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망해버렸지만, 그럼에도 다시 해보자.
브런치북 대상 최종 후보작에서 제외된 당일, 정말 많이 울었다. 몸이 아픈 것도 아닌데 퇴근 이후에 운동도 하지 않고 글도 쓰지 않고 밥도 먹지 않고, 침대에 누워서만 온전히 저녁 시간을 보낸 건 처음이었다.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에 눈물이 나고 스스로에 대한 자책감을 견딜 수가 없었다. 짐승처럼 '으으' 소리내며 앉았다가 일어났다가, 울었다가 가슴을 쥐어뜯었다가. 어떻게 해야 나아질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분명 그주 월요일, 화요일까지 나는 일상의 행복에 젖어 살아가고 있었다. 애초에 브런치북에서 대상 최종 후보작이라는 소식을 전하지 않았더라면, 그럼 나는 여전히 그 평안한 미온수의 행복에서 유영하며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었겠지. 아니, 애초에 글 같은 거 쓰지 않았더라면, 그냥 회사 열심히 다니면서 아무 생각없이 운동에만 집중했더라면. 잃어버렸을 때 슬퍼질 것들을 만들지 않았더라면 좋았을텐데.
나는 늙은 개의 임종을 지키지도 못하고 갑작스레 떠나보냈을 때 그렇게 다짐했었다. 다시는 개를 키우지 않겠다. 잃었을 때 미어지게 아플 것 같은 존재는 만들지 말자. 그런데 또 공들여서 사랑하는 무형의 존재를, 무심코 신이 나서 만들어 버렸다. '무도인 박대리'라는 아바타를 만들고 힘껏 사랑했다.
근데 내 손으로 멍청하게 아무 계약서에나 서명해버린 것이다. 단돈 이십 만원에 간절히 원하던 도전의 기회를 잃었고, 2차 저작권에 대한 우선 검토권도 그들이 가지고 있으며, 그곳에 올라가 있는 글은 2027년 7월까지 지우지도 못한다. 공들여서 즐겁게 썼던 글이 아무도 보지 않는 벽촌에 묶여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기분이다. 내가 멍청해서 내가 너무 소중하게 생각했던 유도의 기억들이 헐값에 팔려갔다. 내 손으로 저지른 일이니 누굴 탓할 수도 없다.
그들은 자기네들의 플랫폼을 그럴싸하게 키우기 위해 경쟁사 플랫폼에서 작가들을 "정당하게" 빼오고 있을 뿐이다. 자신의 글을 찾아줄 지면이 간절한 무명 작가들의 갈증을 너무 잘 알기에.
"그때의 너에게는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어. 그때는 그 제안이 너에게도 반가웠잖아."
내가 울며 토로하면 친구들은 그렇게 토닥여줬다. 맞는 말이다. 그때의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어. 다만 그때 조금만 더 계약서를 꼼꼼하게 살펴봤더라면, 좀더 내 글의 가능성을 믿었더라면. 희붐하게 살아가는 내 자신이 미워져서 견디기가 힘들었다.
저녁 나절 내내 서러움과 안타까움에 울음이 멈추질 않아서 호흡곤란이 올 지경이었는데, 뜨거운 물 아래에 서 있으려니 마음이 진정되고 체온도 돌아왔다. 왜 영화 속에서 슬픔에 잠긴 인물들이 옷도 벗지 않고 샤워기 아래에 무너져있는지 알 것 같았다. 누가 안아주고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가까스로 잠들었다.
다음날 유령처럼 출근해서 일했다. 글도 운동도 싫은 와중이었지만, 지금의 속상한 상황을 글로 정리해서 브런치에 올렸다. 자상한 편집자 Y과장님이 메시지를 주셨다. 힘내라고, 상황이 좀 안타깝게 됐지만, 계속 써보라고. 2027년까지 계약에 묶인 글들을 다시 다른 목소리로 정리하고, 새로 쓰고, 새로 그리고, 다른 이야기도 쓰고... 과장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기운이 났다. 아, 간밤에 그렇게 고통스러웠던 건 그곳에 내 글이 2027년까지 옴짝달싹 못하고 묶여있다는 데에서 오는 무력감 때문이었구나. 다시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나니 마음이 분주해졌다.
나는 다시 쓰기로 했다. 이번에는 이렇게 망해버렸지만, 이 멍청한 작가의 글을 다시 누가 좋게 봐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내 글을 좋게 봐줬다는 거니까, 부질없는 일이 될지라도 다시 해보자-.
이번 실패에 대해서 앓는 소리는 여기까지 하려 한다. 나도 더 아프기도 아쉽기도 지겹다, 그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