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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Jul 25. 2018

세상과 사람의 뿌리를 기억하는 일


나는 근본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말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좋아하는 것이다. 이 짤막한 두 글자 단어는, 똑같은 뜻을 가진 글자 두 개가 합쳐져 있는 형태다. ‘근’과 ‘본’ 모두 뿌리를 뜻한다. 


그렇다면 나는 뿌리를 좋아하는 사람인가.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세상과 사람의 뿌리가 되는 모든 것들을 좋아한다. 생명과 성장을 주관하는 것이 바로 뿌리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항상 내 뿌리 지점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그 소망을 직접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구체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 이걸 흔한 말로 하자면, 나는 내 초심을 수시로 되새기는 편이다.


나는 지금 왜 여기에 있나.

나는 여기서 뭘 하려고 했나.

그래서 나는 지금 뭘 어떻게 하고 있나.


꽃과 풀과 나무는 뿌리 없이 살아갈 수 없지만, 사람은 자신의 뿌리를 떠나서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뿌리는 실체로 존재하는 뿌리일 수도 있고, 관념적인 뿌리일 수도 있다. 실체로 존재하는 뿌리란 고향, 부모, 직업 등이 되겠고, 관념적인 뿌리란 좌우명, 목표, 신념 등이 되겠다.


그동안 자신을 먹여 살린 뿌리를 끊어내고 떠나서 새로운 뿌리를 틔우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쁠 리가. 어쩌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이동 현상이다. 나도 벌써 수많은 뿌리를 떠나 왔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항상 그때그때의 뿌리이고 ‘오늘 나를 지탱하고 있는 이 뿌리를 내리는 동안 나는 얼마나 진솔했는가?’의 문제이다. 사람마다 어딘가에 뿌리를 내리는 이유는 제각각이다. 나는 그 뿌리 내리기의 이유를 중요하게 여긴다. 만일 그 이유 속에 나 하나만 들어 있다면, 나는 그 뿌리 내리기가 실패라고 본다. 당장은 어찌어찌 살아갈 수 있어도, 결과적으로 내가 그 지점에서 양질의 삶을 일구어 나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철저히 이기적인 목적으로 시행한 이주와 정착은 그에 합당한 결과를 몰고 온다. 이것은 어디에서 들어서 알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직접 겪어서 알고 있는 것이다. 욕심은 반드시 탈을 일으킨다.


근본과 뿌리는 본질이라는 단어와도 그 맥락을 나란히 한다. 본질은 본바탕이라는 단어와 그 의미가 동일하다.      

나는 글을 쓰다가 어떤 막힘을 느낄 때 한 번씩 ‘근본적으로, 본질적으로’라는 단어를 빈 공간에 써 놓는다. “그래서 니가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스스로에게 물어 보는 것이다. 뭔가를 시작하는 지점에서는 일의 목적이 분명하게 살아나 있지만, 일을 진행하다 보면 일을 하는 것에 정신이 홀려서 일의 목적을 잠시 잊고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쓸 때 특히 자주 그렇다. 어떤 생각 한 조각을 글로 풀어내려 해 놓고, 그 생각과 상관없는 이야기를 쓰고 있을 때가 간혹 생긴다. 적지 않게 생긴다. 손에 쥐고 있던 나침반과 지도를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어딘가로 가는 행위에만 몰두하고 있는 내가 있다. 결국 길을 잃고 나서야 ‘내가 어디로 가려고 했지?’ 의문스러워하며, 목을 길게 뺀다. 


아마 나는 앞으로도 이런 시행착오를 드문드문 경험할 것이다. 나는 내가 이런 시행착오를 절대 겪지 않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런 실수의 빈도를 조금씩 줄이는 것, 그뿐이다. 나는 일의 근본을 골똘히 되뇌는 것과 일을 열심히 하는 것 두 가지를 흠 잡을 데 없이 완벽하게 병행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일을 하는 틈틈이 일의 근본을 되돌아보며, 내가 선택한 길을 최대한 덜 어렵게 가기를 바랄 뿐이다.


내가 살아가는 일에서 너무 많은 길을 잃어버린 탓에 극심한 어지럼증과 탈진 증상에 허덕거리고 있을 때, 나를 흔들어 깨워 준 말은 전혀 화려하지도 유창하지도 않았다. 그 말은 지극히 평범해서, 다섯 살짜리 꼬맹이도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지금 뭐하고 있어?”

“왜 그러고 있어? 왜…….”


정말 궁금해서 묻는 사람의 얼굴로 나에게 그런 말을 건네 준 사람들은 어깨나 턱에 힘을 주고 ‘근본, 뿌리, 본질, 본바탕’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들은 어려운 문장을 하나도 구사하지 않고 나를 내 뿌리로 단숨에 데려다 주었다. 그럴 때마다 ‘모름지기 격려와 위로와 조언이라는 것은 이래야 한다.’는 느낌을 크게 받았다. 마음을 진정으로 두들기거나 쿡쿡 찔러 흐리멍덩한 내 눈을 또렷이 뜨도록 하는 것은, 그렇게 일상과 가장 가까운 말들이었다. 이해하는 데 걸리는 특별한 과정이 필요 없어서, 가슴팍에 바로 부딪쳐 오는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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