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단편 소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이로운 May 30. 2017

너는 어디에 있어?


   “왜, 자신 없어?”

   이 말만 들으면, 몸속에 잠들어 있던 모든 종류의 폭탄이 터져 버리는 것 같았다. 내 실력은 안 봐도 뻔하다고 하면서, 나 같은 건 애초에 아무 가망 없었다고 하면서, 내가 뭔가를 시작하기도 전에 내게서 등 돌리는 사람보다, 나더러 자신 없냐고 가볍게 건드리듯 물어 오는 사람이 더 견디기 힘들었다. 속된 말로, 그런 사람은 한 방 세게 때려 주고 싶었다. 능글맞게 나불대는 그 입을. 너덜너덜하게 짓이겨져서 한동안 벌릴 수 없도록.

   자신 있다고 하거나 자신 없다고 할 때의 자신自信은 자기에 대한 믿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나는 그 자신이 자신自身, 즉, 나라는 의미로 들렸다. 어떤 것 앞에 머뭇대고 있는 내게 “왜, 자신 없어?” 하고 누군가 물어 올 때마다, 나는 그가 내 안에 존재하지 않는 나를 알고 있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너는 어디에 있어?” 하고 따져 묻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였다. “왜, 자신 없어?” 하고 묻는 사람들에게 공격적인 충동을 느꼈던 건. 그들에게 당장 닥치라고 고함치고 싶었던 건.

   제발 조용히 하라고. 나도 내 안에 내가 없는 걸 안다고. 근데 나한테 그 사실을 일깨우지 말라고. 그들에게 그렇게 협박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무리 찾아 봐도 없다고. 내가 없다고. 내가 왜 없는지 나는 궁금하지 않을 것 같냐고. 당신보다 내가 더 궁금하다고. 궁금해 미치겠다고. 그 미치겠는 심정으로 한평생을 찾아 왔다고. 나를. 근데 없다고. 없다고. 그러니까 묻지 좀 마. 지긋지긋해 죽겠으니까. 그렇게 묻지 않아도, 1초도 빠짐없이 쪽팔리니까.’ 싶었던 것이다.

   “왜, 자신 없어?”는 내 존재의 한가운데를 파고드는, 내 본질을 툭 치는 물음이었다. 너는 어디에 있어? 너, 진짜 너.    

   사람마다 그런 식의 폭탄 점화點火 버튼이 제각각 있다고 들었다. 남들은 별 생각 없이 던지는 말이지만, 전해들은 사람에게는 자신의 모든 삶에 대한 총체적인 질문이 되는 그런 말. 

   너는 누구야?

   너는 어디에 있어?

   너는 지금 살고 있어?    


   인간의 분노는 모조리 도움 요청 신호라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 있다. 그 얘기가 이 얘기와 연결되어 있는 것 아닐는지.






   카쿠코 매거진 : http://cacuco.modoo.at/ 



매거진의 이전글 비밀을 나누고 싶은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