 되는데? 뭐 어떡할까?”

   내가 또 다른 빵 조각을 집어 들 때, 또 다른 한국인이 말했다. 

   “나한테 묻지 마. 니 선택, 나한테 떠넘기지 마. 남이 뭐 선택하게 만드는 데만 열심이지 말고, 니가 직접 선택해. 그게 뭐든. 그리고 너 이미 알고 있잖아. 뭐가 진짜 옳은지.”

   “너랑 괜히 같이 왔다.”

   “뭐? 여기? 난들 뭐 좋은 줄 아냐?”

   “아, 알았어. 알았다고.”

   “이 얘기 그만하자. 이제 너 알아서 해.”

   그렇게 그들의 대화는 끝났다. 여행 도중에 그들을 다시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 왔다. 모든 창문을 활짝 열고, 개운한 공기를 좀 마시고 싶었다. 나는 몸을 일으키고 양말을 벗었다. 


   지금 그들은 어디쯤에 있을까. 귀국했을까.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을까. 그렇게 흩어졌을까. 아니면 여전히 티격태격하며, 새로운 골목골목을 누비고 있을까.

   나는 누구의 선택을 살고 있을까.






   카쿠코 매거진 : http://cacuco.modoo.at/

 

매거진의 이전글 단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