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세계"를 살아가는 일
얼마 전 함께 대투만(대한투기종목인스타툰작가모임) 활동을 하며 검도 만화를 그리는 까치님의 인스타툰에서 이런 문장을 읽었다.
“회사는 도장에 가는 과정일 뿐이지!”
보자마자 무릎을 탁 쳤다. 회사에 가기 싫어 몸부림치는 무도인의 마음을 이렇게 유쾌하게 그리다니! 무도인의 심장으로 사회 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웃음과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컷이었다.
⬆︎검도를 소재로 인스타툰을 그리고 있는 "까치님"의 <지옥철에서 검도인에게 일어난 일> 중에서
회사 생활이란 대개 해야 할 일과 책임감, 갈등으로 범벅이 된 시련의 시공간이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퇴근 시간을 오매불망 기다리지만, 사실 나는 퇴근이 그닥 기다려지지 않는다. 퇴근을 해도 어차피 운동이라는 루틴을 거쳐야만 집에 갈 수 있기 때문에, 퇴근이라고 해봤자 “1교시 끝”이라는 느낌에 가깝다. 낮의 일과 이후에 저녁을 체육관에서 보내는 루틴은 유도를 처음 시작했던 대학생 시절부터 시작됐다. 학교 인근의 유도관을 다니다가 졸업 이후에는 직장 인근의 체육관으로 옮겼고, 이직을 하게 되면 또 새로운 직장 근처에서 저녁 시간을 땀흘리며 보낼 수 있는 공간을 찾아 옮겨 다녔다. 그렇게 내내 ‘2교시 체육 시간’, 아니 두 개의 세계를 살아가는 직장인이 됐다. 이제는 하루라도 운동을 하지 않으면 숙제를 하지 않은 것처럼 마음이 불안하고 몸이 무겁게 느껴진다.
서로를 보완하며 나아가는 수평선, 두 개의 세계를 살아가는 일.
회사일이 뜻대로 안 풀리는 날이 있다.(물론 대부분의 날들이 그렇다.) 내가 괜찮다고 생각했던 회심의 표지 시안이 가열차게 탈락할 때도 있고, 생각지도 못한 인쇄 사고가 생겨서 다시 인쇄하네, 마네 실랑이를 해야 할 때도 있다. 디자인의 방향성을 잃고 ‘이 책을 어쩌지’에서 ‘이 길이 내 길이 아닌가’라는 생각까지 이르면, 그날은 모든 걸 손에서 놓고 빠르게 칼퇴를 해야 한다. 문제 상황에 대한 화살이 스스로를 향할 때는 스스로가 이 문제에 너무 매몰되어 있다는 것이다. 생각의 고리를 끊고 체육관으로 가서 땀을 한바탕 뻘뻘 흘린다. 그러다 운좋게 멋진 한판을 만들어내기라도 하면, 하루종일 파티션 안에서 묵혀뒀던 시름이 더없이 시원하게 사라진다. 그렇게 말끔히 비워진 머리로 다음날 출근하여 다시 시작해보는 것이다. 숨이 턱에 닿도록 신체를 극한으로 내몰고 나면 컴퓨터를 껐다 켠 것처럼 머릿속이 한차례 리셋이 된다.
반대로 2교시 체육시간이 잘 안 풀리는 날도 있다. 월경이 겹치거나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은 몸이 천근만근 무겁다. 그러고 싶은 게 아닌데, 탄력도 타이밍도 생각하지 않고 어거지로 힘을 쓰며 기술을 들어간다. 내 몸이 내 마음처럼 움직여 주지 않는 날. 그런 날은 상대에게 휙휙 맥없이 넘어가고 잡기싸움부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다가 한술 더 떠서 다치기라도 하면 절뚝이며 집에 가는 길 내내 우울해지고 만다. 하지만 다음날 출근해서 회사일에 정신없이 빠져 있다보면 그 우울감도 잊게 되는 것이다. 작업하던 원고의 컨셉에 찰떡인 폰트를 발견해서 원고에 적용해 본다. 잘 어울리는 옷을 입은 원고를 보며 흡족함과 성취감이 차오르고, 거기에서 나아가 팀장님과 담당 편집자까지 만족스러워하면, 마치 유도 대련 중에 ’한판‘을 받아낸 것만큼이나 흐뭇해진다. 문득 ‘아, 내가 이래서 이 일을 좋아했지.’ 하고 끄덕이게 된다.
즉, 두 개의 세계는 서로의 결핍을 보완해주며 내가 일상의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게 붙잡아준다. 좌절하거나 멈춰서지 않게 해준다.
물론 줄곧 실패와 패배뿐인 날도 있다. 회사에서도 일이 안 풀려서 찝찝한 마음으로 체육관에 왔는데, 컨디션까지 좋지 않고 대련에서도 제대로 된 퍼포먼스가 나오지 않는다. 그런 날이면 뭐 하나 제대로 잘해내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화가 나서 울고 싶어진다. 같은 기술에 연달아 넘어가서 나뒹굴고, 매트에 잠시 앉아서 땀에 젖은 채로 깊은 한숨을 내쉰다.
“넌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뭐냐.”
샤워실의 김서린 거울 안으로 눈물인지 땀인지로 범벅이 된 엉망진창인 얼굴이, 또 스스로를 향해 화살을 겨누며 나를 바라본다. 그런데 땀을 씻어내려 끼얹는 뜨거운 물줄기가 신기하게 마음을 가라앉혀준다. 직장인으로든 무도인으로든, 날서 있던 마음의 귀퉁이들이 둥그렇게 씻겨 나간다. 날카롭게 이가 나간 칼날들이 땀구멍을 빠져나와 수챗구멍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한껏 매트에서 몸을 굴리고 사지를 집어던지며 뛰어놀았던 기억들, 노폐물과 화가 빠져나간 개운함만 남는다. 그래, 어찌저찌 오늘도 아주 잘 뛰어 놀았다! 어른이 되었지만, 내게는 여전히 하루 중에 이렇게 소리 지르면서 온몸으로 뛰어노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쩌면 전생에 내향적인 보더콜리였는지도 모르겠다.
당연한듯 수행해온 십여 년의 2교시 루틴은 나로 하여금 스스로가 무도인이라는 정체성을 품게 해주었다. ‘내가 가진 힘이 작고 나약할지라도 정의롭게 쓰자. 나와 내 소중한 사람들을 지킬 수 있도록 수련을 게을리 하지 말자. 힘이 필요한 최후의 순간이 왔을 때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라는 담담한 결의가 기저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사람들이 어떻게 나를 바라보든, 나는 두 개의 세계를 살아가는 직장인이자 무도인인 것이다. 무도인 박대리와 직장인 박대리는 서로를 일으켜 세우며 나아간다.
두 개의 세계가 맞물릴 때
같은 팀에서 함께 책을 만드는 디자이너 솔솔씨(가명)가 최근에 복싱을 배우기 시작했다. 퇴근 직후 회사 앞 복싱장으로 즐겁게 달려갔다가 깐 달걀처럼 개운한 얼굴로 회사로 돌아온다. “그동안 이 재밌는 걸 왜 대리님 혼자 하셨어요?”라며 요즘 복싱에 푹 빠져 살고 있다. 고달픈 문제는 자꾸만 내가 방심한 틈을 타서 내 옆구리에 ‘바디’를 찔러넣는다는 거다. 작고 야문 주먹이 제법 아프게 파고들어서 갈빗대 사이가 벌어질 것 같은데, 솔솔씨 본인만 자신의 힘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질 수야 없다는 오기에 안 아픈 척 미소를 흘리며 ‘아, 복싱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를 시전하며 마주 보고 가드를 올려본다. 어설픈 복서 둘이서 이리저리 솜주먹을 휘두르며 실랑이하는 요즘, 회사 생활이 좀더 재밌어졌다. 조만간 회사에서 솔솔씨에게 제대로 바디를 한방 맞고 무릎이 꺾일 것 같다.
이제 회사에서도 긴장을 내려놓을 수가 없다.(물론 회사는 언제나 전장이었다.) 불시의 공격에 대비해야 한다. 그러나 괜찮다. 직장인 박대리는 무도인 박대리가 지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