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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다빈 Aug 14. 2019

비관에서 낙관으로의 긴 여정

     

며칠 전, 재미 삼아 ‘히포크라테스 기질 테스트’라는 것을 해 보았다. 그리고 ‘우울-점액’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우울과 점액이라는 두 가지 측면이 나머지 두 가지 측면에 비해 압도적인 득표를 하였다. 다혈과 담즙은 도합 세 표를 받았나. 우울 득표수는 점액 득표수의 두 배 정도 되었다. 


나는 결과 해석을 여러 군데에서 읽으며, 해석의 중심적인 부분이 뭔지 살펴보았다. 부정적인 마음가짐을 조심하지 않으면 제 명을 다 못 채우고 사망할 수도 있다는 해석을 읽으면서는, 뭔가에 들킨 것처럼 마음이 움쩍하였다.


비관과 염세는 내 오랜 친구였다. 인생을 어둡게만 보고 슬퍼하기. 앞일이 잘 안 될 거라고 미리부터 생각하며 절망하기. 세상을 괴롭고 귀찮은 것으로만 판단하며 모든 것을 안 좋게 생각하기. 


겉으로 아닌 척을 아무리 해 봐도, 내 안의 시커먼 눈동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거기에는 눈꺼풀과 흰자위도 없었다. 감기지 않으면서 어두운 눈빛을 끝도 없이 쏟아내는 두 눈이 언제나 내 안에 있었다.  


나는 걱정도 불안도 많은 사람이었고, 그 숱한 걱정과 불안 끝에 환한 것은 거의 없었다. 좋은 미래를 마음속에 가져다 놓는 법을 나는 몰랐다. 아직 살아 보지 않은 생에 즐거운 일이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 쪽으로 손가락을 뻗는 법에 대해서도 무지하였다. 그런 기쁜 상황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천진난만하게 뛰어 놀기나 해야 할 나이를 살 때부터 나는 이미 심각해져 있었다. 그것이 놀림감이 된다는 것을 알아도, 나는 나를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생겨 먹은 것을.







꾸준히 좋은 마음을 먹고 좋은 생각을 하는 것이 나에게는 언제나 최대 난제였다. 물론 내가 365일 24시간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산 건 아니지만(그랬다면 여기 내가 없을지도 모른다). 필요한 만큼 태평해지거나 털털해지는 것이 나에게는 늘 멀고 먼 일이었다. 그런 일이 내 일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나는 낙관주의자가 되고 싶었다. 낙관주의자가 되려는 마음이 늘 내 안에 있었다. 비관주의자로 살아가는 것에는 좋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점을 모를 수가 없었으니까. 작은 상처를 물어뜯어 크게 키워 놓는 일들을 그만 좀 하고 싶었고, 내가 내 머리 위로 드리워 놓은 먹구름을 싹 치우고 싶었다. 가짜로 말고 진짜로. 


하여 나는 살아가는 동안 수도 없이 시도하였다. 내 가슴속 어둠과 물기를 몰아내기 위해 나는 수시로 애썼다. 괜찮다는 말을 연습하고, 별일 없이도 웃는 법을 연습하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거기다가 빗자루질 하는 연습도 했다. 부정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은 다르다는 점을 나 자신에게 끝도 없이 설명하기도 했다. 앞날의 행복을 그려 보는 일 모두가 허황한 망상인 건 아니라는 점을 스스로에게 말해 주면서 나는 여러 차례 버벅거렸다. 그 말을 완전하게는 믿지 못해서. 실천이 따르는 긍정적인 매일이 모여 좋은 미래를 만든다는 점을 머리로는 알아도, 가슴으로는 그 점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나를 도왔다. 내가 그 일에 실패할 때는 내 곁을 지키며 나를 다독였고. 낙관이라는 과목에서는 언제나 열등생이었던 나를 열렬하게 사랑하여서, 그들은 축축한 장마철에도 땀이 나도록 나를 안고 있었다. 그들 중 일부는 탈진하여 나를 떠났고, 그들 중 일부는 여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한 번씩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괜찮니?” 묻고 “괜찮으면 됐다.” 한다. 여유가 생긴 내가 그들에게 괜찮냐고 물으면, 그들의 눈은 하나같이 그렁해진다. 그 말이 뭐라고.


낙관주의자가 되려는 내 여정은 순탄하기도 하고 험난하기도 하였다. 불규칙적인 슬럼프가 도래하면, 나는 그동안 애써 만들어 온 태도를 내려놓거나 잃어버리곤 하였다. 옛날 모습으로 돌아가, 맨손으로 동굴을 파고, 그 안에 들어가 살았던 것이다. 지긋지긋할 만큼의 슬럼프가 나를 관통하고 지나갔다. 그 중 가장 크고 질긴 슬럼프가 작년에 있었다. 다행히 그것은 최후의 슬럼프였다.     







작년, 연초부터 내 마음의 중추적인 부분이 붕괴되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너무 안 돌보긴 했는데. 아무튼 봄이 오기 전부터 나는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모든 감정이 내 것 아닌 듯하였다. 밝은 게 거의 없는 흑백 영상 속에서 포박당한 채로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것 같았다. 그런 와중에 안 좋은 데가 있어 작은 수술을 한 차례 했고, 체력 회복이 더뎌 밤낮 없이 잠만 잤다. 눈만 뜨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고, 많은 순간 나는 복받친 울음을 되삼키지 못했다.


체력 회복을 어느 정도 한 다음 『군함도 징용공 박정락』 초고 작업을 시작했는데, 일제강점기 상황에 대한 울분 때문에, 초고 작업을 하면서 수시로 몸살을 앓았다. 마음 아플 곳이 더는 없으니 몸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해 12월,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폭력적인 경험을 하였다.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감이 박살나는 순간이었다. 그나마 나를 지탱해 주고 있던 내 마음의 나머지 부분들이 한 순간에 붕괴되고, 1월과 2월을 암전 상태로 보냈다. 그 모든 순간을 통틀어 내가 제대로 숨 쉴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글을 쓸 때였다. 글을 쓸 때만큼은 행복하였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싶게, 글을 쓸 때만큼은 내 삶을 잊을 수 있었다. 그 망각의 시간이 있었기에 내가 마저 부서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올해 1월에는 정말 두려웠다. 너무 살고 싶지 않아서. 세상이 너무 추악하게만 보여서. 그만큼 작년에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작년 한 해 꽉 채워 괴로워하고 났더니, 더 살아갈 힘이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았다. 장편소설 퇴고 작업을 시작해야 하기도 했다. 일단은 하던 일에 의지하며 하루하루 계속 살아갔다. 그러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 마음속에 맺힌 것들을 풀지 않고 내가 이 세상을 버린다면, 다음 생에서 이 응어리를 다시 만들어 가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생에서 내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는 다음 생에서 다시 경험해야 한다고 나는 믿으니까. 그런데 당장은 나에게 아무 힘도 없었다. 


그래서 일단 잘 먹기로 했다. 잘 먹고 잘 자는 것에 초점을 두기로 했다. 대중없던 잠자리 시간이 일정해지고, 끼니의 내용이 충실해졌다. 체력 회복을 하면서 술도 끊고 커피도 끊고 명상을 많이 했다. 조금이라도 해롭다 싶은 것은 철저하게 끊어내고, 내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는 거라면 조금 힘들어도 참고 했다. 나는 내가 바닥을 치고 올라가고 있다는 느낌을 수시로 받았다. 더 나빠질 것이 없는 상황을 지나친 것 같다고.


몸이 제 궤도를 되찾기 시작하면서, 살기 싫다는 마음의 대부분이 해소되었다. 명상과 마음 공부를 계속하면서, 나는 다시 내 정신세계를 가다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나를 억누르고 해치는 생각과 감정들 전부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들이 내 본심은 아닌 것이다. 


본심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다만 텅 비어 밝고 맑을 뿐이다. 그 화사한 고요와 닮은 평화, 기쁨, 사랑이 본심이고, 그 외적인 것들은 전부 본심이 아니다. 나는 나를 지나쳐 가는 생각과 감정들이 내 것인 줄 알아서, 그것들을 붙들고 살았다. 그것들이 나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악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나는 어딘가에 잘못 얽힌 게 아니었다. 내 인생을 이렇게 얽은 것은 내 두 손이었다.


그걸 깨닫고부터 낙관으로의 여정이 아주 순조로워졌다. 비관과 염세가 내 세계의 문을 두드릴 때, 그것들이 내 허락 없이 내 세계로 들어와 활개를 치고 다닐 때, 나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다. 내가 그것들을 붙들지 않는 이상, 그것들은 나에게 붙들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낙관으로의 여정 속에 있다. 철마다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배운 바를 실천하며 살아간다. 여전히 일이 바빠지면 몸과 마음에 소홀해지지만, 그 소홀함이 나를 위태롭게 하기 전에 내 상태를 인지하려고, 순간순간 깨어나고자 한다.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올 한 해. 좋은 마음과 좋은 생각들을 아주 많이 가졌다. 일종의 한계를 뛰어넘으며.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마음과 생각들을 단순히 밀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마음과 생각은 건드릴수록 더 커진다는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이제는 그냥 내버려둔다. 내가 손대지 않고 내버려두는 것들은 내 안에 자리 잡지 못한다. 그동안 내가 줄기차게 해 온 곱씹기는 초대였다. 내 안에 살라는 초대. 


나는 무심히, 무심히, 행복 쪽으로 걷는다. 내가 내 안을 즐겁게 비울 때 그 안으로 저절로 고이는 것이 행복이라는 사실은 여전히 나를 놀라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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