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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May 14. 2017

단념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릴 때, 원래 쳐야 하는 단어가 아니라 내 손에 익은 단어를 쳐 버릴 때가 있다. 내 손에 익은 단어라는 건, 대개 누군가의 이름이다. 

   펜으로 뭔가를 쓰다가 문득, 의식 없는 얼결의 낙서로 어떤 단어를 써 버릴 때가 있다. 마찬가지로, 내 손에 익은 그 단어 또한, 대개 누군가의 이름이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그 누군가가 내 몸에 흠뻑 묻어 있어, 내가 일상 곳곳에 그 사람을 묻히고 다니는 기분이 든다. 나는 나인데, 정작 내가 흘리는 건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의 흔적인 것이다.     


   지난 1년은 내 생에 편지를 가장 많이 쓴 기간이었다. 휴식 시간 대부분이 편지 쓰는 데 투입되었다. 나는 내 이름보다 편지 받을 사람 이름을 더 많이 불렀다. 그 부름의 비율이 1%와 99%의 비율이라 해도 크게 손색없을 정도로.

   그래서 그런지, 그 사람 이름을 오타로 내는 일이 잦았다. 이런저런 고심과 그 고심들로 인한 결심에 따라, 편지 쓰기를 중단한 지 일주일이 다 돼 가는데, 지금도 나는 인터넷 검색창이나 노트 한편에 그 사람 이름을 쓴다. 무의식적으로. 이따금은 의식적으로.

   다른 사람 이름을 그 사람 이름으로 바꿔 부르다가, 혼자 화들짝 놀라는 때도 있었다. 그 잠깐의 착각이 뭐라고, 나는 어디서 흠씬 두들겨 맞은 사람 얼굴이 되었다. 눈동자 속의 빛이 쑥 빠져 나가 버린 사람처럼, 어둑하고 텅 비어진 눈을 떴다.

   어느 결에 내가 놓아 버렸지만, 함께 온 관성慣性이 남아, 내 곁에 여전히 바짝 따라붙는 그 사람 이름을 가만히 곱씹으며, 나는 희미한 복통 같은 걸 느낀다. 내키지 않았던 단념이 발생시킨 통증을 느낀다.    


   나와 연결되어 있지만 나와 별개로 살아 있는 것, 그러니까 마음 따위를 내 힘으로 멈춰 버리는 건, 항상 이런 적응 기간을 떠안긴다. 그 적응 기간이라는 게 시작될 때마다 나는 앓는다. 주로 두통과 고열을 앓는다.

   적응 기간이 아니라, 보복 기간인지도 모른다. 내가 멈춰 버린 그것으로부터의.    


   ‘마음을 멈춰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심과 ‘마음을 멈춰야 한다.’는 결심이 없는 곳에 살고 싶다. 앓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다. 다 앓고 난 후면 어김없이 밀려오는, 끝없는 터널 같은 공허감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아서다. 

   머리통이 박살날 것 같은 두통을 안고 잠에 빠져들었다 나온 이 아침, 나는 새로운 터널 속에 들어와 있다. 여긴 타자를 칠 노트북도 없고, 펜과 종이도 없고,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사랑을 겁내던 사람이 끝내 사랑을 버리고 달아난 뒤, 불현듯 잡혀 들어오는 곳이다. 

   이번엔 되돌아 나갈 수 있을까.






   카쿠코 매거진 : http://cacuco.modoo.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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