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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Feb 15. 2019

생각을 분명하게 말하는 일



   생각하기와 말하기의 목적에 대해 문득 생각해 봅니다. 나는 많은 순간 '그럴듯하게 생각하기. 그럴듯하게 말하기.'의 덫에 빠져 있었다는 생각이 잇따릅니다. 

   그럴듯한 말은 언뜻 듣기에 분명한 생각을 펼쳐 내는 것 같지만, 실제 그 속은 안개로 자욱합니다. 그것은 나 스스로 내 생각을 제대로 정리하거나 정립하지 않고 내뱉은 말이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포장만 있고 내용물은 없는 말. 너무 포괄적으로 말해서 결국은 당장의 상황이나 당사자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말.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죠.

   "싸우는 것은 좋지 않잖아."

   "타인에게는 친절하게 행동하는 게 좋겠지."

   이것들, 일반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일반적인 문제에서만 맞는 말입니다. 보통은 그런 거죠. 하지만 수많은 변수와 상황의 개별성 앞에서는 공허해지고 마는 말입니다. 

   세상을 파괴하는 추악함 앞에서 "그래도 싸우는 것은 좋지 않잖아."라고 말하는 사람을 본다면 우리는 어떤 기분을 느낄까요. 애꿎은 사람들에게 극심한 피해를 주는 사람을 두고 "그래도 타인에게는 친절하게 행동하는 게 좋겠지."라고 하는 사람을 볼 때는……. 아마 많은 사람들이 '저 사람이 지금 대체 무슨 얘길 하나.' 싶을 것입니다. 내가 말하는 그럴듯한 말하기는 이런 것입니다.





   내 나름대로 중요하다고 여기는 자리에서 나는 그럴듯하게 말하려는 나를 자주 발견했습니다. 빨리 뭐라도 말해서 동의나 공감이나 인정을 받으려고. 생각을 구체적으로 해 나간다는 건 아무래도 귀찮고 번거로워서. 내가 대강 말해도 사람들이 어련히 내 속내를 알아 주겠지, 싶어서. 혹은 내 말하기 기술이 이미 완전하다고 자만해서. 

   사실 내가 그렇게 말하는 것이 '문제'랄 것까지는 없지 않느냐는 생각이 그동안 은연중에 있었습니다. 사람이 매사를 너무 깊이 파고드는 것이 오히려 문제이지 않겠냐는 유혹의 말은 아찔하게 달콤하였습니다.





   말이라는 것의 포장재에만 신경을 쏟을수록, 나는 주체적인 한 인간으로서의 삶으로부터 멀어져 갔습니다. 나는 내 안에서 나만의 뭔가를 꺼내거나 그것들을 돌보는 방법을 잊어만 갔습니다. 궁극적으로 나는 나를 상실하기 시작했습니다.


   불명확한 의견을 밝히는 일은 여러모로 안전합니다. 거기에는 애초에 명확한 의견이랄 게 없어서, 반대 의견을 만날 가능성이 거의 없으니까요. 되도록 아무와도 부딪치고 싶지 않아 했던 내 마음은 내가 없는 곳으로 나를 이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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