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몸으로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릴게요

멋진 "업어치기"는 당할 때도 짜릿해

by 무도인 박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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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라고 하면 으레 빠르고 강하게 상대를 뽑아 바닥으로 메치는 업어치기를 떠올리곤 한다. 유도를 처음 배우는 입문자에게도 어떤 기술을 제일 배워보고 싶냐 하면 곧잘 업어치기라는 답이 돌아온다. 그렇다. 유도의 꽃은 업어치기다. 나 역시 처음 도장에 들어가서 밭다리, 발목받히기를 먼저 배우면서 ‘업어치기는 언제쯤 가르쳐주실까’라는 설렘과 기다림이 있었다.(물론 아는 기술 이름이 많지 않은 입문자들에게는 굳이 답하자면 업어치기뿐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내게 유도의 매력, 업어치기의 아름다움을 처음으로 뇌리에 깊이 새겨준 사건이 있었다. 때는 대학교 2학년 말, 일과 후에 같은 과 사람들과 작은 술자리가 있었다. 나는 하필 그날 레포트 과제 때문에 노트북을 들고 왔던지라 고가의 물건을 챙겨야 한다는 책임감에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는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테이블 위에 빈 소주병이 6-7병 정도 즐비하게 놓인 걸 뒤늦게 깨달았다.(우린 고작 세 명이었다.) 아니나다를까 함께 마시던 선배가 크게 취했다. 앉아서 이야기할 때는 멀쩡해보였던 그가, 막상 일어나서 가게를 나서자마자 가방도 내팽개치고 어딘가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나는 선배가 차에 치이기라도 할까봐 그의 가방을 들고 쫓아가야 했다. 비틀거리며 함께 선배를 말리던 동기 녀석도 어느 순간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다. 체구도 작은 내가, 술에 취해 힘의 브레이크가 없는 성인 남성을 혼자서 뜯어말리기엔 역부족이었다. 길가의 오토바이가 넘어지고, 그의 욕설 섞인 목소리가 커질 즈음 다행인지 불행인지 경찰 두 명이 나타났다.

일차적으로 그들은 선배를 좋게 말로 타일렀다. 그러나 술기운에 경찰 제복이 보이지 않는 건지 선배의 술주정은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나는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아서 겁에 질려 ‘형님, 진짜 경찰이에요.’ 하며 선배를 말렸다. 그때 곁에 있던 나이 지긋한 경찰이 말이 안 통한다고 생각했는지 체구가 큰 다른 경찰에게 고개짓을 했다. 그는 마주 고개를 끄덕이고는 순식간에 나의 선배님을 눈앞에서 뽑아올렸다. 선배의 발 끝이 허공을 갈랐고, 잠시 뒤 선배가 바닥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나는 입이 쩍 벌어졌다.


그야말로 아름답고 절제된 포물선이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허리 후리기나 허리껴치기였던 것 같지만 그때의 나는 선배의 몸이 허공에 부유하는 찰나의 순간, “유도...! 유도의 업어치기야!”라고 중얼거리며 감탄해버렸다. 상대를 자신의 몸에 바싹 붙여 감아 최단거리의 궤적으로, 빠르고 부드럽게 제압했다. 그날 나는 눈 앞에서 인생 처음으로 메치기를 목격했던 것이다.

경찰서 쇼파에 앉아 선배의 가족분들을 기다리며, 머릿속에서 계속 그 강렬한 장면을 떠올렸다. 이후로도 한동안 시도때도 없이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재생됐다. 그날밤 나는 유도에게 첫눈에 반했던 것이다. 업어치기는 정말 강하고 아름다운 것이구나!


부드러움이 강함을 능히 제압한다

상대가 밀고 들어올 때는 당기고, 상대가 나를 끌어당길 때는 민다. 그렇게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기 때문에 상대가 나보다 크고 강할지라도 맞설 수 있다. 그것이 유도의 원리, 부드러움이 강함을 능히 제압한다는 ‘유능제강’이다. 처음 메치기를 배우며 알게 된 유능제강이라는 말은 체구가 작고 약한 내게는 더없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누군가를 이기진 못하더라도 혹시 모를 절체절명의 순간에 스스로를 지킬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완벽한 업어치기를 구사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무게중심이 흔들리는 찰나의 순간, 상대의 힘의 방향을 지각하고 반사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동물적인 감각과 탄력, 그리고 수없이 많은 연습과 대련 경험이 필요했다. 타고난 운동 신경이 없는 나로서는 처음 메치기를 배우며 뚝딱거릴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업어치기 들어가는 스텝을 세 단계로 나누어 배웠다. 하나, 맞잡은 상태에서 오른발을 상대의 오른발 앞에 한 발자국 정도 떨어진 위치에 딛는다. 발을 딛으면서 왼쪽 손으로 상대의 오른팔을 잡아 당겨서 내 쪽으로 기울인다. 상대의 뒷꿈치가 들리면서 나를 향해 무게중심이 쏠린다. 둘, 뒤에 남아있던 내 왼발을 오른발의 오른쪽으로 나란히 따라 딛으며 무릎을 낮춘다. 오른손을 상대의 오른쪽 겨드랑이 아래로 집어넣어 팔꿈치 안쪽을 상대의 겨드랑이에 단단히 끼운다. 마치 지렛대가 된 것처럼 낮게 상대방의 몸 아래로 파고드는 형세가 된다. 셋, 딛고 선 왼발로 땅을 밀어 몸을 상대의 가슴에 등이 닿도록 몸을 회전시킨다. 왼손으로 잡은 상대의 오른팔을 잡아당겨 상대와 바싹 밀착한다. 상대의 무게중심이 내게 쏠려있고 메치기 직전인, 지읏기 단계가 완성된다.


지금이야 그 단계를 단축하여 거의 하나의 호흡에 업어치기를 들어가지만, 처음 배울 때는 단계별로 손과 발이 따로 놀았다. 발동작에 신경을 쓰면 팔이 안되고, 팔에 신경을 쓰면 스텝이 꼬이고… 어려웠지만 몸으로 무언가를 배운다는 감각이 너무 오랜만이어서 낯선 즐거움이 있었다. 버스정류장, 골목길에서도 길을 걷다 말고 혼자 업어치기 들어가는 스텝을 연습하곤 했다. 오른발을 앞으로 딛고 몸을 휙 회전하며 왼발이 따라 들어간다. 이 동작을 반복하다보면 같은 자리를 혼자서 뱅뱅 돌게 되는데 아마 먼 발치에서 보면 미친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분절되고 뚝딱거리는 어설픈 업어치기였지만 도복을 입고 보낸 시간 중 그때가 가장 자신감이 넘치던 시절이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당시 길거리 쇼윈도에 비친 내 눈빛은 늘 이글이글 매섭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업어치기를 배운 이상 두려울 것이 없었다. ‘유능제강이다. 누구든 시비 걸리기만 해봐라. 한팔 업어치기로 바닥에 메쳐주겠다.’라는 허황된 자신감을 품고. 그저 업어치기를 처음 배웠을 뿐인데. 그런 흰띠 시절의 내가 품고 있던 패기를 기억하기에, 도장에서 흰띠, 노란띠 분들과 대련할 때면 가장 긴장이 된다. '메치고 말겠다'는 열정으로 치열하게, 온몸으로 부딪혀 오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패기는 잃어버리고, 대련을 하며 우물쭈물 망설이는 시간이 더 긴 것 같다. 한 번의 기술을 쓸 수 있는 타이밍이 얼마나 어렵게 찾아오는지 잘 알기에 메치기를 들어가는 황금 같은 타이밍, 그 찰나의 순간을 잡는 게 너무나 어렵다. 상대와 맞잡고 선 나는 마치 낭떠러지 앞에 서있는 기분이다.


멋진 업어치기라면 넘어갈 때도 기분이 좋다

지난 주말에는 오랜만에 ‘88유도회’에 참가했다가 기가 막힌 업어치기를 당했다. 나보다 체중이 10kg은 덜 나갈, 체구가 작고 어린 여자 유도가가 와 있었다. 종종 유도회에 가면 마주치곤 했는데 작은 체구에 머리를 단정히 묶고 있어서 그런지, 처음 봤을 때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치히로’가 떠올랐다. 용인대에 재학중인 그녀는 잘 웃지 않고 말수가 적지만, 매트 주변을 맴돌며 적당한 대련 상대를 찾으면 서슴없이 찾아와 정중하게 대련을 신청한다.

까다로운 잡기 싸움을 거쳐 치히로와 서로 맞잡고 대치하던 중, 무게중심이 단단하게 잡힌 그녀의 오른발이 먹음직스럽게 내 앞까지 와 있었다. ‘밭다리 찍어볼까? 너무 좋은 위치에 놓여 있어서 수상한데…’ 하고 망설이다가, 결국 못 참고 ‘밭다리!’ 하고 밀고 들어갔다. 치히로는 기다렸다는 듯이 몸을 돌려 나를 당겨 업었다. 나는 내가 밀고 들어가던 힘 그대로, 치히로의 몸을 넘어 매트에 깔끔하게 떨어져 낙법을 쳤다.

이것이 진짜 유능제강이구나. 시원하게 넘어가고 ‘와!’ 큰 소리로 감탄했다. 치히로의 오른발이 마치 물에 드리워진 낚시대 같아서, 강태공 같은 그녀의 미끼를 물어버린 내가 물고기 같아서, 나는 박수 치며 웃었다. 깔끔하고 멋진 업어치기를 당하면, 넘어가고도 묘한 희열이 끓어오르는 것이다.

역시, 업어치기는 아름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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