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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May 26. 2017

모든 사랑 속에 든 그것


   가끔, 아무 이유 없이 아내를 끌어안을 때가 있다. 주방에서 설거지 하는 내 옆으로 다가와, 싱크대 안으로 컵 하나를 집어넣던 아내를. 베란다 앞 화단에 심어 놓은 방울토마토의 굵기를 눈짐작으로 재어 보던 아내를. 신발장에 쪼그리고 앉아, 신고 나갈 신발을 신중하게 고르던 아내를. 지하 주차장에서 나는 발소리는 언제 들어도 좋다고 하며, 지하 주차장 입구까지 발소리를 쾅쾅 내며 걸어가던 아내를. 
   내가 그렇게 느닷없이 아내를 안아 버릴 때, 아내는 내 품에 가만히 안겨 있다. 아내가 나를 밀어낸 적은 없다. 아직은 없다. 아내는 그냥 싱긋 웃거나 의아해 할 뿐이다. 그러다가 한 번씩 “무슨 일이야.” 하고 억양 없이 물어 오곤 한다.
   이상하게도, 아니, 신기하게도, 아내가 그렇게 물어 올 때 나는 내게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걸 번뜩 깨닫게 된다. 무슨 일이 있어서 아내를 안은 게 아니라는 소리다.
   아내는 내 행위 밑에 깔린 뭔가를, 나도 알아채기 힘든 그 뭔가를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채는 걸까. 
   “무슨 일이야.” 하고 질문한 아내에게서 몸을 뗀 나는 매번 “그게…….” 하고 우물쭈물하다가, 내게 생긴 어떤 일에 대해 차근차근 실토하기 시작한다. 
   마치 그 이야기 들을 준비를 오래 전부터 해 온 사람처럼, 그 이야기에 대해 수십 번도 더 전해 들었던 사람처럼, 아내는 내 이야기에 차분히 귀 기울인다. 나처럼 동요하거나, 나처럼 고통스러워하거나, 나처럼 우왕좌왕하지 않는다. 그 어떤 파도가 밀려와도 휩쓸려가지 않는 커다란 섬처럼, 아내는 내 앞에 버티고 서 있다.
   그런 강단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아내의 그런 꿋꿋함은 내 모든 위기마다 순발력 있게 발휘되어, 내가 어딘가로 나가떨어지는 걸 붙잡아 준다. 아내가 모든 순간 강단 있거나 꿋꿋한 게 아니라는 소리다. 차라리 아내는 말랑말랑한 사람에 가깝다. 자기 일에 관해서는 한없이 물러 터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내 시련에 대해서는 무서울 만큼 강인한 태도를, 행동을 보인다.
   사랑하기 때문일까. 나를 사랑해서, 아내가 내 고난 앞에 그토록 굳세어지는 걸까. 나도 아내를 사랑하는데, 왜 나는 아내만큼 야무지게 아내 삶의 무게를 지탱해 주지 못할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며칠 전에 아내에게 물어 보았다. 그 알 수 없는 일에 대해. 
   “보호 본능 같은 거야.”
   베란다 문을 열다 말고 아내가 덤덤하게 대꾸했다. 
   “보호 본능?”
   “나를 위한.”
   “에? 당신을 위한? 내 질문은…….”
   “그래, 당신 질문에 대답하고 있는 거야. 당신 가슴 뭉그러지는 거, 당신보다 내가 더 못 견뎌. 그래서 그러는 거야. 다 나 지키자고 그러는 거야. 그러려고 당신 허물어지지 않도록 당신 꽉 잡고 있는 거야. 당신 넘어지려고 하면 얼른얼른 일으켜 세우는 거야. 모든 사랑은 자기애를 끼고 있어. 당신이 반쯤 깨지면 나는 아예 박살나 버리니까. 아수라장 되니까. 그런 꼴 안 당하려고 내가 그렇게 악착같아지는 거야. 억척스럽게 당신 보듬는 거야. 표정이 왜 그래? 실망스럽나, 내 대답이? 뭐 되게 낭만적인 대답 나올 줄 알았나 봐? 당신을 너무 사랑해서, 당신을 죽도록 아껴서, 내 고난보다 당신 고난에 더 민감해지는 나예요,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아닌 건 아니지만, 그 이유가 전부인 건 아니야. 당신만큼 나를 사랑한다는 게 제일 정확한 이유야. 나 당신한테 희생하지 않아. 같이, 같이 잘 살자고 하는 짓이야.”
   아내의 대답은 단호했다. 나는 잠시 내 질문도, 아내의 대답도 잊고,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되게 분명하네.”
   둘째 손가락이 아랫입술을 스쳐 지나간 직후에, 내가 말했다.
   “뭐가?”
   베란다 문을 마저 열고 내 옆으로 온 아내가 물었다.
   “당신 태도나 행동의 동기에 대해서, 당신은 되게 분명하게 알고 있어. 어떻게 그렇게 될 수가 있지? 난 내가 왜 그렇게 구는지, 남은 왜 그렇게 구는지, 거의 모르는 채로 지내는데.”
   “원망하기 싫어서. 왜 그런 줄 모른 채로 말하고 움직이다가 좋지 않은 결과 만나면, 자꾸 곁에 있는 사람을 원망하게 되더라구. 그러기 싫어서. 그러기 싫어서 난 자꾸 생각해. 그러다가 차츰 알게 됐어. 내 모든 말과 모든 행동 동기에 나를 위한 뭔가가 빠진 적이 없다는 걸. 내 복지와 전혀 상관없는 말이나 행동은 나오지가 않더라는 걸. 내 모든 선택의 시작은 나를 안정시키거나 기쁘게 하기 위해서였다는 걸. 그걸 자꾸 기억하다 보면, 다른 사람들이랑 지내는 게 꽤 수월해져. 다른 사람들한테 나를 책임지라고 고함치는 마음이 없으니까. 나한테 보상하라고 요구하는 마음이 없으니까. 내 입에서 떨어지는 한 마디, 두 마디, 내 눈에서 쏟아져 나오는 눈짓 한 번, 두 번, 그런 모든 찰나들에 실려 있는 내 욕구를 알고 있으면, 진짜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지 잊지 않을 수 있어. 잊었더라도 끝내는 기억해 낼 수가 있어. 전부 내가 잘 살자고 저지른 자발적인 행위들이었으니까, 그 행위들이 낳은 결과를 감당하는 것도 전부 내 몫이라는 거. 누가 그 몫을 분담해 주려고 하는 건 절대 당연한 일이 아니고, 정말 고마운 일이라는 거.”
   말을 마친 아내가 내 뺨에 손바닥을 가져다 댔다. 아내의 손바닥은 서늘했다. 사랑에 대해 좀 홀가분한 태도를 취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카쿠코 매거진 : http://cacuco.modoo.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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