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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Feb 20. 2019

기다림이 사라져 가는 시대

 

  언제부턴가 수많은 기업들이 '더 빠른 속도'를 두고 피 터지는 경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핸드폰 문자 메시지 전송 속도, 인터넷 접속 속도, 대출 속도, 상품 배송 속도, 체중 감량 속도, 송금 속도, 요리 완성 속도, 등등. 세상은 점점 더 '즉석'의 세상이 되어 갔다. 

   예전의 나는 그 변화가 좋았다. 내심 답답했던 기다림의 순간들이 무서운 속도로 단축된다니. 특히 인터넷 속도의 향상을 나는 가장 반가워했다.


   나는 1990년대 초기에 태어났는데,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때까지만 해도, 인터넷은 전화선을 통해 접속할 수 있었다. 전화선을 통한 인터넷 접속 속도는 엄청나게 느렸다. 따라서 컴퓨터를 가지고 숙제 한 번 하려면 엄청난 시간을 소비해야 했다. 인터넷 창 하나가 다 뜨는 데까지 몇 분씩 걸리기도 했다. 지금은 5분, 10분 투자해서 될 일을 하기 위해 그때는 30분, 1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자세한 기억은 없는데, 그때 컴퓨터를 바꿀 때마다 컴퓨터 성능이 엄청나게 좋아져 있다는 걸 크게 느낄 수 있었다. 인터넷으로 할 수 있는 것도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졌다. 미니홈피로 대변되는 1세대 SNS도 그 무렵 출시되었다. 아마 그때가 인터넷 시장의 급성장이 일어났던 시절 아니었을까.





   요즘은 어떤가. 인터넷 창 하나 뜨는 데 '걸리는 시간'이랄 게 없다. 링크나 배너 같은 걸 클릭하면 바로 그 창이 뜬다. 말 그대로 바로. 오프라인으로만 할 수 있었던 일들을 이제는 인터넷으로 간편하게 처리할 수 있다. 오프라인 시장에서 아예 온라인 시장으로 완전히 넘어온 기업들도 있다.

   그 끝을 짐작하기 어려운 기술 발달 덕택으로, 어떤 종류의 기다림은 거의 완벽에 가깝게 해결되었다. 그래서 나는 '기다림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어떤 손해인 시대에 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간혹 한다. 기술 발달이 기다림의 자리를 갉아먹을수록, 기다림의 순간을 못 견뎌 하는 나를 만날 때가 잦아졌다. 인터넷이 갑자기 느려질 때, 핸드폰이 잘 안 될 때, 원래는 빨랐던 일 처리가 문득 더뎌질 때, 택배가 좀 늦게 올 때, 어쩔 줄 몰라 하는 내가 내 멱살을 틀어쥐고 흔들어대는 것이었다. 이게 왜 이러지? 이제 어떡하지? 어떡하지?

   그런 경험이 쌓일수록, 왜 "기술 발달과 의식 발달은 병행되어야 한다."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균형 잡는 연습을 해야 했다. 기술에 모든 걸 의지하지 말고, 기술이 미처 해결할 수 없는 부분들을 유념하고, 기술의 갑작스러운 부재에 대비하는 등의 연습을.





   기술이 내 일을 대신해 주는 경우가 많아질수록 나는 한 번씩 섬뜩해진다. 기술이 나를 돕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기술의 말단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서. 기술이 주인인 세계에서 기술을 실현시키는 하나의 도구로 살아가는 것 같아서.

   그래서 내가 우표를 사다가 편지를 쓰는 등의 아날로그식 취미를 고수하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너무 빠르게 흘러가는 시절 속에서 나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나는 적당히 느려지는 순간들을 귀하게 가지며, 나라는 사람의 안팎 생김새를 골똘히 뜯어보곤 한다. 내가 여기에 있구나, 한다. 기술에 너무 많은 외주를 주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의 이런저런 부분들을 직접 해 보며, 내가 내 생의 주체자라는 인식에 덧칠을 하곤 한다. 내가 내 생을 이끌어 가고 있구나, 한다.

   나는 기술 발달에 부정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기술 발달이 인류의 삶의 질에 미치는 좋은 영향력을 나는 반가워하고 고마워한다. 다만 나는 항상 '사용자의 지혜'를 고민하는 사람. 발달된 기술을 내가 어떻게 하면 지혜롭게 사용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하며 새로 열리는 시대의 문 너머로 또 한 발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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