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수상을 통한 단행본 출간을 꿈꾸고 있나요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11월 말이었다. 어느 평범한 화요일, 브런치팀에서 ‘13회 브런치북 대상 최종 후보작에 선정되셨습니다’라고 연락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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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한번 유도해보겠습니다>라는 제목으로 2023년도에 즐겁게 작성했던 유도 에세이였다. 내 인생에 이런 날도 오는구나, 하고 무진장 기뻤다. 게다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출판사에서 만드는 에세이 시리즈에서 내 글을 대상 최종 후보작으로 선정해줬다는 게 아닌가. 대상이든 뭔 상이든 해당 출판사와 작업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수도 있으니 설레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기쁜 마음에 설문조사 링크로 들어가서 출간 가능 요건 등에 대해 문제가 없다고 모두 체크하고 인적 사항도 적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브런치팀에서 다른 플랫폼에 내 에세이가 동시에 올라가 있는데 비공개 처리로 돌릴 수 있느냐는 메일이 왔다. 번뜩 작년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잊고 있었던 알라딘 투비컨티뉴드의 투비로그였다.
2023년에 브런치북을 처음으로 브런치북 공모전에 응모했다가 고배를 마셨다. 그리고 다음 해에는 같은 브런치북으로는 당연히 안되겠거니, 하고 내 글에 자신감을 잃고 응모하지 않고 글을 묵혀 두고 있었다. 그러던 중 투비컨티뉴드에서 연락이 와서 브런치와 중복 연재를 해도 되니 투비로그를 만들어서 노트를 발행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온 것이다. 회당 2만원씩, 10회를 연재해서 20만원을 지급해주겠다고 했다. 나는 어차피 눈길도 못 받고 있는 글이니 다른 플랫폼에 노출도 시키고 원고료도 받자, 라는 생각에 무심코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자세히 읽어보지 않은 채…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그때로 돌아가고만 싶다. 계약서를 꼼꼼히 읽어봤어야 했는데, 일단 어떤 기회를 준다는 생각에, 급한 마음이 화를 불렀다. 계약서에는 해당 원고를 올리고 마지막 게재일로부터 3년이 지날 때까지 글을 비공개로 돌리거나 삭제할 수 없다는 조항이 있었다. 그리고 2차 저작권에 대해서도 투비컨티뉴드 측에 ‘우선 검토권’이 있다.
아무 생각없이 2024년 5월부터 7월까지 브런치북에 엮인 열 편의 글을 1주에 한 편씩 투비컨티뉴드에 순차적으로 업로드했다. 계약서의 내용대로 나는 투비로그에 업로드된 10편의 글을 2027년 7월 16일까지 지우거나 비공개 처리하지 못한다. 브런치팀으로부터 수상작의 요건과 관련된 내용을 전달받은 뒤 급히 상황을 전하며 협의가 가능할지 여러 차례 투비컨티뉴드 담당자에게 문의했다. 그러나 계약 기간까지 비공개 처리는 불가하다고, 만약 출간할 거라면 무료 연재되던 걸 종이책 정가를 붙여서 유료 연재로 전환해주겠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결국 브런치팀으로부터 수상작에서 제외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여러 예외적인 사례들이 있으니 출판사와도 조율이 가능할지 논의해보겠다고 했지만, 결국 타 플랫폼에 올라가 있는 글을 삭제할 수 없다는 점과 다른 계약이 걸려있는 원고이므로 수상작 자격에서 박탈됐다. 결국 죄다 무산됐다고 투비컨티뉴드팀에 메일을 보내니 ‘비슷한 사례가 있었지만 다른 출판사와는 문제없이 책 만들어왔다. 브런치와 원만한 협의 바란다.’라는 답변을 받았다.
계약서가 무서운 줄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계약서 문제로 기회를 잃는 여러 작가들의 사례를 들으면서 내 얘기는 아닐 줄 알았다. 나는 안 그럴 줄 알았다. 머리로는 내가 백번 실수했고 백번 잘못했다는 걸 알겠는데 가슴으로는 피눈물이 난다. 결국 <제가 한번 유도해보겠습니다>에 실린 열 편의 에세이는 그냥 죽은 원고가 된 것이다. 2027년 7월까지, 아무도 보지 않고 하루에 고작해야 1-2회 방문자가 있는 투비로그에 묶인 채로.
정말 즐겁게, 열심히 썼던 글인데….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에 많이 울고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졌다. 글도, 운동도 다 싫어졌다. 그러나 이 화의 꼭지점이 향하는 건 결국 ‘나’다. 모든 걸 망쳐버린 건 나다. 나 때문이다.
첫 번째 잘못은 “계약서를 신중하게 읽지 않은 것”. 애초에 단행본 형태로 원고를 묶고 싶었던 건데도 온라인 게재권이 담긴 계약의 기한, 범위 등을 꼼꼼히 살피지 않았다. 2차 저작권에 대한 내용도. 심지어 브런치북 공모전 참가 자격조차 꼼꼼히 읽지 않은 것이다. 내가 그거라도 꼼꼼히 읽었다면 브런치와 출판사 관계자분들이 이 죽은 원고를 읽는 데에 시간을 허비하지도 않았겠지.
두 번째 잘못은 “내 원고에 대한 신뢰가 부족했다”. 첫 번째 브런치북 응모에서 떨어지고 난 뒤, 내 글에 자신감을 잃었다. 종종 출판사들로부터 들어오던 출간 제의도 줄고 있었다. 어차피 묵혀둔 글에 불과하니까, 라며 내 글을 낮잡아 보고 고작 이십만 원에 원고를 애매한 계약서로 묶어버렸다. 내가 내 글의 가능성을 믿고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면 좀더 신중하게 계약 여부를 검토하지 않았을까.
투비컨티뉴드와의 계약이 브런치북 수상에서 발목을 잡은 건 맞지만 그들이 잘못한 건 없다. 그들은 자신들의 콘텐츠 플랫폼을 키워가고 있을 뿐이고 정당하게 고료를 지불했다. 브런치북을 목표로 하고 있었으면서도 함부로 타사 플랫폼 계약서에 서명한 건 나니까, 다 내 잘못이다. 그렇기에 브런치북 공모전을 통해 출간을 꿈꾸고 있는 이들이라면 타사 플랫폼과의 계약은 신중하게 고민해보길 바란다. 단순히 여러 플랫폼에 내 콘텐츠가 노출되면 좋은 게 아닌가, 라는 생각에 무심코 서명했던 계약이 결국 일생일대의 기회를 저버리게 만들었다. 나는 여전히 너무 서툴고, 마음이 급하다.
2027년의 7월이 되어서 <제가 한번 유도해보겠습니다>가 투비컨티뉴드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즈음에, 과연 그 원고에는 생명력이 남아있을까. 그리고 그때의 나는 유도를 할 수 없는 몸이 되어있을텐데… 마지막 적기에 찾아온 기회를 놓쳐버렸다는 생각에 마음이 찌르듯이 고통스럽다. 한동안은 이 수렁에서 못 빠져나올 것 같다….
무엇보다 내가 쓴 원고들에게 미안하다. 열심히 썼던 2023년의 그 시간들, 내가 너무 좋아했던 유도... 너무 좋아했던 글쓰기... 좋아했던 것들을 다 잃어버린 기분이다. 멍청한 내가 함부로 계약서를 쓰는 바람에... 스스로를 죽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