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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May 13. 2017

탐정


   “탐정님이라고 부르면 됩니까?”

   그가 내게 물어 왔다. 나는 웃음을 터뜨리며 “좋을 대로 부르세요.” 하고 대답했다. 사무실 문 쪽으로 시선을 옮긴 뒤, 고개를 잠시 끄덕거리던 그는 “요즘 세상에도 탐정이 있다니. 참 모를 일이네요.” 하고 중얼거렸다. 혼잣말인 것 같아서, 나는 그에게 대꾸하지 않았다.

   경찰서에도 가 보고, 심부름센터에도 가 보고, 흥신소興信所(일정 비용을 받고, 어떤 단체나 개인의 정보를 조사한 뒤, 그 내역을 의뢰인에게 보고해 주는 사설 기관)에도 가 봤는데, 그런 곳들에서는 일의 실마리를 좀처럼 풀어내지 못하더라고, 그래서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당신을 찾았는데, 탐정이라는 당신을 찾았는데, 의외로 당신 명성이 자자하더라고, 알 만한 사람은 다 당신을 알고 있더라고, 처음에는 그 소문이 그냥 뜬소문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당신에 대해 증언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서, 나도 당신에게 관심이 기울더라고, 그래서 결국 여기까지 찾아왔다고 하며, 그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는 소변이 정말 급한 사람이 화장실 가기 전에 중요한 말을 다 쏟아내듯 말했다. 누구도 그의 말을 가로막지 못할 듯했다. 

   그는 짧은 회갈색 머리에 깡마른 체형이었다.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쯤으로 보였다. 그의 얼굴에는 오래 묵은 피로감이 역력하게 드러나 있었다.

   그가 재킷 안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냈을 때, 담배는 나가서 피워 달라고 내가 그에게 부탁했다. 그는 물고 있던 담뱃대를 뱉다시피 하며 내게 사과했다. 

   그는 내게 계속 비굴한 모습을 보였다. 자신은 병신이라고 욕하고, 나는 자꾸 치켜세웠다. 나는 그의 그런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진심이 아니라는 걸 아니까. 자기 입맛대로 나를 부리기 위해, 내게 아첨이라는 마취제를 먹이려는 그의 그 얄팍한 수에 걸려들 만큼, 내가 초짜는 아니었다. 

   아무튼 그는 내게 사건을 의뢰하러 온 사람이었다. 그는 그 사건 때문에 골치를 꽤 앓은 듯했다. 무표정이라는 게 없는 사람 같았다. 아니, 무표정을 잃어버린 사람 같았다. 그는 항상 인상을 쓰고 있었다. 쉼 없이 꾸깃거렸다, 그의 미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상착의는 말끔했다. 뿌린 지 얼마 안 된 향수 냄새도 났다. 인생에 커다란 수수께끼 혹은 미스터리가 생긴 사람치고는 청결한 모습이었다.


   내 맞은편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두꺼운 서류 봉투를 뒤적거리고 있는 그를 건너다보며, 나는 결벽증이라는 단어를 곱씹었다. 나를 만난 30분 동안 세 번이나 되풀이해 언급된 그의 ‘수수께끼’와 ‘미스터리’가 진짜 ‘수수께끼’와 ‘미스터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원했던 일의 결과와 실제 일의 결과 사이의 격차를 받아들이지 못해서, 그가 그 격차를 ‘수수께끼’와 ‘미스터리’로 해석한 건 아닐까, 싶은 것이었다. 그 격차는 그저 존재할 뿐, 해결되는 종류의 것은 아닌데.

   내 추측이 들어맞는다면, 내 쪽에서 그에게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는 없었다. 그는 내가 찾아내는 단서들, 이를테면, 그의 바람에 어긋나는 결과를 뒤엎을 수는 없을 거라는 확실한 증거를 담은 단서들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찾아낸 그 단서들은 불완전한 단서일 뿐이라고 딱 잘라 말하며, 자신이 원하는 단서들이 나올 때까지 나를 닦달할 것이다. 아니면, 내 얼굴에 침을 뱉으며 다른 곳으로 가 버리거나.


   탐정 생활 10년 동안, 이 같은 사람을 더러 만나 왔다. 정말 진실을 알고 싶은 게 아니라, 자신이 알고 싶었던 대로의 뭔가가 진실이었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 나를 찾아 온 사람들. 

   나는 수수께끼나 미스터리의 일부를 내 능력껏 풀어 주는 사람이지, 마음속 의심을 풀어 주는 사람은 아니어서,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온전히 만족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풀리지 않는 문제와 풀리지 않는 의심. 어느 쪽이 더 괴로울까. 나는 후자라고 생각하는데.




   카쿠코 매거진 : http://cacuco.modoo.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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