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

부서지며 강해지는, 유도 하는 “몸”

by 무도인 박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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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처음 체육관에 다녀본 건 스무 살을 앞둔 겨울이었다. 수능 시험과 여러 차례의 수시 논술 시험을 마치고 갖은 마음 고생 끝에 원하던 대학의 국어국문학과에 붙었다. 기쁨도 잠시, 엄마는 이제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보자며 나를 당신이 다니던 동네 헬스장에 데려갔다.

“넌 완전히 나야. 이 허벅지… 엄마는 너만할 때 바지가 남아난 적이 없었다.”

내 기억 속의 엄마는 에어로빅을 하거나 헬스장에 다니거나 그 와중에 주말마다 등산에 가거나, 늘 운동을 하는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하체 비만 콤플렉스가 심했던 엄마는, 당신과 똑 닮은 둘째 딸을 낳았다. 그리고 나 역시 “바지 살인마”였다. 초등학교 때는 습관적으로 허벅지 안쪽의 바지 솔기 부분을 확인하곤 했다. 혹시나 잦은 마찰로 인해 부지불식간에 터져 있을까봐.

그렇게 살을 빼러 끌려간 헬스장 첫날, 엄마의 감시 속에 나는 런닝머신에서 내려오지 못했다. 억지로 3-40분 가량을 뛰고 내려오니 천천히 걷는데도 세상이 옆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기분이었다. 엄마에게 인생 첫 스쿼트를 배우다가 어지러워서, 양손에 쥐고 있던 덤벨을 발등에 떨어뜨렸다. 아픈 줄도 모르고 어버버거리고 있으려니 엄마의 헬스장 친구들이 ‘애기, 어디 아픈 거 아냐? 너무 무리한 거 아냐?’라고 물었다. ‘아유, 운동 부족이야! 운동 부족!’이라고 엄마가 너스레를 떨었다. 엄마가 부끄러울까봐 중심을 잡으려고 끙끙거렸고, 기어코 샤워장에 가서 나는 토를 해버리고 말았다. 벗은 몸들 사이로 게워내면서 ‘엄마가 얼마나 나 때문에 부끄러울까’라는 생각에 내내 “엄마, 미안해, 미안해.”라고 중얼거렸다.

이십대 초반까지의 내게 운동은 대략 그런 것이었다. 하기 싫고 괴롭지만 살을 빼기 위해 꼭 해야하는 것.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어서 무작정 런닝머신을 뛰거나 헬스 기구들 사이를 산책하거나, 덜덜이를 하며 물을 마시는 것. 엄마와 운동하는 게 눈치 보이고 버거웠던 나는 비용이 저렴한 동사무소 헬스장을 가끔씩 숙제처럼 들락거렸다.


좋아하는 운동을 만나고

스물두 살, 처음 유도관에 들어갔던 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이 지하 도장에 무서운 사람들이 잔뜩 있을 거라고, 얻어맞는 건 아닐까 상상하며 겁을 잔뜩 먹고 들어갔다. 도복을 받고 얼떨결에 배밀기, 전방 낙법 등 난생 처음 취해보는 동작들을 배웠다. 첫날이라 제대로 된 공격 기술을 배운 것도 아닌데, 도장을 나와서 ‘내가 유도를 했어’라는 두근거림에 집으로 가는 길과 정반대 방향으로 한참을 걸어갔다. 마치 처음으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됐을 때의 충격처럼, 그 생소한 흥분이 좀처럼 가라앉질 않았다. 그건 어떤 향후 십 년에 대한 복선이었을까? 살을 빼기 위한 숙제라는 생각은 지워지고, 새 기술을 배우고 완성하고 그것을 성공했을 때의 쾌감이 내 일상을 가득 채웠다. 대련을 하다가 깔끔하게 메치기를 성공한 날이면 집에 가는 버스와 잠들기 전 이부자리에서 한판의 기억을 계속 되새겼다. 유도장에 가는 시간이 늘 기다려졌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고, 이직을 하는 내내 내 일상에는 늘 유도가 함께했다. 학교 근처에서 직장 근처 체육관으로 옮겨다니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유도를 배웠고,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고, 함께 도복을 입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와, 등근육 이거 뭐야. 얘 광배근 좀 봐!”

그렇게 2-3년 정도를 정신없이 유도와 점철된 삶을 살아가던 중, 종로 YMCA의 넓은 탈의실 안에서 같이 유도를 하던 언니가 벌거벗은 내 등을 가리키며 말했다. 광배근이 뭐지? 거울에 비춰본 내 등에 제법 묵직하게 양쪽 겨드랑이 아래의 근육이 커져 있었다. 등판이 양쪽으로 커진 것만 같았다. 배밀기를 많이 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쭈부(수련용 고무 튜브)를 많이 당겨서 그런 건지. 나는 부피가 큰 내 몸이 처음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날 이후 마치 날개가 돋기라도 한 것처럼 광배근은 내 자랑이 됐다. 원피스를 입다가 등 지퍼가 좀처럼 올라가지 않을 때 예전 같으면 살이 쪘나 싶어 우울했겠지만, 이제는 발달된 광배근 때문인가 싶어서 오히려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언제부터인가 스스로가 몸무게에 크게 연연하고 있지 않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좋아하는 운동을 찾고 나서, 자연스레 나는 유도가로서의 내 몸을 사랑하게 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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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지고 싶다는 욕심

살에 대한 걱정은 잊은 지 오래다. 그저 유도를 잘하고 싶고, 강해지고 싶었다. 멋진 한 판을 만들어낼 수 있었으면 좋겠고 나보다 크고 강한 사람을 ‘유능제강’의 원리로 이겨보고도 싶다. ‘체격이 크신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힘이 세요?’라고 누군가 말해줄 때면 괜히 우쭐해졌다. 금메달을 따고 싶다. 힘을 빼고 즐기듯 유도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자꾸만 욕심이 난다. 이런 욕심은 으레 부상을 부른다. 내가 다치든, 상대가 다치든.

2016년 즈음, 유도 대련을 하다가 결국 왼쪽 무릎 내측 인대를 다쳤다. 아주 끊어진 건 아니었지만 손상된 정도가 심해서 4-5개월 정도 목발을 짚고 다니며 운동도 쉬어야 했다. 종로의 집에서 강남까지 목발을 짚고 출퇴근하는 일은 고역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약 십여 년 후인 얼마 전,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부위를 똑같은 기술인 왼쪽 빗당겨치기를 걸다가 또 다쳤다. 삼십 대 중반에 접어들고 나니 조금만 무리해도 팔꿈치, 엄지발가락, 발목 등 이곳저곳의 인대가 조금씩 찢어지곤 했다. 이러다가 언젠가 크게 한번 다치고 강제로 쉬게 되겠구나, 라는 불안한 예감이 있었지만 보호대를 3개 차고서까지 유도를 계속했다. 어찌보면 목발을 짚게 된 건 정해진 결말이었다. 재택근무를 밥먹듯 하며 무릎을 굽히지 못한 채 여름을 보냈다. 다시 도복을 입을 수 있을까? 아직 나는 더 유도를 하고 싶은데…. 계속 그런 철없는 생각을 하며.


절뚝이던 가을을 지나 겨울로 접어드는 지금, 보호대 없이 계단을 오르는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무릎을 회복하며 운동을 조금씩 시작하고 있다. 그간 유도는 내 몸에 크고 작은 여러 선물을 안겨줬다. 큰 광배근과 유연함을, 그리고 재생되기 어려운 정도의 인대 손상부터 변형된 손가락 마디 등. 유도를 할 수 있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안타깝고 소중하기에, 나날이 나약해지는 몸마저도 애달프고 사랑스럽다. 언제든 오늘이 마지막으로 유도하는 날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되새기며 띠를 묶는다. 정말 마지막 날이 오면? 그 다음날은 뭘해야 할까.

또 사랑하는 무언가를 찾을 것이다. 유도가 선물해준 사랑스러운 몸뚱아리로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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