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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Jun 26. 2018

나 아닌 다른 건
안 갖고 가도 되는 곳


누가 나에게 심어 준 기대에 비하면, 나 혼자서 품은 기대가 나를 훨씬 더 오래 버티도록 만드는 것 같다. 그 기대가 있는 자리에서. 뭔가를 시작하게 이끄는 첫 마음이 기대일 경우에 그렇다. 


물론, 누가 기대감을 갖게 해 줘서 뭔가를 할 때에도 나는 좋은 기분과 괜찮은 성과를 얻을 수 있고, 그래서 그 일을 한동안 계속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일을 하는 것으로부터 만족할 만한 만족감을 경험하지는 못해서, 대단히 긴 기간 동안 그 일을 하지는 못할 뿐이다.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제외하고.


솔직히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때 누가 이걸 좋다고 해서 내가 이걸 좋아하는지’ 아니면 ‘단순히 내가 이걸 좋아하는지’. 나는 처음부터 오로지 내가 좋아해서 시작한 걸 할 때에야 헷갈리지 않는 기분으로 커다란 만족감을 맛본다. 누군들 안 그렇겠냐마는, 나 또한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가장 좋아하니까. 불순물이 섞여 있거나, 불순물이 섞여 있는지 아닌지 의심 되는 호감에는 다양한 수준의 불편함을 느끼니까. 


나에게는 특이한 심보가 있다. 좋아하는 것만큼은 혼자서 시작해 혼자서 이어 나가고 싶어 하는 심보. 살아가는 일이라는 게 누군가를 간섭하고 또 누군가로부터 간섭 받는 일과 필연적으로 닿아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오는 피로감에 지쳐서, 속으로 뭔가를 좋아하는 일만큼은 홀로 하고 싶은 것이다.


사람을 만날 때도 그렇다. 나는 주위 사람들이 잘 지내 보라며 엮어 주는 사람과 좀처럼 친해지지 못한다. 그 사람을 알기도 전에 그 사람에 대한 칭찬을 너무 많이 들어 버리면,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할 자리가 더 이상은 남아 있지 않는 것 같아서. 그 사람 좋다고 하는 말을 내가 좋아하는 건지, 진짜 그 사람을 내가 좋아하는 건지 명확히 구분해 낼 재주가 나에게는 없어서.


내가 마음을 두고 바라보는 대상에는 그 누구의 말도 묻어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말끔하고 고스란한 대상과 아주 느리고 올곧게 친해지고 싶다. 황급하게 떠밀리듯이 말고, 그 대상에게 또박또박 반하고 싶다. 내 언어로 그 대상에 대한 느낌을 말하고, 그 말을 오래도록 기쁘게 기억하고 싶다.


그래서 평소에 나는 청개구리 소리를 많이 듣는다. 하라고 하면 죽어도 안 한다 하고, 하지 말라고 하면 할까 싶어 한다고. 그런데 나는 내가 청개구리라서 어디에 미안하지는 않다. 누구랑 같이 하는 일에서는 그런 심보를 내세우지 않으니까. 평상시에는 누가 이러면 이러냐 하고 저러면 저러냐 하지만, 마음으로 뭔가를 할 때만큼은 내 목소리만 듣고 싶어 할 뿐이다. 이건 어딘가에 피해 가는 일이 아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나는 계속 이렇게 살아갈 것이다. 


나는 나만 관여할 수 있는 뭔가를 한두 가지쯤은 가지고 있어야, 숨통을 트고 살아갈 수가 있다. 사람마다 다양한 도피처와 안식처를 가지고 있는데, 내 경우 나의 도피처와 안식처는 이런 곳이다. 나 아닌 다른 것은 아무것도 달고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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